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5 한겨레] 두번 해고, 30억 손배 견뎌낸 KEC 이춘우씨의 ‘특별한 정년퇴임’

두번 해고, 30억 손배 견뎌낸 KEC 이춘우씨의 ‘특별한 정년퇴임’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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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5881.html#csidxade3eb41c5f0b36958b9c7ba9e88329 

손배 30억·임금압류 뿌리 깊은 나무처럼 견뎌냈다
회사의 노조탄압 `가혹한 10년'
동료들과 기적처럼 일터 지켜

지난 가을 평생 일터였던 경북 구미시 케이이씨(KEC) 노조 사무실 앞 민주광장에서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은 이춘우씨의 액자에 같이 일하는 후배들이 작별인사를 썼다.

지난 가을 평생 일터였던 경북 구미시 케이이씨(KEC) 노조 사무실 앞 민주광장에서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은 이춘우씨의 액자에 같이 일하는 후배들이 작별인사를 썼다.

 

누구에게나 평생 몸담았던 일터에서 ‘정년’을 맞이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 본인만큼이나 남는 동료들에게도 더 ‘특별한’ 의미의 정년퇴직이 있다. 1986년 경북 구미의 반도체부품회사 케이이씨(KEC)에 입사했던 노동자 이춘우씨 이야기다.

 

“투쟁의 시간이 아파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 텐데, 아십니까? 우리 조합원들은 그때 이야기가 나오면 너도나도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는 것을. 선배님들은 온 힘을 다해 힘든 길을 함께 걸어주셨습니다. 그 힘 받아 선배님들처럼 민주노조 함께하는 케이이씨 지회로 우리 모두 정년퇴직하겠습니다!”

 

지난 19일 경북 구미의 반도체부품회사 케이이씨의 사내 복지회관에서 열린 이춘우, 장명환, 이주우씨의 정년퇴임식. 황미진 금속노조 케이이씨지회장은 송사 끝에 눈물을 삼켰다. 퇴직 전 마지막 10년 동안 이들은 동료들과 함께 2번의 정리해고를 이겼고, 3년간의 임금 압류와 30억원의 손해배상을 견뎠고, 5번의 폐업 시도를 막아냈다.

 

이춘우씨가 19일 오전 경북 구미시 공단동 KEC 복지회관에서 정년퇴임식을 마친 뒤 후배들의 환송을 받으며 나서고 있다.

이춘우씨가 19일 오전 경북 구미시 공단동 KEC 복지회관에서 정년퇴임식을 마친 뒤 후배들의 환송을 받으며 나서고 있다.

 

이춘우(가운데 선 이 왼쪽부터) 이주우 장명환 씨가 지난 19일 오전 경북 구미시 공단동 KEC 복지회관에서 열린 정년퇴임식에서 후배들의 환송을 받고 있다.

이춘우(가운데 선 이 왼쪽부터) 이주우 장명환 씨가 지난 19일 오전 경북 구미시 공단동 KEC 복지회관에서 열린 정년퇴임식에서 후배들의 환송을 받고 있다.

 

2010년 6월 ‘임금 및 단체협약’이 험로의 시작이었다. 협상 결렬 뒤 파업과 직장폐쇄, 공장 점거가 이어졌다. 공장이 정상화된 뒤 회사는 노조에 파업에 따른 손해 301억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긴 재판이 이어졌고 2016년 9월 법원은 회사에 30억원을 배상하라고 조정했다. ‘판결이 아닌 조정을 수용한다면 노조 파업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것’, ‘손배소송이 남용되는 때에 부적절한 선례를 남기게 된다’는 우려도 컸지만 고심 끝에 노조는 조정을 받아들였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손배압류의 본질적인 목적은 노조 와해다. 손배 소송 이후 조합을 탈퇴하거나 퇴사하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노동권을 포기하도록 회사에서 회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케이이씨지회는 3년 동안 조합원들이 최저임금인 150만원 안팎으로 반토막 난 월급을 견디면서도 노조를 지켜냈다. 그 자체로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춘우씨(앞줄 오른쪽부터)와 장명환, 이주우씨가 지난 19일 오전 경북 구미시 공단동 KEC 복지회관에서 정년퇴임식에서 마지막 파업가를 부르고 있다.

이춘우씨(앞줄 오른쪽부터)와 장명환, 이주우씨가 지난 19일 오전 경북 구미시 공단동 KEC 복지회관에서 정년퇴임식에서 마지막 파업가를 부르고 있다.

 

이춘우씨가 19일 오전 경북 구미시 공단동 KEC 복지회관에서 정년퇴임식을 마친 뒤 후배들의 환송을 받으며 눈물짓고 있다.

이춘우씨가 19일 오전 경북 구미시 공단동 KEC 복지회관에서 정년퇴임식을 마친 뒤 후배들의 환송을 받으며 눈물짓고 있다.

 

이춘우씨에게 그 기적을 만든 힘의 원천을 물었다. “동생들은 우짜나, 나는 떠나도 동생들은 또 살아가야 하는데….” 눈물 글썽한 눈으로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함께할 내일에 대한 책임감’을 말한 것이리라. 후배 황 지회장이 답했다. “억울하고 분했지요. 그러나 이 싸움이 끝이 아니었기에 앞으로 이어질 투쟁을 위해 결단해야 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살아남아 있습니다. 회사에 당당히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일터를 가꾸며 일하고 있으니 노조를 와해하려던 자본의 힘에 맞서 우리가 승리한 것 아닐까요?”

 

노동자로서 일터에서의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이춘우씨가 지난가을 노조 사무실 앞 민주광장에 섰다. 10년 전 파업 출정식 때 그늘막에 가려지던 플라타너스는 그사이 훌쩍 자라 깊이 뿌리내렸다. 정성껏 만든 사진 액자에 후배들이 작별인사를 썼다.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고맙고 사랑합니다!”

 

구미/사진·글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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