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노조탄압’ 수법으로 자리 잡은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 시민사회가 공동 대책 기구를 출범한다.
지난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와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간 ‘손배가압류’ 문제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노동자들의 목을 옥죄고 있다. 2012년 말,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도 회사가 노조에게 청구한 158억의 손해배상을 비판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연말, 법원은 정리해고에 맞서 77일간의 파업을 벌였던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아울러 비정규직 투쟁을 이어온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122억, 한진중공업 노조에는 59억을 각각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철도공사는 철도민영화 저지 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를 상대로 77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에 손해배상이 청구된 총 금액은 1,119억에 달한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상대로 한 수 백 억 대의 손배가압류가 노조탄압의 수법으로 악용되면서, 노동계를 비롯한 학계, 시민사회, 정치권 등에서 손배가압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조국 서울대학교 교수, 서해성 소설가, 권영국 민변 변호사,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등 25명의 학계, 노동계, 시민사회, 문화예술 인사와 단체들은 ‘손배가압류 없는 세상을 위한 손잡고(가칭)’를 공동 제안한 상태다.
공동제안자를 비롯해 시민사회, 정치권, 노동계, 학계 인사 40여 명은 24일 오후 7시, 평화박물관에서 대책기구 결성을 위한 1차 준비모임을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이 자리에서 사업방향과 기조, 이후 일정 등을 논의하고 대책기구인 출범을 구체화했다.
우선 ‘손잡고’는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손해배상 현황과 구체적 피해사례를 수집하고 이를 여론화 시키는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이와 함께 업무방해죄와 손해배상 등 법제도 개선을 비롯해 사회적 모금활동, 캠페인, 연구조사 등을 병행한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조 파괴 사업장의 경우, 자본은 손배가압류로 노조를 압살한다. 손배가압류를 철회하는 조건으로 노동자들이 노조를 떠나기도 하고, 개별에게 부과되기도 한다”며 “현재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조파괴 사업장들은 노조가 무력화되지 않을 때까지 손배가압류가 취하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과 교수는 “외국에는 노동법원이 따로 있지만, 우리는 노동법의 문제를 민법의 문제로 보고 민사로 처리한다. 업무방해죄와 손해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법인 형법과 민법을 바꿔야 하는 것이라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특히 경총 등에서 격렬히 반대할 법안이며, 새누리당도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범야권에서 이 문제를 공동공약으로 설정하고, 적어도 500~600일 동안은 국회 앞에서 지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초기 제안자 100명 이상을 중심으로, 보통의 개인들에게도 참여를 열어 ‘손을 보태는 방식’으로 참가 구성을 넓혀 나간다는 계획이다. 본격적인 대책기구 출범은 2월 중순 경 진행될 예정이며, 이에 앞서 오는 2월 5일 운영위원 회의를 개최하고 구체적인 출범 일정을 확정한다.
기구가 출범하면 손배가압류 노동자 증언대회와 사회적 모금을 위한 공동캠페인, 연속 언론 기고, 실태조사, 불매운동. 연구조사 등의 활동도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