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7.11 한겨레] 생계비 사용계획 ‘쌀 20㎏×12달=57만6천원’

 

[토요판] 손잡고 / 손배가압류의 현장  (3)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 손해배상 가압류는 비정규직, 정리해고, 특수고용직, 민영화 등 노동계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노사가 갈등을 겪을 때, 회사가 노동자들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보고 회사를 향해 “법을 지키라”며 투쟁에 나섰고, 그 결과 269억원의 손배 청구와 가압류가 걸렸습니다. 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손잡고 공동 기획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지난 5월 초 손해배상 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모임 ‘손잡고’의 서울 종로구 견지동의 사무실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당시 손잡고는 출범 첫 사업으로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모인 기금을 손배 가압류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의 ‘긴급생계비’로 지원하기 위한 신청서 심사가 진행중이었다. 긴급생계비 지원신청서를 동봉한 편지엔 ‘생계비 사용계획’이 담겨 있었다. 내용은 ‘쌀 20㎏(4만8000원) × 12개월 = 57만6000원’이었다. 손잡고의 석미화 활동가는 “손배 가압류가 문제가 있다는 정도는 알았지만, 생계비 신청 서류에는 노동자들의 삶이 날것 그대로 담겨 있었다. 얼마를 지원받는지 몰라 쌀값만이라도 도와달라는 신청서도 상당수였다”고 말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2010년 11월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서 해고된 조봉환 현대차 비정규직전주지회 사무장이다. 조 사무장은 “금융권 빚이나 주거비, 생활비 등 여러 생계비가 들어가지만, 아이 둘하고 어른 둘인 우리 가족이 굶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쌀값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조 사무장은 2010년 11월 진행한 파업으로 인해 비정규직지회 간부 22명과 함께 22억5836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고 재판이 진행중이다. 조 사무장은 “해고만으로도 힘든데, 수십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마저 하니 언제 가압류가 진행될지 불안하다. 수시로 집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내용증명 우편이 날아와 가족들도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2010년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취지로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환송한 이후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회사에 “법을 지켜라”고 요구하며 노동쟁의에 나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노동쟁의는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불렀다. 현재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 비정규직지회가 청구받은 손해배상 금액은 총 267억9000만원이다.

 

“4명 가족이 굶지는 않았으면…”
손잡고 사무실에 날아온 신청서
해고에 22억 손해배상 청구받은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은
쌀값이라도 달라고 요청했다
대법원 불법파견 판결에도
꿈쩍하지 않는 현대차
“법을 지켜라” 요구하던
비정규직 노조원들도
손해배상 268억원 청구받아
“그냥 라인에 똥 싸라”는 조롱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노조원들에게 “법을 지켜라”는 구호는 아픈 말이다. 이들은 2010년 7월22일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판결을 내리자, 회사를 향해 이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무더기 해고와 징계, 수백억원의 손해배상금 청구와 가압류가 남았다. 지난 2일 오후 울산시 현대차공장 정문 앞에서 만난 황인화(37)씨는 매달 급여를 가압류당하고 있다. 그와 만난 곳은 공교롭게도 4년가량 전인 2010년 11월20일 오후 4시20분께 그가 분신했던 장소였다. 경찰과 회사 쪽이 고용한 용역들이 공장 점거농성 중이던 노동자들을 압박해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자 황씨는 “회사는 법을 지켜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시너를 온몸에 끼얹고 불을 붙였다. 화염은 순식간에 온몸을 뒤덮었으나, 다행히도 재빨리 다가온 동료들이 불을 껐다. 그의 얼굴과 귀에는 여전히 화상 흉터가 깊게 남아 있다.

 

“화상 치료를 하고 2012년 1월에 회사로 복귀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매달 급여가 가압류되고 있어요. 한달에 15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이 빠져나가는데, 내게 걸린 가압류 총액이 5000만원이고, 그중에 2300만원 정도 이미 압류가 됐죠.”

 

현대차 스포츠실용차(SUV) 맥스크루즈 타이어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황씨의 한달 평균 급여는 230만원 정도다. 잔업과 특근에 참여하면 한달에 100만원 이상이 가압류되는 셈이다.

 

“복귀해서 1년여간은 잔업, 특근을 하지 않았어요. 어차피 일해봤자 내가 받는 돈은 150만원으로 정해져 있으니까요. 요즘은 빨리 5000만원을 납부하잔 생각으로 잔업이나 특근 기회가 있으면 하고 있어요. 올해 예순다섯인 어머니를 모시고 둘이서 단촐하게 살기 때문에 생활은 겨우 되는 편이에요.”

 

그래도 황씨는 ‘살림살이가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그는 “급여 가압류를 당하는 동료들 가운에 아이 셋을 키우는 사람도 있고, 이혼할 위기에 놓인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부양할 가족이 많은 사람에 비해 괜찮다는 의미다. 이처럼 급여 가압류가 노동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에 현장 노동자들에겐 노조 활동에 참여하지 말라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노조 간부뿐 아니라 대의원, 일반 조합원 등 가리지 않고 가압류를 걸기 때문에 현장 노동자들은 잘못된 것을 봐도 입을 닫고 살죠. 이미 걸린 가압류를 풀어준다는 조건으로 회유하기도 합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싸움은 길고도 지난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위기를 겪은 1998년, 현대차는 그해 6월 4830명의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노조가 반대해 파업에 돌입하자, 회사는 2678명에게 해고통보를 했고, 이어서 1569명의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2000년대 들어 업황이 회복되자, 현대차는 신규 정규직 채용이 아닌 사내하청업체를 늘리면서 일손을 채웠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통계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에는 기업이 직접 고용한 정규직, 계약직의 숫자만 공시된다. 사내하청업체에 의해 간접고용된 이들은 동일 노동을 하면서도 적은 급여를 받았고, 고용 불안에 시달렸다. 차별과 모멸적인 대우도 적지 않았다. 지난 2일 울산에서 만난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자 김정진(35)씨는 “하청업체 직원들은 몸이 아파도 조퇴하지 못하고, 월차나 휴가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심지어 화장실조차 안 보내줬다. 화장실 좀 가겠다고 하면, ‘그냥 라인에 똥 싸라’며 조롱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말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003년 7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김씨는 “노조가 생기니까 하청업체 노동자들도 원할 때 화장실에 갈 수 있고, 모멸적인 욕을 듣는 경우도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황급히 다가온 봉고차 세 대의 정체는…

 

비정규직 노조는 회사 쪽에 불법파견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현대차로부터 직접적으로 업무를 지시받는 ‘사실상의 파견’이므로 불법이고, 법적으로 고용되고 2년이 지나면 원청업체에 고용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회사도 사내하청업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2002년 3월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인 예성기업에 입사한 최병승씨는 투쟁의 선봉에 섰다.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된 직후인 2005년 3월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고, 이듬해부터 법적 소송에 나섰다. 2007년 7월 서울행정법원과 2008년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연이어 패소했지만, 2010년 7월 대법원은 최병승씨의 손을 들어줘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현대차의 재상고로 2012년 2월 대법원은 “원고(최병승)가 예성기업에 고용된 후 참가인(현대차) 사업장에 파견되어 참가인으로부터 직접 노무지휘를 받는 근로자 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최종 판결했다. 최병승씨가 지방노동위에 문제제기를 하고서 최종 법적 판결을 받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하지만 아직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대법원 판결 이후 2012년 5월 중앙노동위원회는 최병승씨의 원직복직을 결정했다. 현대차는 이 결정에 반발해 그해 6월 중앙노동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차 비정규직회는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회사에 협상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여전히 미온적이었다. 최병승씨는 그해 10월17일 천의봉(33) 비정규직지회 법규부장과 함께 현대차 울산공장 주차장에 있는 높이 50m의 송전탑 23m 지점에 천막을 치고 고공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대선 직전 현대차의 불법파견과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자, 현대차는 그해 11월22일 최씨를 신규 채용한다고 통보했다. 불법파견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물타기였다. 현대차는 물타기뿐 아니라 버티기도 병행했다. 2010년 최병승씨가 승소한 파기환송심 판결 이후 현대차 전국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은 각 지역의 노동위에 불법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냈고, 노동위는 759명의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구제 명령을 내렸다. 현대차는 이 명령마저 이행하지 않고 이행강제금만 납부하고 있다.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현대차가 불법파견 문제로 납부한 이행강제금만 총 35억5700만원에 달한다.

 

지난 2일 오후,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 정문 앞 50미터 높이의 송전탑 아래에서 천의봉 부장을 만났다. 천 부장은 최병승씨와 함께 2012년 10월17일부터 2013년 8월8일까지 296일간 이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철탑 위에서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모두 겪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천 부장은 송전탑 위에 있었다. 이날 날씨는 햇볕이 뜨겁고 후텁지근했다. 기자와 천 부장, 황인화, 김정진씨가 송전탑에 다가가자, 황급히 봉고차 세 대가 접근했다. 창문 틈 사이로 눈빛이 빛났다. 황씨는 “아이고, 아직도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네.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시정하지 않으면서 비정규직 용역 고용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자가 봉고차 쪽으로 다가갔다. 현대차 로고가 박힌 옷을 입은 직원들이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취재하러 왔습니다. 현대차 직원인가요?”라는 역질문엔 답하지 않고 그들은 조용히 창문을 올렸다. 송전탑을 바라보던 천 부장은 이 싸움이 어렵게 진행된 이유를 설명했다.

 

“현대차는 불법파견 판결이 최병승씨 개인에게만 적용된다는 입장이에요. 그래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에는 응하지 않고, 신규 채용으로 물타기를 하고 있죠. 사실 노조도 실책이 있었어요. 2005년 노조가 소송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불법파견에 대해 최병승씨가 대표로 소송을 했어요. 한명이 대표로 소송해 이기면,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들도 혜택을 볼 것이라 기대한 거죠. 순진한 기대였죠. 물론 돈이 없어서 집단 소송을 할 수 없었던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안타깝긴 하죠. 지금 천여명의 비정규직지회 노조원들이 소송으로 권리를 인정받으려면 또 몇 년이 걸리고, 얼마의 비용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이미 300억원에 가까운 손해배상금을 청구받고, 가압류도 당하고 있어요.”

 

 

오른쪽은 비정규직, 왼쪽은 정규직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청구받은 손해배상금의 대부분은 2010년 11월 울산 시트공장 점거농성에서 기인한다. 울산지방법원은 2010년의 농성을 ‘불법’으로 보고, 노조 쪽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1심 판결들을 내고 있다. 불법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은 ‘사내하청업체의 근로자들이 현대차와 직접 근로계약관계에 있지 않아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다. 이미 2010년 대법원은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현대차로부터 직접적인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 파견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두 판결을 정리하면 ‘사내하청업체가 불법파견을 해도, 노동자는 여전히 불법파견의 주체인 하청업체하고만 교섭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은 사내하청 고용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10년에 가까운 투쟁 끝에 ‘불법파견’이라는 법적인 승리도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현대차의 고용 형태는 개선됐을까. 울산에서 만난 천의봉, 황인화, 김정진씨는 한목소리로 “아니다”고 말한다. 천씨는 “현대차는 여전히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신규채용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손배 청구로 노동자들을 옥죄는 모습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노조 집행부뿐 아니라, 일반 조합원들에게도 손배와 가압류를 걸었다. 인력 재배치도 진행 중이다. 황씨는 “여전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원들이 컨베이어벨트 좌우에 섞여서 일하는 곳이 꽤 있다. 나 역시 오른쪽 타이어를 달고 정규직 직원이 왼쪽을 맡는다. 하지만 하나의 공정 자체를 하도급화하기 위해 인력 재조정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촉탁직’이란 이름의 새로운 고용 형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천씨는 “불법파견 문제가 10여년간 계속되다 보니, 회사는 간접고용이 아닌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인 ‘촉탁직’을 급속히 늘리고 있다. 촉탁직은 대부분 2년 미만으로 고용하고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일도 빈번하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촉탁직이 늘다보니 업무의 수행과 제품의 완성도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노조 대의원 자격으로 파업에 참여해 해고를 당한 김씨는 “시간은 우리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급여 통장이 가압류된 상태다. 당시까지 통장에 모은 수백만원의 예금을 찾지 못했고, 지금도 자기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지 못한다. 그는 “권리를 찾기 위한 소송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회사의 가압류는 순식간에 이뤄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동자들의 삶만 피폐해진다”고 말했다.

 

울산/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6465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