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2 한겨레21] “갈등 해볼 여지도 없었다” 기업살인법·노랑봉투법의 좌절 (제1314호)

“갈등 해볼 여지도 없었다” 기업살인법·노랑봉투법의 좌절

뜨겁게 국회로 들어섰던 법안은 어쩌다 식어버리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노란봉투법은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까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원문보기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8722.html

 

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고 김태규씨 누나 김도현씨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펼침막을 바라보고 있다. 방준호 기자

 

 

국회 안. 두 법안을 두고 말한다. “논의 테이블 자체에 올라오지 않아 어디서 막혔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더불어민주당 ㄱ보좌관) “갈등 한번 해볼 여지가 없었다.”(정의당 ㄴ비서관) 법안이 처음 국회에 들어섰던 때를 생각하면 머쓱함은 더한다. 한 법안은 세상을 뒤흔든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과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염원을 담아 2017년 국회에 들어섰다. 또 다른 법안은 노동자의 경제적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나누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에서 출발했다. 2015년 처음 법안이 발의됐다. 두 법안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대선 공약에 포함됐다. “우리 고통이 덜어지는 건 아니지만, 우리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위로”(황미진 전국금속노동조합 KEC지회장, 손해배상 가압류 피해자) 같은 것을 당사자들은 느꼈다. 딱 거기까지였다.

 

 

200명에게 전화해 답 준 후보 17명

 

두 법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안). 1만5천여 개 계류 법안과 함께, 20대 국회를 따라 5월29일 임기 만료 폐기된다. 통과를 떠나 논의 한 번 없었다. 그게 한층 뼈아프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진지한 고민을 해보지 못한 셈”(이상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 집행위원장)이다. 숱한 계류 법안 목록 곳곳 적지 않게 숨어 있을 안타까움이다.

 

법안 통과를 삶의 의미로 삼았던 사람들은 국회와 현실 사이 아득한 거리를 되새긴다. ‘왜 그랬을까’ 자문한다. 세상을 따라 진보하지 않는 국회, 어려운 고민은 멈춰버리게끔 하는 입법 환경을 탓한다. 21대 국회를 다시,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김도현(30)씨는 2020년 4·15 총선에 나선 후보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동의하시거나 공동 발의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전자우편으로 보내놓고 후보들 선거 사무소 200여 곳에 전화를 걸었다. “한 번만 봐주세요.” 2019년 4월10일 동생 김태규(당시 25살)씨는 경기도 수원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동생 1주기랑 총선 선거운동 기간이 겹쳐서 좀 정신이 없었어요. 평일에 조금씩 하고 주말에 몰아서 좀더 하고. 혼자 그렇게 200명 넘는 후보들한테 전화했어요.” 답을 준 후보는 그 가운데 17명이다. ‘미안합니다.’ 다섯 글자만 문자메시지로 답신한 후보도 있다. 그중 5명이 당선됐다. 들인 품을 생각하면 저조하다. “그럴 줄 알았어요.”

 

 

“엄격한 기존 법 논리에 갇힌 시각”

 

그럴 줄 알았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2015년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청원 운동이 시작됐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이 힘을 보탰다. 산재 사망자 가족이 목소리를 냈다. 2017년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발의로 국회에 들어섰다. 분노로만 뭉쳐 있던 고통에 그래도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 김도현씨가 겪은 아픔의 경로를 한발 앞서 겪고 있던 사람들이 오랜 시간 주장한 덕이다. 그러나 20대 국회는 논의하지 않았다.

 

윤지선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활동가도 총선을 치르는 정당에 노란봉투법에 대한 의견을 묻는 편지를 썼다. 질문을 만들려고 손배·가압류 피해자들 의견을 물었다. 노동기본권 행사를 이유로 기업이나 국가로부터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당한 이들이다. 가족이 불화하고, 노조를 그만두고, 회사를 떠난 이도 많다. 손배 대부분 노조 파괴 수단이었다는 점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되물었다. ‘입법 청원 운동도 하고, 피해증언대회도 하고, 청와대 앞에도 가고, 국회의원도 만나고 할 수 있는 걸 다 한 것 같은데 왜 (법 제정이) 안 되는 거냐고. 어떻게 더 해야 하는 거냐’고. 윤 활동가가 말한다. “맞는 말이어서 막막했어요. 20대 국회에서는 이야기 한 번 없었으니까. 나는 당장 죽겠는데, 여당이 바뀐 국회에서조차 아무도 얘기해주질 않으니까 당연한 마음이죠.” 5개 정당(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민중당, 녹색당, 노동당)에서 답변이 왔다. 법안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런데 법안에는 동의하면서 법안의 주요 내용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는 이상한 답변을 준 곳도 있기는 해요. 다시 법안 설명부터 시작해야죠.”

 

뜨겁게 국회로 들어섰던 법안은 어쩌다 이렇게 식어버렸나. 의제가 되지 못한 법안을 쥐고 사람들은 되짚는다. 속기록 어디에도 그 과정이 기록되지 않은 터라 ‘명확한 이유’는 모른다. 추정해야 한다. 걸림돌은 단계별로 있다. 그 첫 번째 걸림돌로 이상윤 집행위원장은 “엄격한 기존 법 논리에 갇힌 시각”을 짚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이전의 ‘형사법 체계’에 맞선다. ‘현행 형사법 체계는 경영자가 재해의 위험을 평가절하하도록 유도’(법안 제안 이유)하는 탓이다. ‘왜 사고는 반복되는가’ 피해자들이 품은 근본적인 의문에 답하기 위해 새로운 법안이 필요하다. 개인이 아닌 법인을 처벌하고, 기업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묻고, 공무원의 방임도 처벌할 조항을 뒀다.

 

국회 수석전문위원의 법안 검토 보고서는 회의적이다. 지켜야 할 안전 의무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누군가의 죄를 특정하기 모호한 문장이 많다고 했다. 맞는 말 같아도 김도현씨 처지에서 보면 답답하다. 훼손된 동생의 사망 사건 현장에서 품은 의문, 노골적인 기업의 책임 회피를 보며 느낀 분노, 공무원과 수사기관에 대한 실망이 ‘진짜 사망 원인’을 알려는 과정에서 하나하나 쌓였다. “따로 놓고 보면 자잘한 위반과 관행이 모여 죽음을 만들고 진실을 감추고, 또 새로운 죽음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죽음을 대하는 사회의 관행과 태도, 그걸 용인하는 제도 ‘모두’가 문제였다.

 

피해 당사자가 겪는 현실과 법체계에 간극은 있을 수 있다. “그럼 그 간극에 대해 국회가 이야기라도 했어야 해요. 세상은 급변하고 중대사고뿐만 아니라 많은 사건이 행정기관과 기업의 관행 같은 조직적인 문제에서 나타나고 있어요. 그렇다면 개인의 법 위반에 초점을 둔 기존 법은 어떻게 세상에 반응하고 변해야 할지 고민해야죠. 그래야 법이 사회에 맞춰 한 단계 나아가는 것이죠. 국회가 그런 역할을 안 한 거죠.”(이상윤 위원장)

 

 

노동자와 국회의원이 2017년 1월 국회 정론관에서 ‘노란봉투법’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고도 새로운 듯 ‘법안 먹튀’

 

윤지선 활동가는 무관심의 이유를 궁리한다. 상임위원회 중심의 법안 처리 과정에서 개인적이기도, 관행적이기도 한 무관심은 국회 안에서 법안을 지운다. “우선 국회의원 개인의 관심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나마 19대 국회에서 한 번이나마 노란봉투법 논의가 있었어요. 그때는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중에 우원식, 은수미, 심상정, 장하나 의원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해요.”(윤지선 활동가) 20대 국회에선 분위기가 달라졌다. 직접 만나 법안을 열심히 설명했던 환노위 위원, 법안 발의에 참여했던 의원들조차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났을 때 “마치 그제야 법안을 처음 알게 됐다는 듯한” 반응을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법안 먹튀’라고 부르고 싶어요. 피해자들은 절망하죠. 우리를 제일 잘 알아줘야 하는 전문가들이 이 정도인데,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싶어서.”

 

국회 상임위원회 간사들의 무관심은 특히 치명적이다. 간사는 주요 정당이라 할 만한 원내 교섭단체(20개 이상 의석을 가진 정당)에서 낸다. 각 위원회의 간사 합의를 거쳐,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대개 ‘만장일치’로 논의 순서를 정한다. 그 순서대로 세상의 문제는 국회의 문제가 된다. 원내 교섭단체의 관심사에 들어오느냐가 법안 논의 대상을 결정하는 셈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노란봉투법 두 법안 모두 비켜나 있었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논쟁이 예상되는 법안이었고, 정당들이 특별한 의지를 갖는 법안에 속하지 못했다. “정부·여당에서 작정하고 추진하는 법안이라든가 김용균법 같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빼면, 정말 중요한 쟁점일수록 시간이 걸리니까 대개 피해 가게 되는 구조죠. 갈등에 치러야 할 비용을 따져보고 그만한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게 설혹 여당의 공약이었다고 해도 그냥 무시되고요.”(정의당 ㄴ비서관)

 

하나의 법안이 의제로 올라오는 과정은 다급하다. 그나마 논의에 오른 법마저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없다. 국회의원들도 자성한다. “‘이 법 끼워줘라, 저 법 끼워줘라’ (식으로) 법안을 임의로 고르기 때문에 모든 게 무너진다. 내용을 몰라서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를 그냥 따라간다. 선입선출(먼저 들어온 법안부터 차례로 검토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5월19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모임 수요오찬회에서 조응천 의원) “임시국회 잡히면 무슨 숙제하듯 처리하고, 그러다보니 쟁점 법안은 논쟁에 시간이 걸리니까 자꾸 뒤로 미룬다. 국회법에서 법안심사소위를 매달 두 번씩 열도록 했고 그럼 올라온 법안 대부분 다룰 수 있는데 그렇게 열지도 않고.”(2019년 12월30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이정미 정의당 의원)

 

 

자기들이 만든 법도 코앞에서 안 지키는데

 

국회 밖. 20대 국회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주 실망했다. 농담으로 눙치기도, 자잘한 데 마음이 뒤틀리기도 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 점거하고 ‘빠루’(장도리) 들고 하는 거 보고 우리끼리 모여서 그랬어요. 저 점거랑 기물 파손은 손해배상 걸면 얼마일까. 우린 테이프 자국 남겼다고도 손배 걸리는데.”(윤지선 활동가) “국회 안 카페에 갔는데 일회용 컵을 주는 거예요. 자기들이 만든 법도 코앞에서 안 지키네 싶어서 그런 거 하나하나 속상하더라고요.”(김도현씨)

 

미웠어도 다시 기댈 곳은 국회뿐이다. “박주민, 이재정, 이탄희, 우원식, 조정식 의원.” 김도현씨가 편지에 성의 있게 답해준 21대 국회 당선자 이름을 짚어 부른다. 정신적으로 힘들어 흔한 단어도 가물가물해질 때가 부쩍 많다. 그래도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겠다’고 답장한 의원들 이름만은 또렷하다. 국회로 보내는 편지와 국회에서 돌아오는 답장 사이 거리가 멀어질세라, “계속 집요하게 파고들겠다”는 김씨 다짐만 또다시 굳세어진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