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6일 오후 2시께 영국의 킹스칼리지런던의 키스 유잉 교수(법학·오른쪽)가 ‘쟁의행위와 책임’을 주제로 자국의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옆은 사회를 맡은 이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운데)와 지정토론자인 심재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왼쪽)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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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손잡고 / 한겨레-손잡고 공동 기획
(12) 해외 사례
▶ 손잡고는 ‘손배 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의 줄임말이자,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 손해배상과 가압류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시민 모임입니다. <한겨레>는 손잡고와 함께 지난 6월부터 공동기획을 진행해 손배 가압류로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의 삶과 해당 사업장별 쟁의와 소송 진행 상황 등을 조명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왔습니다. 연속 기획 마지막회로 각국의 손배 가압류 현황과 법제도를 소개합니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의 법학자들이 참석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질문을 쏟아낸 사람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들이 속한 국가의 사례를 발표하러 한국에 온 외국 법학자들이었다.
지난 9월26일 한국노동법학회와 서울시립대 법학연구소가 ‘쟁의행위와 책임’이란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었다. 오전 10시에 시작해 차분하게 진행된 이날 학술대회는 오후 5시가 넘어서부터 가열찬 논쟁이 시작됐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과)가 한국의 사례를 소개한 직후였다.
포문은 독일 브레멘대학교의 볼프강 도이블러 교수가 열었다. 도이블러 교수는 “한국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법적인 해결보다는 사회적인 해법이 먼저 요구되는 것이 아닌가”라며 “노동 문제를 판단하는 판사들이 노동조합과 소통을 하는가”, “법학자들과 판사들 간에 토론이 이뤄지는 분위기인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키스 유잉 교수는 “분명한 것은 한국이 국제노동기구(ILO)의 회원국이란 사실이다. 국제노동기구에 가입할 때,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기준에 따른다는 내용이 있다. 한국은 이런 내용을 준수하고 있는가. 국제노동기구는 회원국 노조의 불만사항을 접수하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는 1991년 이래 단 10건만이 접수됐다. 학계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노동기준을 사회에 알려야 하지 않나”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프랑스에서 온 에마뉘엘 도케 교수(파리 우에스트 낭테르 라데팡스 대학교)는 “법학자가 직접 노동조합에 가서 합법적으로 파업하는 방법을 자문해주는 사례가 있나. 파업에 대해 노조와 노조원들이 연대 책임을 진다고 했는데, 형사적인 책임을 단체로 부과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말했다. 나카쿠보 히로야 일본 히토쓰바시대학교 교수는 “파업 등 쟁의행위와 관련된 한국의 법체계가 너무 엄격한 것 같다”고 밝혔다.
파업 뒤따르는 손해배상 청구
해외는 어떤지 알아보려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더니
외국 학자들은 한국 상황을
이해 못하며 질문 쏟아냈다
파업했다고 감옥가는 건 한국뿐
외국은 정리해고·민영화 등에
노조가 목소리 낼 수 있고
무엇보다 손배 가압류로
노조 압박하는 문화가 없어
한국 상황을 집중 성토하는 장이 되다
어떻게 해서 각국의 노동 현실을 알아보기 위한 자리가 한국의 상황을 집중 성토하는 장이 됐을까. 단초는 이날 사회를 맡은 이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한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교수는 “(한국 교수들이) 정리해고, 민영화를 반대하는 것이 파업의 목적이 될 수 있냐고 (외국 학자들에게) 반복해 묻는데, 외국 분들이 ‘왜 자꾸 그걸 묻지’ 하는 정도의 반응인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회사 조직을 통폐합하고 업무를 외주화하고, 구조조정을 하는데도 근로자가 관여하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하기 전에 일부 외국 학자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정리해고, 민영화에 대항하는 파업이 합법인지 여부를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이는 관련 판례가 없거나, 해당국에서 중요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명확한 답변을 재차 요구받은 외국 학자들은 판례가 없다며 다수 학설을 근거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번 국제학술대회가 열린 이유는 한국의 많은 노동자들이 쟁의행위로 인한 형사처벌, 민사상 손해배상 가압류로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올해 6월 기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추산 전국 17개 사업장에 걸린 손해배상 청구액이 1691억원, 가압류 금액은 182억원이다. 이런 가혹한 손배 가압류가 가능한 이유는 노동자들의 쟁의행위가 불법이 됐기 때문이다. 쌍용차와 철도노조는 각각 정리해고, 민영화에 맞섰다가 ‘정당하지 않은 목적’으로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불법 판정을 받았고,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정부부처인 노동부의 ‘불법파견 시정 권고’에 자극받아 원청업체인 현대차를 향해 ‘직접 고용’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현대차와 파업을 한 노동자들이 직접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아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들의 쟁의행위가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에서는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어떤 책임이 뒤따를까. 각국의 법체계와 적용 사례를 편의상 질의응답으로 구성했다. 내용은 국제학술대회에서의 발표를 바탕으로 했다.
“독일은 제도적으로 노사 갈등 흡수”
-쟁의행위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가압류를 청구하는 사례가 얼마나 있나?
독일
“노동조합이 손해배상을 청구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중요한 사례는 1950년대의 것이다. 독일의 노사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근로자대표위원이라는 제도를 먼저 알아야 한다. 독일에선 노조와 함께 근로자대표위원이 근로자들을 대변한다. 이들은 경영진으로부터 기업에 관한 모든 정보를 통보받고, 회사의 중요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범위는 관련 법률과 단체협약에 의해 정한다. 근로자대표위원 제도는 노사간의 분쟁을 쟁의행위 없이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프랑스 “1946년 파업권이 헌법상 기본권이 된 이후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극히 드물지만, 한 사례가 입법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0년 르노사는 태업을 이유로 노동조합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프랑스에선 파업권은 광범위하게 인정받지만, 태업은 합법적인 쟁의 방법이 아니다. 당시 법원은 노동조합에 2900만프랑(약 220억원)의 손해배상금 지급을 선고했다. 나중에 르노사가 소송을 취하해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이 판결은 손배 청구가 노조의 존립 기반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일깨웠다. 이듬해인 1981년 사회당이 다수를 차지한 의회에서 이 문제를 다뤄 한 입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쟁의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배상 청구 금지’를 규정하는 법안이었다. 헌법원(헌법재판소)은 1982년 10월22일 ‘이 법안이 피해자의 권리, 법적 평등, 공적 책임의 평등이라는 면에서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고, 2주 뒤인 11월9일 프랑스 최고법원인 파기원(대법원)이 뒤비종노르망디라는 사업장에서의 쟁의 사건을 판단하면서 중요한 기준들을 만들었다. 당시 법원이 제시한 기준은 ‘노조는 오로지 직접 한 행동에만 책임을 진다’, ‘과실이 있는 사람은 오로지 그의 과실로 인한 손해에만 책임을 진다’였다.”
영국 “영국은 기업이 노동조합에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금의 상한액을 1982년에 정했다. 조합원이 5000명 이하이면 상한액이 1만파운드(약 1700만원), 10만명 이상이면 25만파운드다. 이 상한액을 30년 넘게 바꾸지 않았다. 파업 이후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기업이 거의 없기 때문이고, 1988년 이후엔 손해배상을 인정한 판례조차 없다. 영국에는 기업이 손해배상 소송을 무기로 삼는 문화 자체가 없다. 하지만 과거엔 이와 관련된 문제가 있었다. 1900년 태프베일(Taff-Vale) 철도회사에서 발생한 파업에 대해 당시 대법원은 노조에 2만3000파운드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노동자들을 결집시켜 같은 해 창당한 노동당이 세를 불렸고, 1906년 총선에서 29명의 의원을 당선시켰다. 노동당이 등원하고서 입법된 노동분쟁법으로 노조는 손해배상 책임을 면했다. 이 법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1971년까지 유지됐고, 1970년대 여러 차례 바뀌다 1979년 대처가 집권한 이후 1982년에 완전 폐지됐다. 면책 조항이 빠진 자리를 대신한 것은 손해배상금의 상한제도였다.”
일본 “일본에서는 기업이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 판례도 대법원이 아닌 하급심 판결들이다. 과거엔 일본에서도 거액의 손배 소송이 있었다. 1975년 11월 일본국유철도(JNR)의 노조가 공익사업장인 이유로 보장받지 못하는 파업권을 획득하기 위해 8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이 파업으로 기업은 노조에 202억엔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고, 20년 가까이 지난 1994년 9월 노사는 소송을 종결했다. 법원이 소송을 천천히 진행해 아직 1심 선고도 나기 전이었다. 최근 일본에선 워낙 파업이 드물다 보니 파업권이 노동자들의 권리라는 점을 잊기도 한다. 2012년 미에현의 한 병원에선 노조가 파업하자, 병원 쪽이 법원에 파업 중지를 위한 가처분 신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노조는 병원장의 가처분 신청이 파업권 침해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다시 법원은 이 청구를 받아들여 165만엔의 손해배상금을 확정했다. 노조가 기업한테 손해배상금을 받는 기이한 사례다.”
-정리해고, 민영화를 반대하는 파업이 합법인가?
프랑스 “프랑스에선 정리해고, 민영화 반대가 모두 직업적 요구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를 위한 파업도 합법이다. 사회보장, 의료, 연금, 실업, 가족수당 등에 관한 요구도 합법적이다. 마르세유시 내의 전철과 버스 운영을 담당하는 에르테엠(RTM)사가 민영화될 때의 파업도 합법이었다. 당시 에르테엠사는 ‘민영화는 정부의 결정이므로 기업으로선 대항할 힘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기업이 근로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능력이 있는지는 파업의 정당성 여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2006년 사탕 생산 업체인 라미뤼티(Lamy lutti)사에서는 정부와 의회가 정한 퇴직연금 삭감에 반대하는 파업이 있었지만, 이 역시 합법이었다. 프랑스 파기원은 2003년 하청업체 근로자가 원청업체를 상대로 한 파업에 대해서도 합법이라고 판단했다.”
독일 “노조가 정리해고 계획의 철회를 요구할 수 있지만, 해고자 명단이 확정된 이후엔 이에 반대하는 파업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왜냐면 해고가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영화를 반대하는 파업이 합법적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관련 판례가 드물다. 하지만 한국과는 달리 노사간 단체협약을 통해 정리해고나 민영화의 영향을 사전에 통제할 수 있다. 단체협약에 ‘15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는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되지 않는다’거나 ‘1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는 민영화 이후에도 해고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을 담을 수 있다.”
영국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파업은 합법이지만, 민영화에 대해서는 불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이 머큐리(Mercury)에 통신사업의 일부를 매각했을 때, 브리티시텔레콤의 노동자들이 업무를 중단한 적이 있다. 이때 법원은 ‘파업이 고용안정성보다는 민영화에 관련된 행위’라며 불법으로 판단했다.”
일본 “일본에서는 근로조건에 관련된 경영상의 결정을 노조가 반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노조가 공장장의 파면을 요구하는 파업을 해도 합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만일 공장폐쇄 계획이나 신기술 도입의 철회를 요구하는 파업이 벌어져도, 법원이 이 계획에 수반되는 해고 반대 등의 묵시적 요구를 인정해 정당한 파업이라고 할 것 같다. 일본은 관련 판례가 드물다.”
“노조 간부가 조직폭력배인가”
-한국에선 쟁의행위가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전격적으로 이뤄지면 형법상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처벌을 받는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떠한가?
독일 “2차 세계대전 이후 제정된 독일 기본법이 파업권을 보장한 이후부턴 어떤 파업도 형사처벌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론적으로 노동자가 쟁의행위를 하는 도중에 강요죄, 공갈죄 등이 적용될 수 있다는 학설이 있지만, 이마저도 ‘형사법에서도 쟁의행위 기간에 개별 근로자가 저지른 모욕, 상해, 절도 등에 대해 다루지 않았다’는 반론이 있다. 독일에서는 파업에 형법을 적용하는 것이 기업의 이익에 반한다고 보는 분위기가 많다. 노조 간부를 조직폭력배처럼 교도소에 보낸다면 이에 대한 비난이 신문과 텔레비전에 등장할 것이고, 이는 독일의 노사간 사회적 동반자 관계를 교란시킨다. 이는 더 거대한 악이 아닐까.”
프랑스 “1864년 이전까진 파업이 단결공모(coalition)죄로 처벌됐지만, 그 이후론 파업 참가가 형사범죄가 되지 않는다. 다만 쟁의행위 중에도 불법감금, 폭력, 상해, 파괴 등의 형사범죄는 처벌받는다. 다만 쟁의행위 중에 발생한 불법행위가 가중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상참작의 사정이 된다. 예를 들어 2008년 파기원은 동료의 산재보상 급여 지급을 요구한 선원들이 3시간 동안 지역해양기관의 사무실 직원들을 3시간 동안 위협, 협박한 사건을 무죄라고 판단했다.”
영국 “1875년 형법이 개정된 이후로 쟁의행위를 조직하거나 참여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는 없다. 다만 법률에 형사처벌의 잔재가 남아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제240조에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생명과 신체에 해악을 끼치거나 파괴·손상을 유발하면 위법이라고 규정했지만, 해당 법이 적용돼 유죄판결을 내린 사례는 없다.”
일본 “공무원이 파업을 하는 경우 그 선동자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 이외에 파업은 그 자체로 형사범죄가 아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형법에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남아 있지만, 쟁의행위에 적용되는 경우는 없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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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6582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