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7개월 만에…쌍용차 해고자 46명 “사회적 합의 따라 출근합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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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 ‘무기한 복직 연기’ 통보 불구 기약 없는 기다림 ‘반쪽짜리 출근’
“당당하게 들어가 동료 손 잡을 것”
부서 배치 때까지 출근투쟁 돌입
쌍용자동차 측으로부터 돌연 복직을 무기한 연기한다는 통보를 받은 쌍용차의 마지막 남은 해고자 46명이 사측의 일방적인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예정대로 11년 만의 출근길에 올랐다. 7일 오전 경기 평택시 쌍용차 공장 정문 앞에 선 이들이 애써 웃음을 지은 채 응원 온 사회단체 인사들과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2009년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마지막으로 남은 46명의 해고자가 7일 오전 회사 정문을 통해 공장에 들어섰다. 사태 이후 11년 만의 출근이지만, 정식 복직은 아니다. 올 초 복직이 예정돼 있던 이들에게 회사가 돌연 무기한 복직 연기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기약 없는 기다림을 동반한 ‘반쪽짜리 출근’인 셈이다.
이날 경기 평택시 쌍용차 공장 정문 앞은 오전 8시가 됐는데도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해가 채 뜨지 않은 데다 겨울비까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쌍용차가 올해 첫 업무를 시작하는 이날, 쌍용차의 마지막 남은 해고자들은 예정대로 출근하기로 했다.
그간 쌍용차 해고자들의 일을 제 일처럼 생각하고 ‘노란 봉투 캠페인’ ‘쌍용차 구매운동’ 등을 벌여온 시민사회와 지역공동체 관계자들은 이들에게 복직을 축하하는 꽃다발을 건넸다.
10년7개월 만에 공장으로 출근하는 해고자 이덕환씨는 “울지 않으려 했는데 비가 오니까 눈물이 난다”며 “지난 10년간 일용직부터 안 해본 것이 없다. 회사 가게 되면 가슴이 뻥 뚫리지 않을까 했는데 지난달 24일 합의 아닌 합의라고 회사가 문자를 보내저희가 또 죽었다”고 했다.
꽃다발 전달식이 진행되는 동안 앞서 복직한 쌍용차 해고자 10여명은 공장 안에서 ‘해도해도 너무한다! 즉각 부서배치’ ‘기한 없는 휴직, 현장 순환 휴직의 시작’이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동료들의 출근길을 맞았다.
쌍용차와 기업노조는 지난 연말 경영 악화 등을 이유로 46명 해고자의 복직을 무기한 연기하고, 임금의 70%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기업노조, 회사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4자가 2018년 9월 합의한 사항을 양 주체가 일방 파기한 것이다. 당시 4자는 2020년 1월 초까지 해고자 전원의 복직과 부서배치에 합의한 바 있다.
회사는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달 24일 해고자들에게 새로운 합의사항을 문자메시지로 통보했다. 이에 해고자들은 노사의 일방 합의를 거부하며 출근길에 오른 것이다. 쌍용차 해고자들에게는 어쩌면 익숙한 ‘희망고문’이다. 해고자들은 언젠가 복직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희망고문’이라 불렀다.
2009년 쌍용차는 경영난을 이유로 전체 인력의 37%를 해고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나중에야 회사가 회계를 조작해 ‘서류상 경영위기’를 만들어냈음이 밝혀졌지만 당시엔 아무도 몰랐다. 노동자들은 77일간의 옥쇄파업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2646명의 해고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 해고는 쌍용차 노동자 30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가정을 파괴했으며 공동체를 와해시켰다.
■ “마음속에선 떠나지 않았던 현장…동료와 명차 만들어 보이겠다”
쌍용차 해고자 46명 출근
쌍용자동차 측으로부터 돌연 무기한 복직 연기 통보를 받았지만 예정대로 11년 만의 출근을 강행한 쌍용차의 마지막 해고자 46명이 출근 축하 꽃다발을 들고 출입문을 통과해 회사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어렵게 끌어낸 약속들은 좀처럼 지켜지지 않았다. 해고 6년차인 2015년 노사는 처음으로 “해고자들의 채용을 2017년 상반기까지 조속히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기약 없던 복직에 파란불이 들어오며 2016년에는 쌍용차 해고자들을 덮쳤던 죽음의 행렬도 멈췄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17년 상반기까지 복직된 해고자는 고작 37명에 그쳤다. 약속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29번째, 30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다. “노동자로서 공장에 돌아가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해고자들의 바람이 악용되기도 했다. 회사는 선별적으로 복직 면접 대상자를 추려서 개별 통보하는가 하면, 절박한 해고자들이 스스로 우선 복직 대상자를 정하도록 했다. 이른바 ‘의자놀이’는 해고자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겼다.
노사가 약속하고 정부가 보증하면서 마지막 합의가 되리라 여겼던 2018년 9월의 4자 합의도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마지막에 복직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복직을 미뤄온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10년7개월 현장을 떠났는데 일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신데, 정말 긴 시간 현장을 떠나 있었지만 제 손끝, 동료들 마음속에서는 떠나지 않았던 현장이기에 현장에 적응할 거라고 확신한다”며 “당당하게 들어가 동료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것이고, 그분들과 함께 쌍용차 명차를 만들어 보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