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 한겨레21] 쌍용차 복직 예정자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쌍용차 복직 예정자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쌍용차 복직 예정자 46명 무기한 ‘휴직 연장’ 맞서 출근투쟁

평택=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원문보기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097.html

 

쌍용자동차 복직 예정자 46명이 1월7일 오전 첫 출근을 해, 쌍용차 본관에서 예병태 대표이사와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제공

1월7일 아침 8시 경기도 평택의 쌍용자동차 정문 앞. 어둑어둑한 새벽부터 궂은비가 내렸다. 쌍용차의 기한 없는 휴직 연장 통보에 반발한 복직 예정자 20여 명이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선 지난해 12월30일, 그날도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제1295호 사회 ‘쌍용차 복직 예정자들 “터널은 다시 막혔다”’ 참조)

1월2∼6일 사흘간 휴업 뒤 올해 첫 업무를 시작하는 이날, 쌍용차의 마지막 남은 해고자 46명도 처음 출근했다. 2009년 해고된 지 10년7개월 만의 출근이었다. 하지만 ‘정식’ 출근은 아니었다. 쌍용차는 크리스마스 전날인 지난해 12월24일 돌연 이들에게 기한 없는 휴직 연장을 통보했다. 이들의 동의도, 합의도 없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2019년 7월 다시 입사해 무급휴직을 하다가 2020년 1월2일 복직할 예정이던 이들은, 2018년 9월 노·노·사·정(쌍용차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쌍용차·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에 따라 예정대로 출근을 강행했다.

“당당하게 일하겠습니다!”

46명의 외침에 쌍용차 정문 앞에 같이 서 있던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꽃다발을 건네며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축하가 아닌 응원의 박수였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르는 일 없길

 

46명은 출근 전날 긴 밤을 보냈다. 출근이지만 ‘정식’ 출근이 아니었다. 기분은 들떴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멀리 사는 복직 예정자들은 전날 미리 평택에 왔다. 정재영(59·가명)씨는 앞서 복직한 동료들이 지내는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잤다. 비록 정식 출근은 아니었지만 재영씨는 동료들과 한자리에 다시 모이니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경기도 양주에 사는 이호진(48·가명)씨는 쌍용차지부 카페 ‘차차’에 딸린 단칸방에 누워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감았다가 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진씨는 카페 밖으로 나와 쌍용차 정문을 쳐다봤다. 1995년 쌍용차에 입사한 뒤 지금까지 겪은 일이 머리를 스치고 갔다. 2009년 5월부터 8월까지 77일 동안 쌍용차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을 벌인 때도 떠올랐다. 카페 안 난로도 꺼진 새벽 4시였다. 답답하고 아쉬웠다. 호진씨는 생각했다. ‘복직됐다면 기분이 좋았을까?’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것은 서형민(50·가명)씨도 마찬가지였다. 10년7개월 만에 출근했지만 부서 배치는커녕 휴직도 기한 없이 연장됐다. 울적해진 형민씨는 아침 일찍 쌍용차 정문 앞으로 나왔다. 코앞이었지만 10년 넘게 못 밟은 정문이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정문 안으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담당 부서가 없어 정문을 통과한다 해도 당장 어디로 발길을 옮겨야 할지 몰랐다. 형민씨를 불편해하는 동료가 있을지도 모른다. 또다시 “산 자(공장 안 노동자)와 죽은 자(해고 노동자)를 가르는 일이 일어난다”면 가슴이 찢길 거 같았다.

 

“당당하게 일하고 정당한 대가 받도록”

 

46명보다 앞서 2019년 1월3일 공장에 복직한 김선동 현장위원회 의장은 연차를 내고 동료들의 첫 출근길에 동행했다. 1년 전 이 자리에서 선동씨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복직했다.

노·노·사(쌍용차노조·금속노조 쌍용차지부·쌍용차) 합의를 지키지 않는 쌍용차에 반발해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동료들을 부둥켜안고 울던 자리이기도 했다. 2009년 해고돼 6년 만인 2015년, 노·노·사는 처음으로 “해고자들의 채용을 위해 2017년 상반기까지 조속히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합의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또다시 29번째, 30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이후 정부도 참여한 노·노·사·정 합의마저 일방적으로 파기됐다.

선동씨는 마지막 남은 동료들에게 죄책과 미안함을 느꼈다. 복직이 무기한 연장된 동료들의 첫 출근을 축하해주는 마음이 무거웠다. 선동씨는 말했다. “쌍용차는 휴직 연장 대신 급여와 상여의 70%를 준다고 했다. 노동자가 일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임금을 받겠나. 노동자로 공장에서 당당하게 일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게 해달라.”

“마지막에 복직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날까지 복직을 미뤄온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일방적인 휴직 연장 후 치밀어오르는 분노 속에 며칠을 보냈다. 10년7개월 현장을 떠났는데 일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긴 시간 현장을 떠나 있었지만 내 손끝, 동료들 마음속에서는 떠나지 않았던 현장이기에 현장에 금방 적응할 거라고 확신한다. 당당하게 들어가 동료들의 손을 잡겠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비가 오니까 눈물이 난다”는 호진씨 말에 옆에 있던 조경민(57·가명)씨도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경민씨 목에는 대학교 3학년 딸이 떠준 흰 목도리가 둘러 있었다. 첫 출근인데 따뜻하게 입고 나가라며 딸이 준 선물이었다. 팔뚝 길이만큼 짠 목도리를 보여주며 뜨개질 솜씨를 자랑하던 딸은 아버지의 무기한 휴직 연장 소식에 혼자 영화관에 가서 목놓아 울었다. 흰 목도리를 야무지게 두른 경민씨는 자리를 뜨기 직전 눈물 젖은 목소리로 홀로 외쳤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46명은 곧장 오전 9시부터 시무식이 열리는 본관으로 향했다.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예병태 쌍용차 대표이사를 만날 수 있었지만 “회사 경영 상황이 어려워 (복직자 46명의) 부서 배치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 46명은 “부서 배치를 하루빨리 마무리하라”며 예 대표를 향해 울부짖었다. 10년7개월 만에 본관 식당에 앉은 이들은 눈물이 앞을 가려 차마 밥을 넘기지 못했다.

 

회사 “부서 배치 미룰 수밖에 없어”

 

쌍용차는 라인 운영 상황에 따라 휴직 종료일을 추후 노사가 합의한다는 입장이다. 46명의 복직과 부서 배치는 여전히 아득했다. 정부와 쌍용차가 해고 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아직 취하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들은 부서 배치 때까지 출근투쟁을 계속하기로 했다. 김 지부장은 말했다. “동료들과 웃으며 품질 좋은 명차를 만드는 날까지 우리는 매일 아침 6시30분, 카페 ‘차차’에 모여 손잡고 공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