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노란봉투’
한 자동차 부품 조립공장, 구조조정을 거쳐 한 차례 팔린 회사의 새로운 사주가 또다시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를 매각하려 하자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60일간 파업을 벌인다.
살기 위한 파업이었지만, 결과는 50억 원의 손해배상·가압류였다.
평생을 일해도 만질 수 없는 거액 앞에 개인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노조를 탈퇴하고 복귀하면 모든 것을 무마시켜주겠다고 종용했다.
결국 노조를 탈퇴하고 회사에 복귀했다. 그러자 회사는 파업하는 노조를 깨부수라고 요구했다. 그동안 형제처럼 함께 웃으며 지내던 동료들끼리 서로 반목한 채 쇠파이프를 휘둘러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달 25일부터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 중인 연극 ‘노란봉투’의 큰 줄거리이다.
“그들은 돈으로 뭉치는데, 우리는 ‘무엇’으로 뭉칠 수 있을까.”
7일 공연 후 관객과 대화에서 '노란봉투'의 각본을 쓴 이양구 작가는 씨앤엠 파업 노동자에 실제로 들은 이 질문을 관객에게 묻고 함께 답을 구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이 질문에 대한 관객들의 여러 답변이 쏟아졌지만 어느 하나 명쾌한 것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이 있었다면 답이 무엇이든 ‘뭉쳐야 한다’였다.
실제로 수십억의 손배·가압류는 노동자들을 반목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복직을,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했던 노동자들이 손배·가압류를 당하자 서로 싸우고, 배신을 선택했다. 조각 내면 된다는 걸 아는 회사의 책략에 노동자들은 그대로 말려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또 다른 바깥에서 더 큰 ‘뭉침’이 이루어졌다.
쌍용자동차 노조가 파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회사와 국가가 파업 노동자들에게 청구한 47억의 손배 배상액에 대해, 배춘환 주부가 4만 7000원씩 10만 명이 마음을 모아보자고 제안하면서 이 캠페인이 시작됐다.
회사가 주는 월급봉투인 노란봉투가 누군가에게는 삶을 포기하도록 하는 해고봉투라는 사실에 착안해 시민들이 따뜻한 마음을 모으기로 한 것이다.
가수 이효리, 노엄 촘스키, 슬라보예 지젝 등 유명 인사들과 시민들이 참여해 총 111일 동안 4만 7547명이 14억 7000여만 원을 모금하기에 이르렀다. 연대의 힘이었다.
이 돈은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전달됐다. 그리고 이 연극이 나왔다. 시민모임 ‘손잡고’와 연극인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된 이 연극으로 또 다른 연대를 만들었다.
이어 “10년 전만 해도 수업 때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 토론하자고 하면 불쾌해하고 한쪽으로 몰고 간다는 학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얘기도 잘하고 분위기도 다르다. 보고 느끼는 게 많기 때문이다”면서 “이 시대에 이 연극이 노동운동에도 많은 힘을 줄 것이다. 고맙다”고 전했다.
연극은 “돈으로 뭉치는 자본가들을 상대로, 우리는 ‘무엇’으로 뭉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지만 답을 알려주지도, 그렇다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함께 손을 잡으면 견딜 수도 있고, 언젠가는 이길 수도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