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 쌍용차 해고자들의 시계
사측과 기업노조, 1월 2일 복직 예정자들에게 무기한 휴직 연장 통보
최용락 기자
원문보기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71472&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
"그냥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역할이고 책임이기도 하고요. 또 저는 다 들어갈 것이라는 희망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어요. 합의서가 사실 불투명한 면이 있는데, 이 합의를 했던 지부장이 제일 마지막에 들어간다는 것이 전체 조합원의 복직을 담보할 수도 있고 조금의 위로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짧게 했던 것 같아요."
쌍용차 해고자 복직에 관한 첫 합의가 나오고 1차 복직자 18명이 출근하던 2016년,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마지막에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게 선언한 지 2년이 지난 2018년 9월,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참석한 가운데 남은 해고자 119명 전원을 복직한다는 노노사정(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쌍용차 기업노조, 쌍용차, 경사노위) 합의가 나왔다. '자신을 마지막으로 모든 해고자가 공장에 돌아간다'는 김 지부장의 꿈은 실현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해고 뒤 11번째로 맞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김 지부장의 꿈은 다시 한 번 좌절됐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날아온 무기한 휴직 통보
지난 24일, 쌍용차 사측과 쌍용차 기업노조가 노노사정 합의를 져버린 채 해고자 47명에게 사실상 무기한 휴직을 통보했다. 이번에 무기한 휴직을 통보받은 47명은 지난 7월 1일 재입사한 뒤 무급휴직을 해왔다. 애초 1월 2일부터는 회사에 복귀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합의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해고자들이 소속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의 협의는 전혀 없었다. 이들 47명에는 김득중 지부장도 포함돼 있다.
사측과 기업노조의 합의문을 보면, 47명의 휴직 기간은 "2020년 1월 1일부터"로 돼 있지만, 휴직종료일은 명시되지 않았다. "라인 운영 상황에 따라 추후 노사합의한다", "조기 복귀에 최대한 노력한다"와 같은 강제력 없는 문구가 담겨있을 뿐이다. 휴직기간 중 기본급여와 상여는 70%를 지급하기로 했다.
사측은 '무급휴직자를 배치하기에 경영 상황이 좋지 않다'며 무기한 휴직을 통보한 이유를 설명했다. 노동계는 설사 쌍용차 경영 사정이 어렵다 해도, 47명의 노동자에게 임금 30%를 더 지급한다고 재정에 타격을 주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재정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의해 해고자들의 복귀를 무기한 연기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측은 최근 노동자들에게 '통상상여 200% 삭감', '2020년 임금단체협약 동결' 등을 골자로 하는 '경영 정상화를 위한 동의서'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경영 정상화' 방안에 문제를 제기할 법한 해고자들의 복귀를 막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동의서대로라면 내년도 쌍용차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연 1800만 원 정도 삭감된다.
▲ 2018년 9월 쌍용차 해고자 복직에 관한 노노사정 합의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 ⓒ프레시안(허환주)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삶의 시계
해고자들은 복직을 앞두고 다니던 기업에 사표를 내는 등 신변 정리를 해왔다. 직장 때문에 다른 지방에 살다가 다시 평택으로 이사 온 해고자도 있다. 가족과 친지를 비롯한 해고자의 지인들도 1월 2일이 복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해고자들은 크리스마스인 25일 경기도 평택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긴급 모임을 열고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신과 불만, 분노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그동안에도 합의 불이행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용납할 수 없고, 노노사정 사회적 합의대로 출근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모임의 분위기를 전했다.
김 지부장은 무기한 휴직 연장 통보를 두고 "저희도 10년 동안 자기 주장만 한 것이 아니고, 회사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기에 공장 안에 있는 구성원들만큼이나 사람들이 쌍용차를 사줘야 한다는 애사심을 갖고 10년을 버텨왔다"며 "회사의 위기에 공감하지만, 쌍용차 임직원 중 가장 고통 속에 살면서도 현장에 돌아간다는 희망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은 정말 너무 잔인하다"고 말했다.
먼저 복직한 사람들의 마음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2015년 평택쌍용차공장의 70m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을 했고, 올 초 복직한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을 비롯한 복직자들은 26일 새벽, 평택 쌍용차 공장에서 "10년 만에 공장 복귀 기한 없는 휴직 연장 사회적 합의 기만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김정욱 사무국장과 고공농성을 같이 했던 이창근 쌍용차지부 노동자도 25일 페이스북에 "먼저 복직한 사람으로 구체적으로 뭐라도 해야 할 상황이다. 임금을 떼는 임금 연대는 물론 연락하고 밥 먹는 밥 연대 또한 중요해 보인다"며 "우리는 지금 내부 다독이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복직한 우리가 할 첫 번째 일은 남은 해고자들과 이 암담함을 함께 하는 일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2012년 천막농성을 벌였고, 2018년 쌍용차의 서른번째 해고 희생자인 고 김주중 씨의 분향소를 차렸던 대한문 앞에서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 쌍용차 공장 앞에서 무기한 휴직 연장 통보를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 강환주 페이스북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