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19 경향신문] '100억원' 무게에 기울어진 저울…"정의로운 판결 원한다"

'100억원' 무게에 기울어진 저울…"정의로운 판결 원한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192324001&code=940100#csidxcd03d4dc0ff8af5a7896eaee361d5de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국가 손해배상 청구 대응모임’ 관계자들이 1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국가폭력 피해 10년, 쌍용차 노동자 괴롭힘 이제 멈추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국가 손해배상 청구 대응모임’ 관계자들이 1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국가폭력 피해 10년, 쌍용차 노동자 괴롭힘 이제 멈추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 19일 천칭저울이 놓였다. 저울 한쪽엔 5만원권 모형 지폐가 100억원 분량만큼 쌓였다. 다른 한쪽엔 쌍용자동차 작업복들이 걸렸다. 저울은 돈이 쌓인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 디케가 평소 든 평평한 저울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쌍용자동차(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시민·NGO 단체 등으로 구성된 ‘국가 손해배상 청구 대응 모임’은 이날 오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국가와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배상액이 100억원 넘게 발생했다며 사법부에 국가폭력을 끝내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저울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제기된 손해배상액 100억원과 쌍용차 노동자가 당한 국가폭력의 무게를 비교하는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저울 한 쪽에 걸린 작업복들은 지난 2009년 정리해고 이후 세상을 등진 30명의 쌍용차 희생자를 상징한다. 

100억원의 손해배상액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서 77일간 장기 파업을 벌인 이후 현재까지 누적된 돈이다. 경찰은 파업 당시 헬기와 크레인 장비 등이 훼손됐다며 24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회사는 공장시설 파손 등을 이유로 노조에 10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노동자들은 손해배상 소송 1, 2심에서 잇따라 패소했다. 1심 판결에 따라 국가와 회사가 받을 액수는 47억원으로, 여기에 연 20% 남짓의 지연 이자를 더하면 100억원이 넘는다.

지난 17일 인권위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노동3권이 위축되지 않도록 심리·판단하라는 의견을 대법원에 냈다. 인권위는 파업 당시 경찰이 진압과정에서 위법·부당한 강제진압을 해 인권을 침해하고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는데도 노동자 생존권을 위협하는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정당성이 결여된 행위라고 판단했다. 지난 7월 민갑룡 경찰청장은 쌍용차 진압 등 과거 사건 인권침해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했지만 손해배상소송을 취하하지는 않았다. 노사 합의에 따라 해고 노동자들이 대부분 복직했지만 회사 역시 소송을 취하하지 않았다.

기자회견에 나선 단체들은 “올해 초 10년 만에 공장으로 돌아간 노동자는 첫 임금이 가압류되는 경험을 했다”며 “국가폭력의 수단으로 악용된 손배가압류가 끝나지 않는 한 국가폭력은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내년이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모두 공장으로 돌아가지만 대법원 판단에 따라 100억원의 무게에 짓눌릴 수 있는 현실 앞에 기뻐할 수조차 없다”며 “대법원이 신중한 판결을 통해 국가폭력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씨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육안으로 단 한번도 아니 앞으로도 볼 일 없는 100억은 어느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동료들과 직접 만들어 봤다. 5만원권 지폐 100억이 100㎏ 남짓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면서 “2013년 손배 금액이 47억일 때는 1000원짜리 김밥 말아서 해결해보겠다는 호기라도 발동 했는데, 100억이 넘어서니 그마저도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노동존중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힘 없는 노동자들 벼랑 끝으로 내몰지나 말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