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짜리 신청서에는 이름 말고도 적어야 할 항목이 많았다. 이정현씨(가명)는 25일간 공장을 점거했던 2010년 11월 이후 해고자로 살았다. 이를 증명하듯 신청서에 채워넣어야 할 숫자들은 온통 ‘마이너스’였다. 그는 가족사항·건강사항·주거사항·경제사항·재판사항 등등의 신청서 항목을 성실히 채웠다. 그의 이름 앞으로 걸려 있는 손배·가압류 30억원, 빚 3500만원 역시 기록에 포함됐다. 아내가 벌어오는 월 135만원이 이씨 가족의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불법 파견 판결을 요구하는 재판은 한없이 뒤로 밀리는 상황에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마저 꺾어버리려는 손해배상 30억원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입니다. (중략)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긴급 생계를 신청합니다.”
신청서의 사용 계획 항목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되어 있었다. 의료비·주거비·교육비·생활비. ‘긴급 생계’를 신청한다던 그가 적어넣은 칸은 단 한 칸이었다. 그는 생활비 항목에 이렇게 적었다.
‘쌀 20㎏ 4만8000원×12개월=57만6000원.’
세월호 참사를 통해 ‘재발견’된 노란봉투
지난 5월31일 ‘노란봉투-4만7000원의 기적’ 캠페인이 공식 종료됐다. 2월10일 시작되어 16주(112일) 동안 3차에 걸쳐 이어져온 캠페인 참여 인원은 4만7547명, 최종 모금액은 14억6874만1745원이었다.
‘노란봉투 현상’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112일이었다. 모금 운동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표현도 과하지 않았다. 노동 관련 모금인 만큼 대기업 같은 큰손을 기대할 수 없었기에 모험에 가까웠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건’을 만들어냈다.
애초 모금 목표액으로 설정했던 4억7000만원은 16일 만인 2월25일 달성됐다. 다시 4억7000만원을 목표로 2차 모금이 시작되었고, 17일 만인 3월14일 목표액을 채웠다. 9억4000만원이 모이는 데는 3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기구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가 2월26일 공식 출범하기도 했다.
아름다운재단은 3차 캠페인을 열며 목표액 대신 4만7000명을 모으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다. 더 많은 사람이 손배·가압류 문제의 매듭을 푸는 데 손을 보탤 수 있도록, 돈이 아닌 사람에 주목한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난 1·2차 캠페인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2월26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기구 ‘손잡고’가 공식 출범했다. 인사말을 하고 있는 조국 손잡고 공동대표.
2월26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기구 ‘손잡고’가 공식 출범했다. 인사말을 하고 있는 조국 손잡고 공동대표.
긴급생계비 지원은 물론 ‘법·제도 개선’ 목표도 추가됐다. “사람 모으는 일이 돈 모으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참여자 수는 4만7547명으로 애초 목표를 넘어섰다. 울산 현대차 노조에서 2만500명이 참여하는 등, 대기업 대신 ‘대기업 노동조합’이 움직인 덕분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손배·가압류 사업장이 없는 한국노총 소속의 SKT 노동조합의 참여였다. SKT 노동조합 노조원 740명은 3631만1000원을 모았다. 김봉호 위원장은 “모두가 불안한 시기에 ‘우리’를 위해 한 발짝 다가서주시길 당부드린다”라며 노조원들을 독려했다.
그사이 모금 배분을 위한 실무도 차근차근 절차를 밟았다. 손잡고는 5월1일 지원사업 공고를 내고 5월23일까지 지원 대상자 신청을 받았다. 이정현씨를 비롯해 140여 명의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들이 신청서를 접수했다. 5월28일부터 보름 동안 심사위원 5명(위원장 김두식 경북대 법학과 교수,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수호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 이숙이 편집국장, 좌세준 변호사)이 심사를 진행했다.
예상보다 신청자가 적은 것에 대해 손잡고의 석미화 활동가는 “자신의 처지도 어렵지만, 노동조합의 테두리 안에조차 들어와 있지 못한 노동자들이 더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해고자들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지원 신청액 역시 이정현씨처럼 최소한으로, 꼭 필요한 만큼만 요청하곤 했다. 혹시나 자기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해고 노동자가 충분히 지원받지 못할까 봐 염려한 것이었다. 노란봉투를 모아준 사람들의 정성을 생각하면 단돈 1원도 허투루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신청자들의 마음이었다고 석 활동가는 설명했다.
배분사업 심사 기준과 과정 및 결과는 6월19일 오후 1시 서울시청 시민청 바스락홀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는 최초 제안자 배춘환씨를 비롯한 기부자들의 미니 토크 콘서트도 열린다. 배씨는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합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4만7000원을 편집국에 보내 노란봉투 캠페인의 ‘씨앗’을 심었다.
서울 성심여고 3학년 정예린 학생도 이 자리에 참석할 예정이다. 정양은 노란봉투 40여 개를 구해 손배·가압류 관련 기사를 프린트하고, 참여를 바라는 편지를 직접 써넣은 후 친구들과 선생님께 돌려 41만원을 모았다.
정양은 지난 5월2일 아름다운재단으로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세월호 참사 가운데에도 많은 친구들이 제 예상보다 더 관심 있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줬습니다. (중략) 수십억원의 어마어마한 손배·가압류 금액에 비하면, 그것을 강요하는 폭력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액수지만 해고 노동자분들과 함께하는 사람이 34명 더 늘었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외면하지 않을 것, 고개 돌리지 않을 것, 그리고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약속하겠습니다.” 정양은 자신의 편지 외에도 친구·선생님들의 메시지와 그림으로 앞뒤를 꽉꽉 채운 B5 크기의 ‘롤링페이퍼’를 함께 보내왔다.
▲손잡고 활동가들이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들이 접수한 신청서의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손잡고 활동가들이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들이 접수한 신청서의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노란봉투 캠페인을 위해 준비했던 각종 행사는 줄줄이 취소됐다. 그러나 별다른 홍보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처럼 노란봉투는 끊이지 않고 아름다운재단으로 돌아왔다.
온라인 및 무통장 참여가 꾸준했음은 물론이고, 우편으로 발송된 캠페인 홍보물(DM)의 회신율은 아름다운재단을 여러 차례 놀라게 했다. “1%만 돌아와도 대성공”이라며 크게 기대하지 않은 터였다. 그러나 캠페인 종료일인 5월31일까지 재단으로 돌아온 노란봉투는 모두 1422통, 회신된 봉투 안에 들어 있던 돈만 6416만원이었다. 재단 내부에서는 “모금학계에 보고해야 할 사항”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그렇게 느리지만 꾸준히, 모금 그래프는 위로 올라갔다. 그래프가 움직이는 동안, 사람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였다. 모금 초반과 참여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념일 선물로 기부 영수증을 대신 주는 이들도 여전했다. 스승의 날 선물을 대신해 노란봉투 기부 영수증을 전달한 제자들이 있는가 하면, 제자로부터 “옷 한 벌 해 입으시라”며 받은 현금을 자신의 몫까지 포함해서 두 배로 노란봉투에 채워 담은 스승도 있었다. “술을 하루 참고” “담뱃값을 아껴” “외식을 건너뛰며” “데이트 한 번 생략” 하는 등 사람들은 자신의 무언가를 포기하는 대신 4만7000원씩 기꺼이 내놓았다. 한 사람이 여러 차례 기부에 참여한 사례가 많다는 점도 특이점이다.
기부 참여는 기부자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 기부자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것들을 잃어왔습니다. 아마 제일 먼저 잃은 것은 ‘자존심’일 겁니다. (중략) 지금 생각해보니, 봉투를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은 그나마 지금껏 내 안에 남아 있었던 ‘양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략) 함께 나서지 못했던 것이 미안하고, 이 노란봉투로 인해 제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모금 종료일인 5월31일 동료들과 함께 모았다며 노란봉투에 47만원을 담아 아름다운재단에 찾아온 한 시민은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이렇게 끝나면 안 된다”라는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삼킨 바다에 마음을 닫았던 사람들은, 다시는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다 노란봉투를 ‘재발견’하기도 했다. 아름다운재단 성혜경 간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너무 답답해하다가 이거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기부자들의 메시지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 싶다는 필부필부의 마음이 노란봉투와 만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도 뭐가 됐든 같이 해봤으면 좋겠어요”
노란봉투 캠페인은 손배·가압류 문제를 정치권 의제로 끌어올리는 단계까지 진입시켰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는 관련 법 개정을 중점 추진 법안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제339호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은 없다’ 기사 참조). 손배·가압류라는 ‘폭력’의 매듭을 푸는 마지막 단계는 이렇게 정치권의 숙제로 남겨졌다. 또한 현직 판사가 법원 내부 전산망에 손배·가압류 문제 판결과 관련해 올린 글( 제342호 ‘“우리의 판결은 공평한가?” 현직 판사의 제안’ 참조)을 통해 법조계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당장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정치권이나 법조계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한 게 현실이다. 해고의 사유를 놓고 다투는 것은 해야 할 일이지만, 삶은 명분만으로 살아지지 않았다. 모금 배분 실무를 담당한 손잡고의 석미화 활동가는 신청서를 정리하면서 더 간절해졌다. “해고자 신분으로는 은행 빚을 질 수도 없어서 부채 증명이 안 되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이야 당장 몇십 만원, 몇백 만원을 지원받겠지만 정말 ‘가뭄에 물 한 모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다. 지속적으로 지원이 필요하다.”
손배·가압류로 고통당하는 해고 노동자들의 상황은 석 활동가가 알고 있던 대로였다. 그러나 월급과 퇴직금, 자동차와 집과 통장이 묶여 있는 동안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쓰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알고 봐도 답답하기만 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스물여섯 명의 구술을 바탕으로 쓰인 르포 에세이 (정혜윤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에서 이현준씨는 77일간의 옥쇄 파업에 참여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되자 (자동차) 정비 과정에서 배운 대로 했다. ‘돌아보면 어깨 너머 누군가 있다’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려면 누군가 도와야 한다’.(36쪽)” ‘연대’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이현준씨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이갑호씨는 도와준 사람들을 향한 고마움으로 희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해고되고 보니까 자기 일 아닌데도 걱정하고 챙겨주고. 내가 그 사람들에게 받은 만큼 나도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어요. 그렇게 살면서 일상을 찾고 싶어요.(231쪽)”
그리고 고동민씨의 말은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한, 그리고 앞으로 참여할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목소리였다. “김정우 지부장이 그래요. ‘남는 것은 사람이다. 혹여 진다 하더라도 남는 건 사람이다.’ (중략) 우린 뭔가 해본 거잖아요. 앞으로도 뭐가 됐든 같이 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같이할 형식들! 그게 뭔지 찾았으면 좋겠어요.(236쪽)”
아름다운재단과 손잡고는 ‘노란봉투 시즌 2’를 위한 행정 절차를 준비 중이다.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의 무너진 치아가 되어주고, 자녀들의 연필이 되고, 무엇보다 이들이 먹을 따뜻한 밥 한 끼를 위해서. 그리고 종내는 법과 제도가 개선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기 위해서. ‘함께’ 살기 위한 마음이 만든 기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