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11 오마이뉴스] 경영진 사진에 신발 던졌더니 1억

경영진 사진에 신발 던졌더니 1억

50억, 90억, 1억, 정초부터 해고노동자에 '손배 폭탄'... 노동계와 시민사회 법개정 요구 이어져

윤지선 기자

 

 
"이번 설 명절은 참 마음도 발걸음도 무거웠습니다. 앞으로 몇 번의 명절을 보내야 이 손배라는 덫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경북 구미에 위치한 반도체 제조회사 KEC에 근무하는 김순희씨는 설 명절 상여금을 받지 못했다. 상여금은커녕 작년 10월부터 김씨의 급여도 최저임금 수준을 제외하고는 모두 회사에 압류되고 있다. 이유는 김씨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파업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김순희씨가 참여한 2010년 파업은 회사가 구조조정, 정리해고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새벽 여성기숙사에 용역을 투입해 여성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폭력적 사태를 일으킨 것이 원인이 됐다. 그럼에도 김씨는 회사가 제기한 301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의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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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손배청구된 이후 끊임없이 손배소를 앞세운 회사의 탄압과 퇴사 협박을 버텨내야 했다. 소송은 2016년 9월 '30억 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조정으로 결론이 났다. 이미 퇴사 협박에 못 이겨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기도 했고, 함께 노조 활동을 하던 남편은 해고됐다. 

2017년 1월, 회사의 정리해고 시도가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따른 계획적 부당노동행위였음을 인정받는 판결을 받았지만, 같은 노조파괴 문건에 등장하는 '손배소'는 계속되고 있다. 

 2011년 9월27일 이미경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폭로한 KEC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 문건 일부
▲  2011년 9월27일 이미경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폭로한 KEC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 문건 일부
ⓒ 윤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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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희씨와 같이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수십억 원의 손배소와 가압류로 설 명절을 무겁게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에만 22개 사업장 노동자들이 약 1600억 원의 손배청구금액과 175억 원의 가압류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노동자가 평생을 일해도 벌기 어려운 금액을 갚으라는 비현실적인 요구가 법 테두리 내에서 벌어지고 있다. 해고노동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2017년 1월, 3개 사업장 해고노동자에게 억 소리 나는 돈 폭탄이 떨어졌다.

 
50억 손배소, 전세금 가압류, 원고는 페이퍼 컴퍼니

2017년의 첫 손배소 재판은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동양시멘트지부의 손배소다. 동양시멘트의 자회사 '다물제이호'는 동양시멘트 사내하청 노동자 24명에게 총 50억2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해당 재판이 지난달 10일 열렸다. 

사건은 다음과 같다. 2014년 5월, 삼척 동양시멘트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은 '동양시멘트가 고용관계를 책임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결과 10개월만인 2015년 2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위장도급 판정을 받고, 조합원들은 '동양시멘트의 정규직'임을 확인받았다. 그러나 같은 날 동양시멘트는 정규직 인정은커녕 사내하청에 '도급계약해지'를 통보한다. 그리고 닷새 뒤 조합원 24명을 포함해 사내하청 노동자 101명이 해고된다.

조합원들은 곧장 근로자 지위확인소송에 들어갔다. 동양시멘트가 대화를 거부하니 출근투쟁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합원들은 무방비상태에서 손배가압류라는 날벼락을 맞는다. 출근투쟁 기간에 점거농성을 한 조합원 24명에 대해 16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와 5억9천만 원의 가압류가 들어온 것이다. 

특히, 가압류는 조합원들에게 큰 공포와 혼란을 주었다. 어떤 조합원은 병원에 갔다가 통장가압류로 출금을 못해 병원비를 내지 못했다. 어떤 조합원은 살고 있던 전셋집의 전세보증금이 가압류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전세계약이 곧 끝나면 당장 거리에 나앉게 된다는 생각에 공포심을 느껴야 했다. 

소장을 살펴보던 조합원들은 깜짝 놀랐다. 원고에 표기된 '다물제이호' 때문이다. 이 회사는 표면상 동양시멘트의 자회사지만,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결과 사용주로서 실체가 인정되지 않는 페이퍼 컴퍼니로 규정됐다. 

사법부는 이 페이퍼 컴퍼니가 제기한 소송을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2016년에는 다물제이호가 '수출손실' 등을 빌미로 청구금액을 16억 원에서 34억을 추가해 50억 원대로 올려 신청한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도 접수되었다. 노동조합 결성 1년 만에 조합원 24명이 '페이퍼 컴퍼니'가 청구한 50억 원대의 손배소와 5억9천만 원 가압류의 당사자가 된 것이다. 

2016년 12월 20일 동양시멘트 조합원들이 낸 근로자 지위확인 1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24명의 조합원들이 '동양시멘트 정규직임'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사용자 측은 요지부동이었다. 심지어 12억 원이나 되는 강제이행금을 내면서 버티고 있다.

 동양시멘트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해고자 정규직 복직을 요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동양시멘트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해고자 정규직 복직을 요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동양시멘트공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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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지위확인 승소는 손배가압류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정규직 전환을 이행하라며 벌인 파업이니 정당한 쟁의로 인정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변론을 담당한 윤지영 변호사는 "노동자 손배소 재판의 특성이 파업의 원인을 누가 제공했느냐보다는 파업 당시의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 탓"이라고 사법부의 한계를 지적했다. 

결국, 손배재판이 끝날 때까지 조합원들은 50억 원의 손배와 통장, 부동산, 전세보증금까지 가압류된 채 생존이 흔들리는 일상을 견뎌야 한다. 해고 기간은 어느덧 700일을 넘어서고 있다. 

 
사진에 신발 한 짝 던졌다고 1억 원 청구

모욕 1억 원, 명예훼손 4억 원,업무방해 22억 원 등 쟁의로 인한 손해를 특정할 수 없는 영역에서마저 수십억 손배소를 청구받은 해고노동자들도 있다. 바로 금속노조 경기도지부 하이디스지회 조합원들이다. 

2008년 하이디스를 인수한 대만의 이잉크는 회사와 공장을 키울 것을 노동자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공장을 인수하자 당초 약속과는 달리 2013년부터 서서히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급기야 2015년 공장마저 폐쇄하고, 공장 필수유지를 위해 필요한 시설관리부를 제외한 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했다. '특허장사에 노동자와 공장은 필요 없다' 사용자 측의 일방적인 행보에 노동자들은 뭐라도 해야 했다. 대화를 위해 노숙농성은 물론, 힘겹게 대만원정투쟁까지 나섰다. 이것이 27억 원에 달하는 손배청구와 30억 원에 달하는 가압류의 빌미가 됐다.

 '모욕' 1억원의 손배청구 빌미가 된 '신발던지기' 현장. 사진에 신발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했다는 이유로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 휘말렸다.
▲  '모욕' 1억원의 손배청구 빌미가 된 '신발던지기' 현장. 사진에 신발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했다는 이유로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 휘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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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끼를 입고 회사 로비에 서 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업무방해 22억, 대만원정에서 경영진 사진에 '신발'을 던졌다고 모욕 1억 원, 동료의 죽음 앞에 오열한 지회장의 발언이 기사화됐다고 명예훼손 4억 원을 청구했다. 세 건의 손배소 당사자들은 통장, 부동산, 심지어 지회장은 부인 명의로 된 전세 보증금까지 총 30억 원을 가압류 신청했다. 

지난 11월 열린 같은 혐의를 적용한 형사고발 건으로 지회장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선고를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손배소 사건을 기각시켜달라는 시민탄원서를 보내 열흘 만에 1만2천 건이 모였다. 법률대리인이 재판부에 제출했고,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 되었다. 

세 건의 재판 가운데 모욕에 대한 1심 선고가 지난달 24일 열렸다. 재판부는 끝내 사용자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신발 한 짝을 던져 경영진 사진에 맞췄다는 이유로 경영진 5명에 50만원 씩 총 250만 원을 배상하라는 것이다. 지회는 항소했다. 그리고 상식을 뒤엎는 판결에 초조한 마음으로 다가올 2건의 손배소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권리 포기" 거부한 자, 손배소 견뎌라

'불법파견'과 '비정규직에 대한 손배소'하면 곧장 떠오르는 노동현장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에 청구된 총 250억 원의 손배소 가운데 '2010년 파업'에 대한 90억 원 손배소 건의 2심 선고재판이 1월 25일에 열렸다.

1월 25일, 부산고법은 해고자를 포함한 조합원 4인에게 현대차가 제기한 90억 원의 손배청구금액을 그대로 인용하며 사용자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대차의 주장에 따라 비정규직 노동자가 연봉 5천만 원을 받는다고 가정을 해도 45년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갚을 수 있는 금액이다. 

해당 파업 역시, 원인제공은 사용자 측이 했다. 2010년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불법파견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측은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교섭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정규직 이행조차 지키지 않았다. 대화를 위해 조합원들은 쟁의를 해야 했다. 

 2010년 정규직 전환 판결에도 현대차 경영진이 교섭에 응하지 않자 지회는 파업을 한다.
▲  2010년 정규직 전환 판결에도 현대차 경영진이 교섭에 응하지 않자 지회는 파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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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쟁의의 대가는 가혹했다. 사용자 측은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에 막대한 손배소를 청구했다. 90억 원 손배소 건 외에도 2010년 파업에만 무려 7건이나 된다. 심지어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에게도 손배소를 청구했다. 이름도 생소한 '업무방해 방조죄'를 물었다. 희망버스 등 2013년 고공농성을 지지 방문한 활동가와 시민에게도 손배소를 청구했다. 

나아가 사측은 손배청구 대상자들을 상대로 2차적인 노동탄압을 시작했다. '손배소 취하'를 조건으로 노골적으로 '근로자 지위확인소송 포기'를 종용하고, 일부 조합원에게는 노동조합활동 중단까지 강요하기 시작했다. 권리를 포기하면 손배소의 고통에서 제외시켜주겠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일부 조합 간부와 파업에 참여한 정규직 조합원은 제외했다. 청구금액이 얼마든 '연대책임'을 묻는 손배소는 한 명 한 명에게 90억이면 90억, 해당 청구금액만큼의 무게를 지운다. 청구대상이 줄더라도 금액은 그대로 유지된다. 결국, 사용자 측이 요구에 응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조합원들은 홀로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한편, 90억 원 2심 판결을 받은 조합원들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파업의 원인 제공자가 누구건 간에, 점거 파업은 무조건 불법으로 보는 사법부의 잣대에 기대를 버렸다. 게다가 법률비용도 문제였다. 청구금액에 비례해 올라가는 인지대 때문에 대법원 상고를 하려면 1억 원의 인지대를 보름 만에 마련해야 했다. 해고자에게는 상고는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다. 

 
"노조법 개정, 국회가 나서달라"

이쯤 되면 자연스레 의문이 든다. 노동삼권이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손배가압류를 할까. 그 근거가 되는 법 조항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다. 해당 조항의 '쟁의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좁디좁은 해석이 사용자에게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책임을 노동자와 그 가족, 그리고 신원 보증인에게까지 넓게 허락하고 있다. 더욱이 손해를 산정하는 법적 기준조차 없으니 천문학적인 금액을 청구하도록 허락한 셈이다. 때문에 '억' 소리 나는 인지대 문제도 뒤따른다. 민사상 손해배상이 헌법의 노동삼권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2017년 1월 17일, "노동자 죽이는 적폐 중의 적폐 '손배가압류', 국회가 해결하자" 시민사회, 노동계, 국회 입법촉구 기자회견 현장
▲  2017년 1월 17일, "노동자 죽이는 적폐 중의 적폐 '손배가압류', 국회가 해결하자" 시민사회, 노동계, 국회 입법촉구 기자회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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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시민사회와 노동계는 국회에 노조법 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모임 손잡고는 법제도 전문가, 노동계의 의견을 모아 노조법 일부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을 마련해 20대 국회에 논의를 요구했다. 

노란봉투법은 ▲손배가압류 제한을 통한 노동기본권 보호 ▲개인 및 신원보증인에 대한 손해배상 금지 ▲노동조합의 존립을 불가능하게 하는 손해배상액 제한 ▲손해배상액 경감의 구체적 "사유"와 "기준" 제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1월 18일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입법 요구를 받아 대표발의 했다. 

노동 관련 상임위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들 역시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데 동의했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벼랑 끝에 선 손배소 노동자,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홍영표 위원장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간사를 비롯해, 환노위 소속 강병원, 서형수, 신창현, 이용득 국회의원(이상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이정미 국회의원 등 노조법 개정 취지에 공감을 표한 의원들이 시민사회,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노조법 개정 방안을 토론했다.

홍영표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노동삼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인권과 생존권에 위협을 받는 노동계의 현실을 자각하고 시민사회의 문제 해결 요구에 20대 국회가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할 차례"라고 화답했다. 

 2월 8일 "노동자 손배소 피해실태와 법개정 시급성" 토론회, 공동주최한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인사말
▲  2월 8일 "노동자 손배소 피해실태와 법개정 시급성" 토론회, 공동주최한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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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월 국회 상임위 논의는 불투명한 상태다. 홍영표 위원장은 "2월 국회에서 속 시원히 법 개정이 처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상대가 있다 보니 야당만의 노력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가로막힐 경우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고 상임위원회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90일, 본회의 30일을 거쳐 최대 330일 후엔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되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고 해결 의지를 보였다. 

법안을 발의한 강병원 의원도 "노조법 개정안이 2월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제대로 논의될 수 있으려면 여야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소속 의원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한편, 손잡고와 손배소 피해노동현장은 20대 국회 노조법 개정을 요구하는 노란봉투법 입법청원 거리서명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노란봉투법 입법청원 : bit.ly/노란봉투법_입법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