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 경향신문] 문재인 정부도 노동자 옥죄는 손배·가압류 문제 방치…“노동장관의 전태일 정신 계승 발언은 기만”

문재인 정부도 노동자 옥죄는 손배·가압류 문제 방치…“노동장관의 전태일 정신 계승 발언은 기만”

이청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112057005&code=940702#csidx645f507d980c193bbe33542fb944fbc 

 

시민단체, 청와대 항의서한
현재 손배소 58건 658억원
“집권 전엔 해결한다더니…”

시민단체 손잡고와 민주노총 등이 11일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0 노동자 손배가압류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노동자들에게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한 정부차원의 실태조사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창준 기자

시민단체 손잡고와 민주노총 등이 11일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0 노동자 손배가압류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노동자들에게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한 정부차원의 실태조사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창준 기자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박순향씨 등 14명은 지난해 10월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억대의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렸다. “직접 고용”을 외치며 한국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건물 일부를 파손했다는 이유에서다. 박씨는 “당장 5만원이면 사올 수 있는 화분 하나가 깨졌고 자동문은 전기 센서에 이상이 생긴 것 외에 따로 파손되지도 않았다”고 했지만 그들에게 제기된 피해금액은 1억여원에 달했다. 박씨 등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로공사 측과 소송을 진행 중이다.

시민단체 ‘손잡고’와 민주노총 등은 11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0년 11월 현재 노동자를 상대로 진행 중인 손해배상 소송이 총 58건이며, 손배액은 약 658억1223만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중 문재인 정부 들어 새로 제기된 손배 소송만 28건으로 청구금액은 68억7679만원에 달한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과거 더불어민주당은 과반 이상의 국회 권력만 잡으면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는 손배·가압류법을 철회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민주당이 175석을 확보한 지금 우리에게는 소명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기만적”이라고 말했다.

‘손잡고’는 문재인 정부 들어 발생한 손배 소송의 특징으로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로까지 대상이 확대된 것을 꼽았다. 문재인 정부 이후 손배가 청구된 노조는 민주노총 소속 기아차비정규직지회, 금호타이어비정규직지회,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톨게이트지부, 택배연대노조 등이다.

도성대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은 “노조와 사측 간 다툼이 있을 때마다 사측은 고도로 훈련된 채증조를 투입해 먼저 형사고발을 하고, 이후 벌금이 나오면 회사 사무직원들이 개인적 손해배상 청구를 한번 더 한다”며 “국가·회사·개인이 삼중으로 노동자를 옥죄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측은 이른바 ‘어용노조’로 옮겨오면 손배 소송에서 제외시켜주겠다고 하는 등 손배 소송을 노조를 와해시키는 데 악용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나 기업이 자의적으로 피해액을 산정해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법 체계도 문제로 지적됐다. ‘손잡고’ 법제도개선위원인 윤지영 변호사는 “손배·가압류 청구가 이렇게 남용되는 근본적 이유는 우리 법이 손배 청구금액에 대해 아무런 제한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누구든 인지대만 부담한다면 100억, 1000억대의 손배 청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벌어진 노조 무력화 시도나 국가폭력 등에 대한 진상규명은 이뤄졌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자 탄압) 수단으로 악용된 손배 소송에 대해선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라면서 정부 차원의 실태 조사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손배·가압류 남용은 노동3권을 무력화하는 처사”라며 “국민의 힘으로 바꾸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