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박래군 칼럼] 노동개혁 이전에 '전태일 3법'부터

[박래군 칼럼]노동개혁 이전에 ‘전태일 3법’부터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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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칼럼]노동개혁 이전에 ‘전태일 3법’부터

앞으로 한 달 뒤 11월13일, 전태일 열사가 분신, 산화한 지 50년이 되는 날을 맞는다. 전태일재단에서는 그의 50주기를 앞두고 한 달 동안 다양한 기념행사들을 준비하고 있다. 전태일다리 주변에 기념동판을 추가로 제작하는 일을 비롯해 시민들과 함께 맞는 전태일 50주기를 만들기 위해 전국에서 그를 기념하는 사업들이 준비되고 있다. 50년 전에 산화한 그를 불러내는 것은 그만큼 지금의 노동 현실이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오랜만에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다시 꺼내 읽는다. 조 변호사는 “전태일이 평화시장의 근로조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래로 그 해결을 위해 택하려던 방법”이 네 가지가 있었다고 소개한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전태일은 재단사가 되어 어린 여공들(시다)을 자신의 위치에서 돌봐주려 했다. 그는 자신은 청계천에서 창동까지 걸어 다니며 버스비를 아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줬다. 그러던 그는 온정주의적 방법으로는 한계를 느껴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해 노동청과 대통령에게 진정을 넣는다. 진정 내용은 당시 경향신문 등에 실리기도 하여 전태일과 그 친구들은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노동자의 문제는 곧 묵살당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모범업체를 설립하려고 시도하지만 자금을 못 구해 좌절한다. 결국 그가 택할 수 있었던 마지막 방법은 적극적인 항의투쟁이었다. 평화시장에서의 평화적인 시위는 공권력에 막혀 무산되었고, 결국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며 산화하는 극단적인 투쟁을 벌였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그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외쳤던 그 구호와 지금 노동자들이 외치는 구호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오늘도 신문에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인 노동자의 사망 기사가 실렸다. 만 48세의 택배노동자 김모씨는 “새벽 6시30분에 출근해 밤 10시나 돼야 퇴근했다”. 과로사로 추정된다고 기사는 전했다. 올해로 여덟 번째 택배기사의 죽음이다. 코로나19 상황과 추석 명절에도 급증한 배달 일을 처리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몸을 생각하지 못하고 노동해야 했다. 정부는 추석 명절 기간 중에 급증하는 분류 작업을 위해 긴급하게 인력을 투입한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노동자들은 정부와 기업이 3000만원을 지원하는 것을 빌미로 폭언과 비아냥을 감내해야 하고, 심지어는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아도 참을 수밖에 없다는 보도도 나왔다. 직장갑질119는 “내일채움공제에 가입한 청년노동자가 중도에 자진 퇴사하는 경우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점을 악용해 사업주와 상사가 폭언 등 불합리한 대우를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집단 괴롭힘이나 성추행마저 눈물로 참으며 일할 수밖에 없는 청년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을 “노예노동”이라고 자조한다.

한국에서 노동자는 하층민 신분이 된 지 오래다. 기업인들이나 정치권에선 강성노조 탓에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으니 경제민주화법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노동개혁을 하자고 주장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겨우 10%를 웃돌 뿐이다. 달리 말하면 90% 정도는 여전히 노동조합이 없는 무권리 상태에서 노예노동과 같은 상황을 감내하고 있다는 말이다.

근로기준법은 아직도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평소 원청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일을 해야 하지만, 정작 문제가 생길 때면 원청은 하청기업 뒤에 숨어버린다. 철저하게 위계화된 기업구조가 온존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위험 작업을 도맡아 하게 되므로 산재 사망자의 대다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지한다.

사용주들에게는 노동조합을 파괴할 강력한 무기도 있다. 손배가압류 제도다. 부당한 노동행위를 일삼는 기업주에 대항해 쟁의행위라도 하게 되면 당장 수십억원의 손해배상을 당하게 되고, 임금이나 통장마저도 가압류된다. 그럴 때 회사는 노동조합에서 탈퇴하면 손배 대상자에서 제외시켜 주겠다고 회유한다. 손배가압류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을 무력화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사용주의 부당노동행위가 적발된다 해도 기껏 수백만원의 과태료만 부과될 뿐이다. 그러니 헌법과 법률로 보장된 노동인권을 주장하기 어렵다. 노예처럼 굴종하면서라도 밥벌이를 위해서는 온갖 부당함을 인내한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결하자고 최근 국회에 10만명이 청원한 국민동의청원이 제출되었다. 이른바 ‘전태일 3법’이다. 근로기준법 제11조를 개정해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도 근로기준법을 적용받게 하자는 것, 노조법 제2조를 개정해 원청 사용주의 책임을 묻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매년 2400명이 죽어나가는 산재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사용자에게 손해배상을 물게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전태일 3법의 국회 통과를 그의 50주기인 11월13일까지 볼 수 있을까? 전태일 3법이라도 통과시키고, 더불어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손배가압류도 없애고,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같은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노동개혁으로 나아가야 될 때다.

전태일이 숨을 거두기 전에 했던 마지막 말은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였다. 이제 남은 한 달, 우리는 노예노동을 넘어 존중의 사회로 한 걸음 내디딜 시간이다. 더 이상 그가 울게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