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6.22 한겨레] “돈이 급해 고금리 대출에 자꾸 눈이 가요”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차 본사 앞에서 만난 해고노동자 장영규(44)씨는 본인 명의의 통장이 없다. 통장을 만들면 가압류를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엔 손배 가압류가 무엇인지 감이 잘 안 왔는데 지금은 분명히 안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무서운 존재가 손배 가압류”라고 말했다. 평택/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차 본사 앞에서 만난 해고노동자 장영규(44)씨는 본인 명의의 통장이 없다. 통장을 만들면 가압류를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엔 손배 가압류가 무엇인지 감이 잘 안 왔는데 지금은 분명히 안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무서운 존재가 손배 가압류”라고 말했다. 평택/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손잡고
손배 가압류의 현장1. 쌍용차 장영규

▶ 언론은 사건·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주목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 26명이 사망하기 전에 이들의 처지를 알고 손을 내밀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서 이제나마 찾아 나섭니다. 대상은 손해배상 가압류로 어려움을 겪어온 노동자들입니다. 이들을 만나 손배 가압류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극한까지 내모는지를 듣고자 합니다. -손잡고 공동 기획은 매주 연재됩니다.
“이틀 후면 급여를 받는 날이다. 6개월 넘게 급여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내가 없더라도 우리 가족 보살펴주기 바란다.”(2003년 1월9일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의 유서)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잘못은 자신들이 저지르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구속에 해고까지….”(2003년 10월17일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씨의 유서)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원.”(2012년 12월21일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씨의 유서)
손해배상 가압류는 사실 해묵은 문제다. 2003년엔 배달호, 김주익씨의 죽음을 계기로 손배 가압류가 노동계뿐 아니라 정치권의 핵심 의제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하지만 11년이 지난 지금도 손배 가압류는 해결이 요원하다. 민주노총의 자료를 보면, 2003년 10월을 기준으로 전국 51개 사업장에 청구된 손해배상 금액은 574억원이지만, 올해 6월 기준 전국 17개 사업장에 청구된 금액은 1691억원으로 늘었다. 사업장은 줄었지만, 청구금액은 더 늘었다. 더 중요한 것은 수십억에서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손해배상 청구금액 이면의 노동자들의 삶이다.

지난해 12월 ‘노란봉투 캠페인’의 제안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배춘환(39)씨는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부과된 ‘47억원’이라는 금액의 이면을 상상했다. 자신도 집값 마련을 위해 수천만원의 빚을 지고, 자녀들 학원비와 뱃속에서 자라는 셋째 아이의 육아비로 고민인데, 47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내야 하는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지를 떠올린 것이다.

는 이 점에 주목했다. 실제 ‘169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액 이면에서 손배 가압류가 실제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고자 손배 가압류 해결을 위한 시민모임 ‘손잡고’와 공동 기획으로 해당 사업장을 찾기로 했다. 이번 기획은 현실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해결책을 ‘상상’하기 위함이다.

쌍용차 정리해고에 맞서다 회사·정부에 47억 배상 판결 5년간 퇴직금·월급·부동산 가압류 시달리며 신용불량자로 가족 깨지고 양육비도 못 감당

“은행에서 돈 빌리기 어려우니 주변에 몇몇 어려운 분들이 연이자 30% 넘는 대출을 불가피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동료 95명과 함께 긴급생계비 신청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평택의 쌍용자동차 본사 앞에서 만난 쌍용차 해고노동자 장영규(44)씨는 오랜만에 생긴 일감을 포기했다고 했다. “요즘은 건설 경기가 나빠서 일감도 별로 없는데, 오늘 5일 만에 일 나갈 기회를 포기했어요. 인터뷰와 시간이 겹쳐서요.” 2009년 쌍용차 노조가 옥쇄파업을 할 당시 노조 대외협력실장을 맡았던 그는 현재 건설현장을 전전하는 일용직 노동자다.

쌍용차 노동자 2646명에게 정리해고가 통보된 날이 2009년 4월8일. 지난 5년간 해고자와 가족 26명이 우울증·질병 등으로 사망했지만 변하지 않은 고통의 원인이 있다. 바로 노동자들에게 청구된 손해배상 금액과 가압류다. 현재 쌍용차 해고자, 복직자들에게 걸린 손해배상 금액은 158억원에 이른다. 파업으로 인해 쌍용차에 보험금을 지급한 메리츠화재가 보험금 전액인 110억원을 노동자한테서 돌려받겠다고 구상권을 행사해 재판이 진행중이다. 이미 내려진 판결도 있다. 지난해 12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은 쌍용차 해고자와 복직자 139명에게 회사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4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파업에 따른 손실과 다친 경찰들의 치료비 등을 배상하라는 것이다. 애초 회사와 정부의 청구금액은 192억원에 달했으나, 법원은 이 중 47억원을 인정했다. 1심 판결이 지난해 12월 나왔지만, 가압류는 2009년 파업 직후부터 집행돼 급여, 부동산, 퇴직금 등 28억9000만원이 묶여 있다. 가압류는 노동자들의 삶을 뿌리부터 파괴한 주범이었다. 2009년 8월 쌍용차 파업이 끝나자, 장씨에게 남겨진 것은 집과 퇴직금에 걸린 가압류 통보였다.

“저는 회사와 대한민국 정부 모두에 손해배상을 청구받았습니다. 퇴직금 2000만원과 집이 가압류로 걸렸죠.”
그는 주택과 자녀들 교육비, 생활비 등의 마련을 위해 이미 1억원 정도의 빚을 졌지만, 정리해고를 당하자 이자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2009년 말 그는 신용불량자 신세가 된다. 정리해고 이후 2년간 노조 간부를 맡은 그의 수입은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지원하는 최저생계비 97만원이 전부였다. 이 돈으론 그동안 빌린 돈의 이자와 4인 가족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2011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그해 6월8일, 맡고 있던 모든 역할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동료들에게 밝혔다. 정리해고가 법적 효력을 얻은 날로부터 정확히 2년 뒤였다.

“생활이 안되니까, 애들 엄마와 사이가 너무 안 좋아져서 더 이상 노조활동을 할 수가 없었어요. 2009년 파업 당시엔 아내가 아이들 데리고 회사로 찾아와 응원도 하곤 했죠. 하지만 법원에서 날아온 가압류 통보장을 보고서 아내와 자녀들이 많이 상처를 받았고, 그런데도 제가 노조활동 하느라 가족들 잘 보살피지 못하니 사이가 더 안 좋아진 거죠. 특히 딸이 아빠를 많이 미워하는데, 그게 마음에 많이 걸리네요.”

그나마 장씨가 자신의 얘기를 하게 된 것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치유공동체 ‘와락’에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와 한 상담 덕분이다. 그는 “빚이 많다거나, 생활이 어렵다거나, 가족과 사이가 나빠졌다는 얘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 창피한 일로 여겨 속으로 담아두기만 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못 잘 정도로 매일매일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활동을 그만둔 이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15년간 자동차 조립라인에서 일해온 그가 새 직장을 찾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고정된 급여를 받게 되면 또 가압류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압류 걸린 동지들 대부분 일용직을 전전합니다. 일자리도 마땅치 않고, 그나마 현금으로 일당을 받기 때문이죠. 요즘은 건설 경기가 안 좋아 일감도 별로 없고, 중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서 경쟁도 꽤 치열합니다.”
그런 그가 손배 가압류에 걸린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노란봉투 캠페인을 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파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안 좋잖아요. 노동자가 하는 행위를 무조건 불법으로 보는 편견도 많고요. 몇몇 활동가들이나 우리를 지지해준다고 생각했는데, 노란봉투 캠페인이 일반 시민들에게서 호응을 얻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노란봉투로 모인 기금을 배분하는 사업을 하는 ‘손잡고’는 지난 5월1일 손배 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긴급생계비(1인당 최대 490만원)를 지원하겠다고 공고를 내어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장씨는 다른 쌍용차 해고자·복직자 95명과 신청서를 냈다. 나름의 심사를 거쳐 장씨가 받게 될 금액은 400만원 정도다. 그는 이 돈을 어떻게 쓰려고 할까.

“이혼하고서 애들 양육비로 매달 50만원씩 주기로 했지만 그것도 버거워서 못 주기도 했어요. 노란봉투에서 받은 돈으로 애들 양육비와 용돈 좀 주고 옷도 사주고 싶어요. 고3인 딸이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 걸어온대요. 차비를 아낀다고 그러는 모양이에요. 딸이 집에 돈이 없는 것을 알고 대학도 안 간다는 것 같던데, 그동안 납입한 국민연금이라도 미리 받아서 학자금으로 좀 쓰고 싶어요.”

1억원 가압류…말 잘 들으란 본보기

전국 손해배상 청구 사업장 현황
▲전국 손해배상 청구 사업장 현황

손배 가압류가 그의 손과 발을 꽁꽁 묶어놓은 까닭에 간혹 급하게 돈이 필요할 경우 티브이에서 자주 광고하는 고금리 대출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쉬웠다. 그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우니 정 돈이 필요할 때 티브이에서 광고하는 연이자 30%가 넘는 대출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주변에 몇몇 어려운 분들도 불가피하게 그런 대출을 사용하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한번 해고를 당하고서 다시 쌍용차에 복직한 노동자에게도 가압류의 칼날은 비껴가지 않는다. 2009년 정리해고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를 당했던 채희국(43)씨는 복직 소송에 승소해 지난해 3월 복직했다. 채씨는 현재 매달 월급의 절반만을 받고 있다. 기본급이 많지 않은 자동차업계의 특성상 그는 잔업, 특근을 마다하지 않으며 연장·심야·휴일근로 수당을 받고 있지만, 가압류는 이 모든 금액을 반영해 실수령액의 절반을 떼어간다. 상여금도 정확히 절반이 가압류된다. 그는 “매달 월급을 절반밖에 받지 못하니 맞벌이를 안 할 수가 없어 아내도 일을 나간다. 퇴직금을 포함해 가압류 걸린 금액이 총 1억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에 대한 손배 가압류가 ‘본보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들에게 ‘회사 말을 안 들으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죠. 가압류는 정말 무서운 칼이에요. 압류를 풀어준다며 노동자들의 사이를 갈라놓고, 노조활동을 못 하도록 회유하기도 하죠.”
장씨와 채씨 둘 다 2009년 이전엔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문제를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채씨는 “월급 가압류를 당해 보니 2003년에 돌아가신 배달호, 김주익 열사가 정말 힘들었겠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부끄러워졌다”고 말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관련 법 규정을 손질하는 것이다. 장씨는 “노란봉투 캠페인이 정말 고맙지만 모금으로만 그쳐선 안 된다. 손배 가압류로 노동자들의 삶이 파탄 나고 노조가 와해되는 구조적인 문제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채씨는 “결국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오는 이유는 노동자들의 쟁의가 불법이라는 이유 때문인데, 노동자와 경영진에게 들이대는 법적인 잣대가 다르다. 용역깡패를 동원하는 경영진의 행태는 합법이고, 이에 방어하며 불가피하게 행사한 폭력은 바로 불법이 된다. 또 우발적인 폭력이 발생하면 행위자만이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쟁의 전체가 불법화된다. 노조 입장에선 아무리 합법 파업을 하려고 해도 회사나 정부가 이를 불법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쉽다”고 말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6433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