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9.05 한겨레] 손을 내밀자 단비가 내렸어요

 

이철수 판화가는 ‘마음 따뜻하다! 노란봉투’라는 작품으로 손잡아주었다. 손잡고 제공

 

[토요판] 손잡고 / 한겨레-손잡고 공동 기획 
(10) 손잡고 활동보고

 

7월7일, 기금집행.

 

“마침 아이 등록금 납부 기간이었습니다. 휴학시켜야 하나 걱정이 컸는데, 노란봉투 기금 지원으로 등록금이 해결되었습니다. 아빠 노릇 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손잡고로 감사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손배가압류 없는 세상을 위한 국민의 마음 소중히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꼭 필요한 곳에 잘 쓰겠습니다. 한 가정의 단비가 되었습니다.” “손배가압류가 해결되면 좋은 일에 적극 동참하여 어려움을 함께하겠습니다.^^” “시민들의 마음에 감사하고 아껴서 잘 쓸게요.” “아껴 쓰려고 했는데 의료비로 한번에 지출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껴 쓰고 싶었는데….” “소중한 마음 감사드리며 힘입어 열심히 투쟁하여 반드시 복직하겠습니다.” “용기 내어 더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노란봉투가 전달됐다. 해고통지서가 아니다. 4만7547명의 시민이 십시일반 모은 희망의 노란봉투다.

 

2014년 6월19일, 손잡고는 3차에 걸친 노란봉투 캠페인 모금액 14억6874만1745원 중 5억2000여만원을 손배가압류 피해를 입은 137가구에 지원하는 배분결과발표 행사를 가졌다. ‘2014년 노란봉투 캠페인, 손배소 가압류 피해자 긴급 생계·의료 지원 사업’의 일환이다.

 

4만7547명이 모은 14억여원 중 
5억2천만원을 137가구에 지급 
<한겨레>와 공동으로 모은 
2500만원가량의 후원금은 
법제도 개선 등 활동에 쓸 예정

 

“감사해요, 아껴서 잘 쓸게요” 
“의료비로 한번에 지출, 죄송” 
“용기 내어 더 열심히 투쟁” 
노란봉투가 그들에게 전한 건 
돈이 아니라 격려와 희망

 

 

2차 지원사업에서 노란봉투 모금액 모두 배분

 

행사가 끝나고 며칠간 손잡고 전화통에 불이 났다. 언제쯤 지원금이 나오는지 미안해하며 묻는다. 애가 타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조금이라도 실수가 생길까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는 활동가 마음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였다.

 

“동지들끼리 의논을 많이 했습니다. 더 어려운 동지들 받게 하자고 했는데, 주변의 권유로 제가 신청하게 됐어요. 노조에서 나오는 지원금이라면 크게 부담 없이 받을 수 있겠지만, 시민들이 우리 돕자고 모아주신 돈이라고 생각하니 덥석 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꼭 의미있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노란봉투를 받는 노동자에게도 고민이 많았다. 본인 형편은 그래도 나은 편이라며 신청을 포기한 노동자도 많았다. 노란봉투 앞에서 노동자들은 그렇게 고맙고 또 미안해했다. 노란봉투가 그들에게 전한 건 돈이 아니라 격려와 희망이었다.

 

노란봉투 캠페인 모금액 중 90%가량은 이렇게 손배가압류 피해자 긴급생계의료비 지원금으로 쓰인다. 3개월가량 노조를 통해 신청서류를 받고 손잡고 기금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지원금을 결정한다. 손잡고는 1차 지원에 이어 현재 2차 지원 신청을 받고 있다. 그래도 1차 지원 사업을 경험한 터라 좀 낫기야 하겠지만 또다시 신청서를 마주하자니 마음이 무겁다. 구구하게 종이에 다 적기도 뭣해 백지에 손배 사건번호만 달랑 적혀 온 신청서에서부터 해고와 파업 스트레스로 인한 각종 질병, 부채, 가정붕괴까지 피해 노동자의 삶은 온갖 고난의 집합소다.

 

지난 신청자 중 5분의 1에 해당하는 가구가 다자녀 가구였고, 그 가정의 가장인 노동자는 파업 등으로 구속수감되거나 직장을 잃었다. 해고자, 실업자인 노동자에게는 은행빚도 사치다. 부모·형제 빚은 예사고, 질병과 스트레스로 구직능력조차 상실해 무엇보다 가장으로서의 자존감 상실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 삶의 절박함을 단지 종이 몇 장으로 심사하는 것이 온당하기나 한 것인지 심사위원들의 고민이 깊지 않을 수 없다. 노란봉투를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나누는 일은 그보다 몇 배 더 어려운 일이었다.

 

“파업하던 해 초등학교 4학년이던 큰아이가 어느덧 중3이 되고, 둘째는 초5, 막내도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복직투쟁을 하는 지난 5년 동안 생계를 책임지던 아내는 건강이 좋지 않아 일을 하지 못하고 있고, 아이들은 학원도 제대로 보내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지출이라 가장 먼저 포기했던 교육비였습니다. 곧 고등학교, 중학교에 진학할 나이가 되니 걱정이 됩니다.”

 

“불법파견의 판결을 요구하는 재판이 한없이 뒤로 밀리는 상황에서 생계를 넘어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마저 꺾어버리려는 손해배상 30억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입니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3년이 넘는 해고생활 속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고 버티며 싸우는 이유는 바로 가족이 있어서입니다. 생계에 대한 걱정으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긴급생계를 신청합니다.”

 

우리가 들여다본 그들의 삶이 그랬다. 말 그대로 ‘긴급한’ 생계 의료비 지원이 하염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손잡고는 2차 지원 사업에서 노란봉투 캠페인 모금액을 피해자에게 모두 배분할 예정이다. 이후 손배가압류 피해자 지원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손잡고 조은 대표를 비롯해 운영위원단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겨레>와의 공동기획으로 단체 후원도 늘었다. 손잡고는 약 2500만원의 후원금을 법제도 개선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에 쓸 예정이다. 피해자 지원도 중요하지만 역시 근본적으로 고쳐야 하는 것은 손배가압류 문제에 대한 법제도 개선이다. 노란봉투 캠페인 모금액 중 10%도 관련 활동에 쓰인다. 직접적인 입법 관련 활동은 물론이고, 손배가압류 문제를 시민과 함께 풀어나가기 위한 교육, 문화, 학술 활동이 이에 해당한다.

 

손잡고 운영위원인 서해성 작가를 중심으로 손배가압류 문제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기획과 퍼포먼스를 준비중이다. 노란봉투 시민과 함께하는 청계광장 행사, 손배가압류를 소재로 한 연극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기지촌 여성의 삶을 주제로 한 연극 <일곱집매>로 호평을 받은 젊은 연극인 이양구씨가 대본을 맡아 오는 11월 말부터 3주간 서울 대학로 혜화동1번지에서 ‘노란봉투’(가칭)를 무대에 올린다. 내년 초 로스쿨 학생을 대상으로 한 모의법정도 연다. 지금까지 ‘노동인권’을 주제로 한 모의법정이 없었던 만큼, 손잡고 법제도개선위원회에서 시제를 준비해 미리 공고하고 팀별로 1차 서류심사, 2차 토너먼트로 우승을 가릴 예정이다. 손배가압류에 대해 실제 법리를 다투어 봄으로써 법의 적용과 해석 등 방향을 모색하고 예비 법조인들이 ‘노동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영상화해 더 많은 시민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시민 누구나 손배가압류 문제에 대해 관심 갖고 ‘손잡을’ 수 있다. 이철수 판화가도 ‘마음 따뜻하다! 노란봉투’ 작품으로 손잡아주었다. 고등학생 라혜원은 노란봉투 시민의 사연을 캘리그래피로 만들어주었다.

 

 

은수미 의원 중심으로 비공개 입법 간담회

 

손잡고는 공식 출범한 올해 2월부터 조직을 정비하고 법제도개선위원회를 꾸려 비공개 입법 간담회를 추진해왔다. 손잡고 운영위원인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을 중심으로 열린 비공개 입법 간담회는 모두 일곱차례 열렸으며 법률전문가 중심의 실무형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현재 공식 입법 발의 전 검토를 진행중이다. 티에프에는 손잡고 대표 조국 교수를 포함해 각계 법률가와 노무사,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양 노총 실무자가 참석해 논의를 이어왔다.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가압류 문제 설문조사, 손배가압류 소송에서 적용되는 법과 법리 분석, 노조 파괴 사례, 손배가압류 관련 기존 입법안 검토, 노동법 체계에 대한 문제의식,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가압류 해외 법제와 사례(영국, 프랑스)에 대한 발제를 거쳐 입법안에 대한 논의와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김지형 전 대법관은 지난 <한겨레> 인터뷰(8월23일치)에서 법개정과 함께 법 해석의 패러다임 변화를 지적하며 ‘쟁의행위’는 법률 유보 조항조차 없는 헌법상 노동 기본권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한민국 헌법 33조는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인 노동3권을 보장한다. 파업은 본질적으로 사용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자신의 노동과 운명을 틀어쥔 사용자에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일터에서 일하지 않는 권리이다.

 

노동 권리의 자유가 없는 곳에 민주주의는 허상일 뿐이다. 오늘날 노동 권리의 전반적 후퇴는 단지 자본의 이익을 옹호하는 일을 넘어 사회개혁의 핵심 주체인 노동자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일이야말로 본질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와 노동사회의 분리를 넘어선 ‘가치’의 공유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해고자에게 처음 손을 내밀었다. 이 손을 놓지 말아야 한다. 따뜻한 미래는 사람과 사람이 맞잡은 손 사이로, 노란봉투를 타고 온다.

 

석미화 손잡고 활동가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6543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