돈 없어 항소 고민하는 노동자들 “상한제·감액 등 제도적 보완 필요”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ㆍ사회적 약자 재판청구권 약화 ‘과도한 인지대’ 토론회
정리해고 반대,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내걸고 파업을 벌인 노동자들이 재판제도를 이용하는 데 드는 수수료인 인지대가 없어 항소·상고를 고민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많을 경우 수억원에 이르기도 하는 ‘인지대 폭탄’이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에게 법원 문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이 27일 국회도서관에서 연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 토론회에선 인지대 부담 때문에 상고를 포기할 뻔했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례가 소개됐다. 2009년 정리해고에 반대해 77일간 파업을 벌인 쌍용차 노동자들은 회사 측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지난달 16일 패소했다. “불법파업이기 때문에 33억원을 물어내라”는 원심과 같은 결과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와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 야당 의원들이 개최한 법원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에 관한 토론회가 27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쌍용차지부는 수천만원의 인지대 비용 때문에 상고 포기를 고려했다. 인지대는 소송가액이 증가할수록, 심급이 올라갈수록 그 액수가 증가(항소심 1.5배, 상고심 2배)한다. 1심 패소 뒤 항소심을 진행하는 데 1800만원이 들었는데 상고심의 경우엔 2400만원이 필요했다. 양현근 쌍용차지부 고용안정실장은 “해고자들이 7년간 싸워오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데 2400만원이라는 돈이 어디서 나오겠느냐”며 “상고를 안 할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급하게 돈을 빌려 상고 기한 마지막 날에 상고장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과도한 인지대 부담 때문에 항소를 포기하려 했던 것은 쌍용차지부만의 사례가 아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2010년 현대차의 사내하청 사용이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 뒤 25일간 울산1공장 점거파업을 벌였다. 현대차는 이 파업을 이유로 7건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총금액은 무려 213억원이었다. 1심에서 패소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항소를 위해 1억원에 가까운 인지대를 부담해야 했다.
돈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소송을 할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인지대 상한제, 감액·면제제 등이 제시됐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가에 연동해 인지대가 높아지는 현행 제도는 사실상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측의 재판청구권은 온전히 보장하는 반면 경제적 약자일 가능성이 큰 노측의 재판청구권은 약화시킨다”며 인지대 상한제를 제안했다.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 당사자 및 사건의 성격 등을 고려해 당사자 신청이 있을 경우 재판부가 인지대를 감액·면제하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일·유사한 쟁점의 징계사건에 대해서는 인지대 인하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철도공사는 지난해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철도노조 조합원 4213명에 대해 직위해제 처분을 했다. 이들이 징계처분에 대한 소송을 하기 위해 1심 법원에 납부해야 할 인지대는 14억7000만원을 웃돈다. 송영섭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동일·유사 쟁점 사건의 경우엔 법원의 재판 업무량과 소요시간이 당사자 수에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당사자 수를 기준으로 인지대를 산정하는 현행 기준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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