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가압류 해결 시민단체 ‘손잡고’ 출범 1주년, 한홍구·조은 교수
“철탑이 굴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거액의 손해배상·가압류 고통에 노동자들이 줄줄이 목숨을 끊는 암울한 세상을 바꿔보자며 시작한 시민단체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가 26일로 출범 1주년을 맞는다. 손잡고의 조은 공동대표(동국대 명예교수)와 한홍구 운영위원(성공회대 교수)은 25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굴뚝으로, 전광판으로 오르고 있고 야만적 상황은 더 심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손해배상·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 ‘손잡고’의 조은 공동대표(동국대 명예교수·오른쪽)와 한홍구 운영위원(성공회대 교수)이 출범 1주년을 하루 앞둔 25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손잡고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한 교수는 노동운동을 둘러싼 현 상황이 박정희 유신정권 때보다 되레 못하다고 짚었다. 그는 최근 늦깎이로 성공회대에 들어온 동일방직 출신 여성 노동자에게 물었다. “당시에도 요즘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이 있었나요.”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한 명도 없었다.” 동일방직은 1978년 여성 노조지도부 결성을 방해하기 위해 어용 노조원들이 똥물을 투척하는 엽기적 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다.
한 교수는 “두들겨맞고 똥물을 뒤집어쓰던 시절이었지만 손배·가압류를 물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고통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동자가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험한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고문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손배·가압류를 당하는 만큼 참혹한 게 없다”고 곁들였다.
손잡고는 지난해 한 주부의 제안 후 4만7547명이 참여한 ‘노란봉투 캠페인’을 통해 11억7000여만원을 모아 329가구에 긴급 생계·의료비를 지원했다. 한 교수는 “10억원대면 시민운동 모금운동 사상 유례없는 거금인데 가구당 수백만원씩 긴급 자금을 나눠드리고 나니 ‘땡’이었다는 게 가슴 아팠다”고 전했다. 조 교수는 “가구당 적어도 수천만원 이상씩 빚을 지고 있는데 겨우 숨넘어가는 것을 막아드리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손잡고는 올해에도 모금운동을 이어가고 법·제도 개선 활동에도 힘을 쏟는다. 지난해부터 뜻을 함께해온 국회의원들과 법률 전문가들이 만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조만간 국회에 발의될 예정이다. 합법적 노조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자 개인과 가족, 신원보증인에게까지 손배를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조 교수는 “법·제도 이슈도 중요하지만 손잡고의 출발점 자체가 ‘굴뚝에 오른 노동자는 나와 무관하다’는 시민들의 생각을 돌려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한국 사회의 야만적 상황을 멈추기엔 아직 힘이 부족하다”며 “하지만 1년간 노란봉투 모금을 하면서 굴뚝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이 시민들이 손잡고 만든 계단을 밟고 내려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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