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서관 예술검열 사건 관련 “공개법정” 참여 변호사/법학 교수 입장문]
“기후위기, 이태원참사, 장애인이동권 시위, 화물노조 파업,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 사회ㆍ경제ㆍ군사적 갈등과 재난을 마주했던 2022년을 돌이켜보면 갈등과 재난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각몽이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전시하려던 ‘예술과 노동’ 기획전의 기획 의도가 담긴 홍보물의 한 문장이다. 서울시 산하 서울도서관 간부와 수탁업체 서울아트책보고는 전시의 홍보물에 담긴 이 문장을 이유로 전시품을 철거하고 관련 자료를 무단 삭제하는 개탄스러운 사건을 일으켰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나 예술의 자유를 언급하며 분노하는 것조차도 부끄러운 사건이다. 전시품 자체가 “다양한 견해가 있는 주제”로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전시품을 철거한 서울도서관 담당 과장의 발언이다)는 이태원 참사나 화물노조 파업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도 아니고, 단지 전시 홍보물에 담긴 전시기획자의 기획의도 중 위와 같은 표현이 담겼다는 것을 문제삼은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 물론 전시품 자체가 이태원 참사나 화물노조 파업을 직접 표현했더라도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참사를 참사라고 부르지 않는 입이 있고, 화물노조를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치부하는 힘이 있더라도, 다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자유민주적 헌법의 근본가치이자 민주정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헌재 2013. 3. 21. 2010헌바132 등) 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특히 우리가 이 사건에 대하여 매우 우려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개인의 말 한마디가 예술인의 자유로운 예술활동을 파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술활동의 의미와 내용을 불문하고, 그것이 누군가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다(혹은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는 이유로 예술활동을 중단시킬 수 있는 국가에서는 어떠한 자유와 권리도 살아 숨쉴 수 없다. “표현행위자의 특정 견해, 이념, 관점에 근거한 제한은 표현의 내용에 대한 제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해로운 제한”이다(헌재 2020. 12. 23. 2017헌마416 결정).
이번의 사건은 우발적인 사고였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과거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부활하고,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진보적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 당연해지며, 의로운 사마리아인의 탈을 쓴 프로크루스테스가 자신의 침대에 문화예술인을 눕힐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하여 우리가 침묵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예술품 철거 지시를 내려 예술인의 예술활동을 방해하고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무시한 서울도서관과 그에 대한 관리책임을 지는 서울시는 이 사건을 심각하게 인식하며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약속을 해야 한다.
2023년 1월 5일
[2021 공개법정] 재판부 최병모 변호사(前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조영선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박은정 교수(인제대 법학과), 원고측 소송대리인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 하태승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피고측 소송대리인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송영섭 변호사(손잡고 법제도개선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