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위협 달라진 게 없구나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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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사내하청 노조)에 올해 손해배상 소장이 날아들었다. 이 일은 현대차 사내하청 여성 노동자 2명이 일하던 공정에 현대차가 ‘정규직 촉탁직’을 배치하도록 일방적으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정규직 촉탁직’은 정년이 된 정규직을 1년 촉탁 계약한 경우를 말한다. 원청이 직접 고용한 계약직에 해당한다. 지회가 일을 빼앗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2명의 처우에 대해 항의하자, 현대차는 정규직 노동자 3명이 배치되어 일하던 ‘다른’ 공정에 기존에 일하던 사내하청 여성 노동자 2명을 배치하겠다고 사내하청 업체를 통해 알렸다.
정규직·비정규직 여부와 성별을 떠나, ‘3명의 노동력을 2명이 대체하라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비정규직지회는 판단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논의·결정구조에서 당사자들은 배제되었다. 이에 비정규직지회가 절차에 따라 파업을 결정하고, 하청업체를 상대로 파업을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가 남성 노동자 3명이 하던 일을 여성 노동자 2명도 ‘할 수 있다’고 했으니, 파업 대체인력 역시 2명만 투입하라고 주장했다. 애초 해당 공정에 대체인력 3명을 투입하려던 사측은 결국 2명을 투입했고, 이날 라인은 세 번 정지했다. 원청인 현대차는 하청업체에 약 515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하청업체는 해당 금액 전액을 노동자 개개인에게 청구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기아차 비정규직, 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원,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에 이어 벌써 네 번째 비정규직 사업장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비정규직에 대한 가처분이나, 불발로 끝난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에 대한 ‘손배 예고 공문’까지 포함하면, 비정규직에 대한 손배 위협이 멈춘 해는 없다.
현대·기아차, 한국지엠 등 완성차 업체들은 불법파견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법원의 판결을 기만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지위를 바꾸는 식으로 해결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을 내친 자리에 기존 정규직을 배치하거나 사내하청 일부만 특별채용하는 방식으로 ‘정규직화’했다. 2018년 기아차도 불법파견 공정으로 인정받은 플라스틱 공정에서 일하던 사내하청 여성 노동자들을 내보내고, 그 자리에 기존 남성 정규직을 배치했다. 수차례 불법파견을 지적받고도 성찰은커녕, 노동자들이 긴 시간과 비용을 감내하며 어렵게 얻은 ‘불법파견’과 ‘정규직 전환’ 판결마저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0년 7월22일,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가 현대차 정규직이라고 판결했다. 해당 판결 이전인 2004년 노동부는 현대차 직접 생산공정이 불법파견임을 인정했다. 노동부 결정을 현대차가 받아들였다면 16년 전에 끝났을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차는 대법원의 판결마저 소송의 당사자 최병승씨에게만 인정했다. 같은 조건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는 다시 ‘법대로’를 외쳤다.
대법원 판결 10년이 지난 불법파견
2018년 발표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백서는, 불법파견 사안에서 고용노동부의 판단이 늦다고 지적했다. 검찰 기소와 법원 판단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노동부의 방관이 있었음을 지적하고 개선하라는 권고가 있었다. 권고안이 나온 지 3년 차인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엇이 개선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의 거듭된 불법에 맞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최소한의 권리에 기댈 수밖에 없다. 지난 7월13일부터 현대·기아차 6개 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은 크지 않다. 대법원 판결 10년이 지나도록 불법파견을 바로잡지 않는 대기업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제 역할을 다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