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13 참여와혁신] “정리해고 우선시하지 않는 사회로”

“정리해고 우선시하지 않는 사회로”

이동희 기자

원문보기 http://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942

쌍용차 노노사정 복직 합의 이후의 과제들
[인터뷰]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9년 만에 공장으로 돌아간다. 지난 9월 14일, 내년 상반기까지 남은 해고노동자 119명을 단계적으로 전원 복직시킨다는 노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지고,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지부장 김득중, 이하 쌍용차지부)는 대한문 앞 고 김주중 조합원의 분향소를 철거했다. 지금까지 연대를 통해 힘을 실어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문화제도 잊지 않았다.

김득중 지부장은 <참여와혁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노노사정 합의를 두고 “한고비 넘겼다”고 표현했다. 한고비를 넘기고 다음 고비를 준비하고 있는 김득중 지부장을 만났다.
 

 

9년의 절박함이 노노사정 합의로

지난달 17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 앞 한 카페에서 김득중 지부장을 만났다. 간판까지 떡하니 걸려있어 당연히 카페라고 생각한 공간은 지부 사무실이었다. 김득중 지부장은 조합원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지난해 내부 인테리어를 카페처럼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출퇴근하는 조합원들이 사무실에 들러 지부장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복직 합의를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지난 9년의 시간이 가진 무거움을 알기에 축하라는 표현이 조심스럽다고도 덧붙였다.

“축하한다는 말도 자주 들었더니 나쁘지 않더라고요(웃음). 사실 합의하고 나서도 덤덤했어요. 워낙 긴 싸움이었으니까 막상 합의가 이루어지니 허망한 마음도 있었고요. 한고비를 넘겼으니 다음 고비를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는데, 주변에서 고생했다,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더니 이제는 축하받아도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지부장의 말대로 긴 싸움이었다. 긴 시간 동안 쌍용차지부는 굴뚝 농성, 인도 원정투쟁, 단식농성 등 강도 높은 투쟁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세상을 떠난 노동자와 그 가족은 서른 명이나 된다. 지부장이 이 길고 무거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2009년 지부 조직쟁의실장 때부터 지금까지 조합원들에게 ‘노동자가 단결하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을 계속 해왔어요. 제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했고요. 어느 순간 자기 최면을 건 것 같기도 하고(웃음).

장기 투쟁을 할 때 가장 걱정인 건 우리 문제를 사람들이 잊는 것. 잊히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9년을 버틴 것 같아요.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는 가족들과 조합원들이 있었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쌍용자동차 문제를 기억하고 해고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준 연대 동지들의 힘이 있었죠. 돌아보면 저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 된 것 같아요.”

발언하는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

노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지기 까지

이번 ‘노노사정 합의’ 이전에는 2015년 12월에 이루어진 ‘노노사 합의’가 있었다. 당시 쌍용차지부는 회사와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노동자 전원을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실제 합의에 의해 일부 노동자들이 복직되기도 했지만 전원 복직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쌍용차지부는 2017년 상반기 이후부터 회사에 합의 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묻는 투쟁을 진행했다.

“합의 불이행에 따른 책임을 회사에 물었죠. 회사 말대로 전원 복직시킬 만큼 경영상황이 어렵다면 남은 해고노동자들을 어떻게 복직시킬 건지 구체적인 이행 계획서를 요구하면서 투쟁을 이어나갔어요. 그 투쟁이 지난해 12월 1일 떠난 두 번째 인도 원정투쟁이죠. 53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최종식 사장과 복직 문제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지부에서 요구한 핵심은 복직 시기를 명확히 밝히라는 것. 노사 모두 합의 이행에 대한 책임감은 가지고 있었지만 복직을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는 노사가 합의점을 계속 찾지 못했어요.”

지지부진한 대화가 이어지던 중 서른 번째 죽음이 발생했다. 고 김주중 조합원의 죽음이었다. 지부는 지난 7월 3일 대한문 앞에 또다시 분향소를 설치하고 ▲쌍용차 해고자 전원 복직 ▲손배가압류 철회 ▲국가폭력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고 김주중 조합원 명예회복을 촉구했다.

“김주중 동지의 죽음 이후 투쟁 기조를 바꿨어요. 당시 경찰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2009년 국가폭력이 드러나고 있었고, 쌍용자동차 공장 옥상에 있었던 김주중 동지도 국가폭력의 피해자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다가 자결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렸죠. 김주중 동지 죽음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명예회복이 있어야 한다는 것, 국가폭력 진상규명이 좀 더 빨리 이루어졌다면, 회사가 복직 시기를 명시했다면 김주중 동지가 자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죠.”

김득중 지부장은 대한문 분향소 설치를 중심으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제기한 해고무효소송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대상으로 이용됐다는 사법농단 의혹이 짙어지고 있었으며, 인도에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쌍용자동차 대주주 마힌드라 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만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지난 8월 28일 노노사정 첫 만남이 성사됐다.

“당시 지부에서는 김주중 동지에 대한 최종식 사장의 공식 사과와 분향소 조문이 없다면 교섭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내세웠기 때문에 노노사정 만남은 비공개로 이루어졌어요. 그 자리에서 지부는 교섭과 합의는 ‘노노사정’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고요. 이후 몇 차례 만남이 더 있었지만 역시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죠. 교섭을 거부하면서 중단되기도 했고요. 그렇게 시간이 가던 중에 최종식 사장에게 9월 13일 조문을 오겠다는 연락을 받았죠. 교섭과 합의를 전제로 한 조문이었기 때문에 회사가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있구나를 판단했죠. 그때부터는 아시는 대로 교섭이 재개되고 노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진 것. 잘 모르는 분들은 아무 일도 없다가 갑자기 사장이 조문하더니 합의가 만들어졌다고 하시는데, 결국 이런 과정들이 대한문 분향소 중심으로 있었어요.”

해고노동자의 명예 회복을 위해 남은 과제들

해고노동자들이 전원 공장으로 돌아간다면 쌍용차지부의 할 일은 끝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김득중 지부장은 한고비를 넘기고 다음 고비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다음 고비는 해고노동자들을 지난 9년 동안 고통으로 몰아넣은 손해배상과 가압류 문제, 국가폭력 진상규명이다.

“손해배상과 가압류 문제는 1년 전부터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를 중심으로 변호인단과 공동 활동을 하고 있어요. 법 개정이 필요하다면 법 개정을 요구할 계획입니다.”

지난 8월 28일,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쌍용자동차 진압은 청와대의 최종 승인 아래 이루어졌다고 발표하면서, 당시 공권력 행사에 위법성이 있는 만큼 경찰에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 쌍용차지부를 상대로 한 국가의 손해배상 소송 취하를 권고했다.

“경찰청이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발표에 대해 입장 발표를 하지 않은 상황이고, 권고안 이행을 촉구하는 투쟁도 이어가야 하고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기사를 보면 ‘그냥 쌍용자동차라는 대공장을 포기하면 될 텐데 왜 그렇게 복직에 목을 매느냐’고 묻는 질문이 많아요. 근데 그럴 수밖에 없어요. 취업이 안 되니까.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운 노동자들을 폭력집단으로 낙인찍고, 살인진압 장면을 여과 없이 공중파 모든 언론에 도배했는데 그걸 국민들이 어떻게 봤겠어요. 공장 밖으로 나온 노동자들이 돌아갈 곳은 없었던 거죠. 하다못해 가족, 가까운 지인들과의 공동체부터 깨져 나가기 시작하고, 이 문제를 아무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 억울함을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복직이에요. 복직을 통해 노동자들이 자신의 행동이 옳았음을 보여줄 수 있는 거죠.”

중요한 사실은 쌍용자동차와 같은 정리해고의 고통이 되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김득중 지부장 역시 여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노노사정 합의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마지막 질문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기업은 언제든지 위기가 올 수 있어요. 위기를 해결한다고 일방적으로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을 이제는 탈피해야 해요. 특히나 해고노동자를 받아들일 사회 안전망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을 나락으로 떠미는 것과 같아요. 기업은 언제든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 결국 노사가 이를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죠. 대화를 하면 방법은 찾을 수 있어요. 여기에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도 중요하죠. 지난 쌍용자동차 사태에서는 정부가 노동자들을 오히려 더 벼랑 끝에 내몰았지만, 이번 노노사정 합의 이후에는 우리 사회가 정리해고를 우선시하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