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살아있었으면 손배가압류 소장 받았을 것"
[전태일 50주기 기획 - 내 노동을 헛되이 말라 ①]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하민지 기자 (hmj9431)
원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88246&CMPT...
기업이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한다. 경찰 병력이 시위하는 노동자를 진압한다. 노동자는 기업과 국가 양쪽으로부터 손해배상(아래 손배) 소송을 당한다. 청구 금액은 수백억 원이다.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보이는 노동 현장의 풍경이다.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손배가압류 소송을 당한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2014년에 '손잡고'라는 시민단체가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조국 법무부 전 장관이 공동대표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손잡고는 47억 배상 판결을 받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돕기 위해 시민 한 명이 4만 7천 원씩 기부하는 '노랑봉투 캠페인'을 벌였다. 이후 쌍용자동차뿐 아니라 유성기업, 현대기아차, 아사히, 현대중공업 등 수많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연대하고 있다.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손배가압류 소장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리고 이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싸워왔다.
윤지선씨는 손잡고가 출범할 때부터 합류했다. 7년째 손잡고에서 활동 중인 유일한 활동가다. 10월 25일 오전, 서울역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그날, 투쟁 중인 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지방으로 출장을 가야 했다. 출장 전 어렵게 시간을 내 인터뷰에 응했다.
윤지선 활동가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전태일 열사가 살아있었다면 손배가압류 소장을 받았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후 준비해 간 질문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쉬지 않고 손배가압류 제도가 노조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노동자를 어떻게 고통스럽게 하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7년간 활동하며 목격한 전태일들을 이야기하기에 두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설득, 회유, 협박 3단계 중 마지막에 '손배가압류'
▲ 손잡고 활동가 윤지선 씨 윤지선 씨가 집회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 ⓒ 윤지선
윤지선 활동가는 인터뷰 도중 "이 사업장도 창조 당한 곳인데"라는 표현을 썼다. 여기서 '창조'는 '창조컨설팅'을 일컫는다. 창조컨설팅은 심종두 전 노무사가 2003년에 만든 노무법인이다. '노사관계 안정화 컨설팅 제안서'라는 이름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짰다. 유성기업, 발레오만도 등의 노조 14개를 무너뜨리고 수십억을 벌었다. '창조 당했다'는 말은 노조 파괴 시나리오로 인해 노조가 파괴됐다는 뜻이다.
윤지선 활동가는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가 일어난 해인 2009년 말부터 창조컨설팅과 같은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성행했다고 말한다. 이 시나리오에는 '구사대'가 등장한다. '회사를 구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설득, 회유, 협박의 3단계로 노조를 서서히 무력화해 왔다. 손배 소송은 협박 단계에서 진행된다.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보면 노동자가 아내랑 사이가 좋은지 안 좋은지까지 파악한다고 나와 있어요. 아내랑 사이가 좋으면 아내를 통해서 노조 활동하지 못하게 설득하는 거예요. 또 옛날 공장에는 신원보증이란 게 있어요. 예를 들어 한 동네 사는 사촌 동생이 사촌 형이 일하는 회사에 취직했을 경우 사촌 형이 동생 신원에 대해 보증을 서도록 해요. 만약 동생이 노조 활동해서 회사에 손실을 냈다고 판단이 되면 신원보증인인 형이 연대 책임을 지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노동자들이 서로서로 설득하도록 해요. 노조활동 하지 못하게."
설득이 안 먹히면 회유로 들어간다.
"노동자를 '산 자와 죽은 자로 가른다'라고 표현을 하더라고요. 죽은 자는 해고대상자예요. 4천 명이 일하는 회사라고 할 경우 2천 명을 해고시킨다는 분위기를 해고 서너 달 전부터 조성해요. 그러면 누가 해고될지 몰라 노동자 사이에는 두려움이 생기잖아요. 그때 구사대가 쓱 와서 '내가 봤는데 넌 (해고) 아니야. 쟤는 맞는 것 같아. 너는 지금 회사 말 잘 듣고 가만히만 있어'라고 회유를 하는 거예요."
회유도 안 되면 마지막은 협박이다. 이 단계에서 손배 소송이 들어온다.
"조선시대 때 '효수한다'고 하잖아요. 목을 쳐서 문 앞에 걸어 놓는 거요. 그 효과를 하는 게 손배가압류예요. 기업은 노동자가 벌 수도 없고 낼 수도 없는 수십, 수백억을 배상하라고 해요. 물론 금액 자체도 공포스럽지만 손배의 위력은 다른 데 있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본보기 효과가 되는 거예요. '노조 활동하면 너 이렇게 된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UN사회권위원회는 이걸 (노조 활동에 대한) 보복 조치라고 했어요. 굉장히 명징한 표현이에요. 기업이 사실상 받을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 손배를 청구하는 건 결국 노동자를 괴롭히겠다는 거예요."
기업이 끝끝내 노조를 무너뜨려야 하는 이유
"노동 3권은 혼자서 행사할 수 없는 기본권이라서"
▲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 유성기업 노조는 창조컨설팅이 파괴한 노조 중 하나다. 현재는 유성기업이 청구한 10억 손해배상 소송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 윤지선
노동 3권은 헌법 33조에 나온다.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순으로 나열돼 있다. 윤지선 활동가는 단결권이 제일 앞에 명시된 것에 주목했다. 헌법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기본권이 나와 있는데, 유일하게 노동 3권만 개인이 아니라 단체가 행사하는 거라고 적혀 있다. 노조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것 자체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라는 뜻이다.
손배 소장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열사들도 유서에 꼭 '단결'을 언급했다. 회사가 노동자를 못 뭉치게 하려고 기획한 일이니, 꼭 다시 뭉쳐서 끝까지 싸우자는 말을 남겼다. 윤지선 활동가는 열사의 유서 내용을 이야기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헌법의 노동 3권은 단결권부터 시작하잖아요. 단결하지 않으면 단체교섭도 행동도 안 되는 거예요. 결국 노조 활동 자체가 곧 노동 3권을 의미해요. 그래서 노동 3권은 혼자서 행사하기가 어려워요. 노조를 통해서 행사하게 돼요. 이래서 회사는 노동자가 단결을 못 하게 하는 거고 그러다 보니까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만들어진 거예요. 노조 파괴 최후의 수단으로 손배 소송, 퇴직금이나 부동산 가압류가 들어오는 거고요.
해고라는 게 숫자로 사람들 갈라치기 하는,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거로 생각했는데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건 사람의 인간성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더라고요. 서로 설득하다가 불신하고, 몇백억 손배 소장 받은 동지를 보면서 두려워하고, 그러다 노조가 파괴돼요.
노동자가 투쟁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면 보통은 돈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 선택을 했을 거라고 막연히 짐작해요. 그런데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와 최강서 열사 유서를 보면 돈 얘기가 있긴 한데 그게 핵심이 아니에요. '동지들 끝까지 싸워달라, 흩어지지 마라, 노조로 돌아오세요' 이런 내용이 있어요. 노조가 이렇게까지 단결을 중요하게 여기니까 회사는 노조를 와해하기 위해 손배가압류를 진행해요."
"전태일 살아있었으면 손배가압류 소장 받았을 것"
▲ 아사히 노조 2019년 8월,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가 해고된 지 4년 만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승소했다. ⓒ 윤지선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이 살아있다면 오늘날 유성기업, 일진다이아몬드, 톨게이트 등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에서 뭐라고 했겠냐고 질문했다. 윤지선 활동가는 전태일도 손배가압류 당사자가 돼서 이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고 싸우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아직도 전태일 시대에 살고 있어요. 제가 노동자에게 노조 왜 만들었냐고 물을 때마다 듣는 내용이 근로기준법 준수, 안전 보장 때문이라고 말해요. 50년 전과 지금이 다르지 않아요.
지금 이 시대의 전태일들이 당하는 노동 탄압 수단 중 가장 최후의 수단이자 가장 효과적이고 파괴적인 수단이 손배가압류예요. 쌍용자동차나 톨게이트 노동자의 경우 복직했지만, 아직도 손배 소송을 하고 있어요. 유성기업 회장은 부당노동행위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도 노동자를 향해 손배 소송을 진행했어요. 복직해도, 기업 회장이 유죄 판결을 받아도 싸움이 안 끝나는 거예요.
톨게이트의 경우 회전문 센서가 고장 나고 화분이 깨졌대요. 근데 손배 청구액이 1억이에요. 노동자가 기자회견을 해도, 피켓을 들어도 명예훼손이라며 소송을 당하니까 전태일은 손배가압류 당사자가 돼서 이 제도 철폐해야 한다고 외치지 않았을까요."
손잡고는 이 시대의 전태일들이 안전하게 노동 3권을 행사할 수 있게 '노란봉투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기업이 노동자를 향해 행하는 무분별한 손배가압류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법이다. 20대 국회 때는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당시 노란봉투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이 원내 절반을 차지한 상태다. 윤지선 활동가는 이번 국회에선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