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09 한겨레] 정당한 쟁의행위? 쟁의행위면 정당하다

 

[토요판] 손잡고
법학자 기고

 

노동자 손배 가압류 문제를 취재하던 기자 한 분이 내게 질문 서너 개를 한꺼번에 쏟아내더니 끝내는 이 문제의 법률적 해결이 왜 이리 어렵냐고 하소연했다. 답답하기는 법률가들도 마찬가지다. 작년(2013년) 1월에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문제점 및 개선방안 토론회’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꼭 10년 전인 2003년에도 같은 주제, 같은 제목의 토론회가 있었다. 이는 10년 동안 법적 상황에 중요한 변화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법률로써 이 문제를 풀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왜 이리 어려운가. 답은 역설적이게도 법에서는 이미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업 같은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단체행동권이라 하는데, 헌법은 단체행동권을 단결권, 단체교섭권과 함께 근로자의 기본적 인권으로서 보장하고, 이를 구체화하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라는 민사면책을 정하고 있다. 민사면책은 정당한 쟁의행위를 이유로는 형벌을 가할 수 없다는 형사면책(제4조)과 해고 등 징계를 금지하는 규정(제81조 제5호)과 함께 쟁의행위 보호의 3대 기둥이다. 이렇듯 우리 법은 이미 쟁의행위에 대한 보호와 함께 손해배상 청구의 금지를 아주 명확하게 정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철도파업 소송은 어떻게 달랐나

 

그렇다면 현실에서 숱하게 일어나고 있는 손해배상 청구 및 법원의 인정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법적 마술에는 헌법상 기본권이 법률로서 금지되거나 법률상 보장하는 바가 법해석을 통해 제한되는 이른바 ‘법 전복’ 현상이 있다. 판례는 엄격한 쟁의행위 정당성론을 통해, 즉 쟁의행위는 오직 정당한 경우에만 민사면책 등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민사책임 등 제반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데, 쟁의행위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주체, 목적, 방법과 시기 및 절차 등에서 판례가 정한 까다로운 요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갖추어야 한다는 이론을 통해, 불법 파업을 양산하고 있다. 일부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의 결정 없이 파업을 해도 불법이다. 단체교섭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노조법이 정한 조정이나 중재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불법이다. 흔하게는 사용자 쪽의 폭력을 막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해도 파업은 불법이 된다. 심지어 조합원 전체의 과반수 찬성이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어려운 요건을 못 지킨 경우는 물론 찬반투표의 절차나 방식이 법률이 정한 것과 조금만 달라도 불법이 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파업도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다. 결국 파업권은 있되 합법 파업은 존재하기 어려운 기이한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일부 검은 법률가들은 법률자문이랍시고 파업이 발생하면 관리자나 폭력배를 동원해서 노동조합의 과격행위를 유도하는 게 상책이라는 창조적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조폐공사 사건처럼 검사가 파업을 유도했다고 마치 애국을 한 양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일도 벌어진다. 노동조합의 과격성을 논하기 전에 합법의 틀을 외국 수준으로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만한 점은 법원의 재판 실무이다. 현해탄의 양안에서 벌어진 철도파업 소송은 40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매우 흥미로운 대조를 보인다. 1994년 9월 일본철도(JR)와 국철노동조합은 민영화 이전 일본국유철도(JNR)가 국철노동조합에 대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종결시키기로 화해하였다. 소송의 원인은 1975년 11월 하순부터 약 1주일 정도 진행된 파업이었는데, 보수 정치권의 압력에 따라 사용자는 무려 202억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1심을 맡은 도쿄지방재판소는 손해배상액의 산정방법 등에 대한 수십 차례의 심리를 열면서 아주 천천히 소송을 진행하여 20년 가까이 선고를 미루었고 노사는 마침내 화해로써 소송을 끝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파업이 2006년에 발생했다. 철도공사는 파업이 종료하자마자 곧장 14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 판결은 소장이 접수된 지 13개월 만인 2007년 10월에, 2심 판결은 항소한 지 16개월 만인 2009년 3월에 선고되었다. 대법원은 상고 23개월 뒤인 2011년 3월 상고를 기각하고 2심 판결을 확정하였다. 최종 확정된 손해배상 액수는 손해액 약 70억원에 법정이자 30억원을 더한 100억800만원이었다. 소송이 제기된 지 4년 반도 되지 않아 소송은 종결되고, 철도노조의 조합비는 전액 압류가 되었으며 조합자산은 경매에 부쳐졌다. 관련 법의 체계, 규정, 이론이 아주 유사한 양국에서 노사 갈등, 파업의 진행, 정치권의 반응 그리고 사용자의 대응 등은 40년의 시간차가 무색할 정도로 너무도 흡사했지만, 오직 소송을 담당한 법원의 태도는 현격하게 달랐고 그에 따른 소송의 결과 역시 천양지차였다.

 

 

선택 강요당한 ‘파업이냐 파산이냐’

 

본래 파업은 누구에게나 불편하고 힘들다. 파업에 열렬히 찬성한 노동자조차도 가끔은 아들과의 주말낚시 약속을 어겨야 하고 흔하게는 몇달간 곤궁한 생활을 해야 하며 심할 때는 가족 간의 불화나 사회적 고립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파업은 결코 쉽게 내리는 결정이 아니며 대개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된다. 이런 고통에 더하여 현재의 판례는 노동자들에게 파업과 파산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많은 노동자들을 자살이라는 절벽으로 내몰았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법률가들이 제안하는 것들은 비슷하다.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먼저 권리남용적인 소송, 즉 손해배상을 핑계로 노조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소송 특히 노조 간부 등을 대상으로 하는 소송은, 2006년 대법원이 단순 참가 근로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 금지시켜야 한다. 불법파업으로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가상적인 영업 손실 전체가 아니라 실제 사용자가 불법행위와 직접 연결되어 입은 손해에 대해서만 배상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손해배상액의 수준도 영국처럼 조합원 5000명 미만이면 1만파운드(약 1740만원), 10만명 이상이면 25만파운드(약 4억3000만원)같이 노동조합의 존립 등을 위협하지 않는 한도에서 제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구조조정이나 사업이전 또는 정리해고 등을 이유로 하는 파업도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이게 입법을 통해 고쳐야 할 첫번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판례상 쟁의행위 정당성론을 변경하는 것이며, 그 첫걸음은 정당한 쟁의행위인가 아닌가를 따질 것이 아니라 쟁의행위이면 우선 정당한 행위로 추정하는 것이다. 노동법 역사에서 일종의 거대한 전환으로 평가되는 파업권 보장의 본래 뜻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http://www.hani.co.kr/arti/SERIES/609/650421.html?recopick=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