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괴롭힘 소송 10년, 이제 멈춰야” 인권위 앞 쌍용차 노동자의 호소
양아리 기자 yar@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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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손배대응모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가 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손배소송 관련 국가인권위원회의 대법원 의견 제출을 요청하고 있다. 2019.04.03.ⓒ뉴시스
정부가 쌍용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아직도 철회하지 않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24억원 규모의 국가손해배상소송 당사자로서 재판을 받고 있고, 그중 일부는 지금도 퇴직금과 부동산이 가압류 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쌍용차 노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쌍용차 노동자에 대한 국가의 괴롭힘 소송을 멈춰야 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가 대법원에 철회 의견을 제출하라"고 촉구했다.
국가손배대응모임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3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앞에서 '쌍용차 노동자에 대한 국가손배소송 관련 인권위의 대법원 의견 제출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인권위에서 노동자 권리를 넘어 가족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국가폭력의 사슬을 끊어주길 바란다"며 "대법원이 '국가폭력 피해자'인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청구의 정당성을 '인권'의 관점에서 면밀히 검토할 수 있도록, 인권위에서 의견을 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쌍용자동차 국가 손배가압류의 당사자가 참석했다. 쌍용차 노조 채희국(48) 조합원은 "2009년 77일 옥쇄파업 당시 공장안에 있었다는 이유로 징계 해고가 됐다"며 "힘든 처지에 내몰린 동료들과 함께 하기 위해 공장 안에 있었다"고 말했다.
채 조합원은 해고 된 후 3년간의 해고소송 끝에 2013년에 공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복직 후 첫 급여를 받자, 회사는 손해배상을 이유로 급여의 절반을 가압류하기 시작했다"며 "처음 당하는 손배가압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랐고 하소연 할 곳도 없어 아무도 없는 산에 숨으로 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도저히 갚지 못할 것 같은 몇 십 억이라는 큰 돈의 무게에 저는 무기력해졌다"며 "가압류로 인해 반으로 줄어든 급여는 가정생활에도 심각한 압박을 주었고, 정상적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채 씨는 "경찰의 무리한 진압이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피해까지 노동자의 잘못으로 몰고가,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황당한 일은 이제 멈춰야 한다"며 "10년간 갇혀 있던 손배가압류의 족쇄와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호소했다.
국가손배대응모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가 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손배소송 관련 국가인권위원회의 대법원 의견 제출을 요청하고 있다. 2019.04.03.ⓒ뉴시스
앞서 지난해 8월 25일 경찰청 인권침해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는 쌍용차 정리해고 강제진압을 '국가폭력'으로 인정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 강제 진압을 기획하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진상조사위는 국가폭력 사과와 손해배상소송 철회 또는 전향적인 조치 등의 내용을 담은 권고안도 발표했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2,646명의 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렸다. 당시 파업에 참여하고, 강제진압된 노동자들은 범죄자로 낙인찍혀 형사처벌을 받고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 사이 가족들의 생계비가 되야 하는 퇴직금과 보금자리가 국가에 의해 가압류됐다. 국가 폭력의 기억과, 계속된 소송으로 인해 9년 동안 서른 명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서른 번째 희생자인 고 김주중 조합원도 국가 손해배상소송 대상자였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10년간의 해고생활을 겪은 국가폭력 피해자가, 소송 당사자까지 돼 고통을 받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이자, 2차가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국가손해배상 소송(3심)은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2014년 1심 재판부와 2016년 2심 재판부는 쟁의 기간 중에 벌어진 헬기와 기중기 등 경찰의 진압장비 파손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물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에 따르면, 국가손배 청구에 따른 최초 가압류는 67명의 조합원에게 이뤄졌고, 이들에게 부과된 손배가압류 금액은 총 8억9천만 원에 달한다. 임금 및 퇴직금 가압류는 인당 1천만원 씩 총 6억 7천만 원, 부동산 압류는 조합원 22명에게 1천만 원씩 총 2억2천만 원으로 집계됐다.
2016년 2심 이후 가압류 중 일부가 풀렸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압류는 총 3억9천만 원이다. 채무자는 총 39명이다. 이 중 복직한 노동자 26명에 대해 지난 2월 1일 법무부가 가압류 해제조치를 발표했다. 아직까지 가압류가 남아있는 대상은 복직 노동자 1명, 복직하지 못한 노동자 13명이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작년 연말, 10년 만에 현장에 돌아갔던 우리 동료들에게 1월에 가압류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며 "손배가압류는 복직 이후 여전히 우리한테 남아있는 트라우마다. 이것이 대법원에서 어떻게 판결이 될지, (손배가압류가) 철회되지 않았을 때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가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지부장은 "그동안 경찰청, 법무부, 청와대 곳곳을 안 다녀본 곳이 없다"며 "마지막 이곳 인권위에 저희 입장을 담은 호소를 하려 한다. 국가 손배소가 철회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송상교 사무총장은 "국가가 노동3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입과 손발을 막는 소송, 우리는 이것을 '괴롭힘 소송'이라고 부른다"며 "이 소송은 오래 전부터 다른 나라에서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고 불렸고, 소송의 남용이라고 해서 결코 허용되지 않는 합의들이 만들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소송은 껍데기만 소송일 뿐이지, 실제로는 국민과 노동자를 괴롭히는 보복조치"라고 지적했다.
천주교 서울교구 노동사목위원회위원장인 이주형 신부는 국가 손배소에 대해 "파업과 쟁의행위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그럼에도 쟁의기간에 발생한 손실을 과도하게 책정하는 것은 물론, 손해배상으로 막대한 금액을 청구할 것을 예고함으로써 노동자들을 위협 협박하거나 위축시킨다"면서 "또 손배가압류를 앞세워 노동자 지위확인 소송 취하, 노동조합 탈퇴, 퇴사를 종용하는 등의 2차 노동탄압이 벌어진다"고 비판했다.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은 "인권적 관점에서 손배가압류는 노조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또는 노조활동을 못하도록 막기 위한 보복행위라고 국제인권기구에서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있다"며 "따라서 이런 노조파괴 행위, 손배가압류는 당장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인권적 관점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지금 조합원들은 죽음의 문턱까지 떠밀려 있다. 지금까지 가해진 인권침해를 해결하는 첫단추로서 국가가 손배가압류를 철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인권위가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이후 김득중 쌍용차 지부장 등은 인권위에 민원을 접수하고, 최영애 인권위원장 면담요청서를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