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가압류 소송은 어떻게 희망을 빼앗나
회사나 국가(경찰)가 제기한 손해배상·가압류 탓에 수많은 노동자가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고통 속에서 신음한다. 그 ‘참담한 실태’를 추적했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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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찰 헬기 망가뜨렸다니까 고철이라도 좀 주면 좋겠어. 그거 팔아서 손배 갚는 데 보태게.”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농을 건넸다. 도성대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이 바로 맞받았다. “고철을 팔긴 왜 팔아. 망가진 헬기 그거 받아다 까짓것 고칩시다. 평택에서 서울 올 때마다 타고 다녀.” 둥글게 모여 앉은 사이로 잠시 왁자한 웃음이 터졌다. 만들고 고치는 건 ‘좀 하는’, 공장에서 뼈가 굵은 이들만이 할 수 있는 농담이었다.
멀게는 경상북도 구미에서부터 가깝게는 아산·화성·평택에서 온 노동자 다섯 명이 1월8일 오후 서울 정동 금속노조 사무실에 모였다. 회사도, 나이도, 경력도 천차만별이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는 단어가 있다. ‘손해배상(손배)·가압류’다. 이들은 파업 이후 회사나 국가가 제기한 손배·가압류 소송에 수년째 시달리고 있다. 이날 만남은 김승섭 연구팀(고려대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이 국내 최초로 실시한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 연구의 일환이다(갚을 길 없는 돈, 죽음 택하려 했다 기사 참조).
김승섭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에 앞서 2018년 8월부터 12월까지 9개 사업장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 236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가 진행됐다. 숫자로 드러난 연구 결과가 ‘뼈’라면, FGI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피와 살’이었다. 설문지 속 100여 개 질문으로는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시사IN 윤무영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법전에만 머무른다. 앙상한 글자로만 남은 이 기본권은 업무방해죄(형법)나 손해배상 청구 소송(민법) 같은 하위법에 속수무책이다(<시사IN> 제339호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은 없다’ 기사 참조). 1991년 10월4일 최병렬 당시 노동부 장관이 국정감사에 출석해 한 말은 ‘손배 폭탄’의 신호탄이었다. “노사분규 중 폭력 행위에 대해서는 불법·합법 파업을 가리지 않고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토록 강력 지도하겠다.”
손배·가압류는 노조 무력화 ‘핵심 매뉴얼’
이후 사용자 측이 요구한 손해배상 청구액을 모두 인정한 1994년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며 손배·가압류는 노조를 무력화하는 ‘핵심 매뉴얼’로 자리 잡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국가(경찰)가 당사자가 되어 노동조합을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사실상 ‘합법’ 파업이 불가능한 현실을 차치하더라도, 불법과 합법을 따져보기도 전에 날아오는 손배·가압류 청구서 앞에 노동자만 죽어나갔다.
“손배·가압류는 노조 파괴의 기본 중 기본이에요.” 도성대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이 오른손으로 가슴께를 지그시 눌렀다. “여기를 이렇게 꾹 누르고 있는 느낌을 항상 받으면서 사는 거죠. 손배·가압류야말로 ‘지병’ 같아요. 감기처럼 확 왔다가 마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계속 아프게 하는.” 유성기업은 현대자동차 핵심 엔진 부품을 납품하는 제조업체다. 2011년 노사교섭 중 협상이 결렬되자 파업을 단행했고,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이후 회사는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기획 아래 노조 파괴를 위한 절차를 밟았다(나중에 고용노동부는 창조컨설팅 설립 인가를 취소했고, 심종두 창조컨설팅 전 대표는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유시영 유성기업 전 회장은 그 혐의가 인정돼 2017년 1년2개월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물론 유 전 회장 복역 중에도 손배·가압류 소송은 추가로 계속됐다.
자연스레 노동조합 사무실을 드나들던 조합원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머리 위로는 CCTV가 있고, 앞뒤 양옆 어디에나 관리자가 있었다. “소속장이 ‘관찰일기’라는 걸 써서 회사에 보고하거든요. 화장실에 몇 번 가는지, 휴대전화를 몇 번이나 보는지, 노동조합에 몇 번 가고 얼마나 머물렀는지…. 시간을 다 따져서 1분 단위로 임금을 삭감해요.” ‘가학적인’ 노무관리는 2011년 이후 유성기업 노조 조합원에게 일상이다. 노조 조합원은 시비조·몸빵조·채증조로 나뉜 사측 관리자와 무시로 싸운다. 셀 수 없이 오가는 소장 속에 손배·가압류가 빠질 리 없다. 현재 다투고 있는 손배·가압류가 모두 몇 건이고 금액이 얼마인지를 헤아리는 데도 시간이 한참 필요했다.
ⓒ시사IN 이명익 2015년 6월 갑을오토텍 친기업 노조 조합원들이 회사로 진입하려 하고 있다. 사측은 경찰·특전사 출신을 고용해 친기업 노조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1년에 이자만 9000만원 내야 하니…”
차랑용 에어컨·라디에이터 전문업체로 역시 현대자동차에 제품을 납품하는 갑을오토텍 상황도 유성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측이 파업을 유도하고 직장폐쇄를 단행한 후 친기업 노조를 세워 기존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방식이 똑같았다. 다만 갑을오토텍은 2018년 9월 법원 조정에 따라 손배·가압류 3건 102억6000만원이 해소됐다. 2년 넘도록 이어지던 소송이 노조가 1심에서 승소하자 급물살을 탔다.
이대희 금속노조 갑을오토텍 지회장은 사법부나 공권력에 강한 불신을 보였다. “손배·가압류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시간은 회사 편이에요. 노조 활동 적극적으로 하면 민형사 다 걸 수 있다, 만약 걸려도 노조 탈퇴하면 손배·가압류 대상에서 빼준다고 사측이 회유하고….” 김승섭 연구팀에 따르면 실제 손배·가압류 소송이 제기된 뒤 동료가 노조를 탈퇴한 적이 있는지 물었을 때 94.9%가 ‘그렇다’고 답했다. 탈퇴의 주된 이유는 ‘관리자가 탈퇴를 권유해서’(49.4%), ‘가족·친지·동료 등 주위의 만류’(36.9%) 순서였다. 손배·가압류 이후 조합원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응답한 사람도 64%에 달했다.
수년간 소송과 조정을 거치며 손배·가압류 금액이 확정되면 통상적으로는 채권(임금·전세보증금 등)이나 부동산이 압류된다. 비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KEC가 대표적이다. KEC에서는 2010년 사용자 측이 작성한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에 따라 노조 파괴가 진행됐다. 노조는 파업으로 맞섰고 사측은 노조를 상대로 301억원에 이르는 손배·가압류 소송을 걸었다. 노조는 사측이 청구한 손배·가압류 금액이 터무니없음을 증명해야 했다. 7년을 진행한 끝에 2016년에야 1심 재판부가 조정안을 냈다. ‘3년간 30억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이었다. 기한을 정하고 임금을 압류한 첫 사례였다.
그런데 사측의 부당노동행위(형사 재판)를 인정한 법원의 판단이 1심 재판부 조정안 4개월 뒤에 나왔다. 조합원들은 이미 급여와 상여금 등을 압류당하고 있었다. 그사이 700명에 달하던 조합원은 41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떠난 이’의 손배·가압류는 고스란히 남은 자의 몫이 된다. 손배·가압류 대상자가 줄어든다고 해서 금액이 줄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종희 금속노조 KEC 지회장은 지금도 자신을 비롯해 조합원들이 갚아나가는 30억원이 어떤 계산에서 나온 금액인지 모른다. “참 순진했죠. 파업 당시 공장을 점거할 때 동료들이랑 그런 얘기했어요. 이거 우리가 다시 돌릴 설비니까 절대 상하게 하면 안 된다고….” 2005년 민사집행법이 개정되면서 손배·가압류 대상자라도 150만원가량의 ‘최저생계비’는 받을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 ‘통장 잔고를 0원’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던 법이 베푼 관용은 여기까지다.
월급 나올 구멍마저 없는 사람은 김장김치가 든 냉장고며 초등학생 아이가 즐겨 보는 텔레비전에 ‘빨간딱지’가 붙을 각오를 해야 한다. 최정명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이 2016년 실제 마주한 상황이다. 최씨는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 전광판 위에서 기아자동차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364일 고공 농성을 벌였다가 해고당하고 5억8000만원의 손배·가압류가 확정된 터였다. 빨간딱지가 붙은 살림살이는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경매에 부쳐졌다. “결혼할 때 장만해서 10년 넘게 쓴 게 값이 나가봤자 얼마나 되겠어요. 살림살이 다 합쳐봐야 120만원쯤 된다는 거예요. 아내가 샀어요. 살림은 살아야 하니까. 내 물건인데 내 돈 내고 사는 거죠.”
그런 ‘푼돈’으로는 연 14~15%씩 붙는 지연이자조차 갚을 수 없었다. 있는 돈 없는 돈을 싹싹 끌어모아 4년간 1억2000만원 정도를 갚았지만, 이자만 매년 약 9000만원씩 붙었다. “이자가 붙는 속도를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어요. 어떻게 되려나. 저는 이제 아무것도 확신 있게 말하지 못해요. 사람이 힘들어서 죽는 게 아니고 희망이 없으면 죽는다고 하잖아요. 그 말이 뭔지 제가 너무 잘… 알죠.”
2018년 6월27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및 가족의 서른 번째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고 김주중씨도 퇴직금을 가압류당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햇수로 10년의 긴 싸움 끝에 전원 복직의 문을 연 쌍용자동차 조합원에게도 아직 풀지 못한 손배·가압류가 있다. 2009년 옥쇄 파업 당시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2018년 8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공권력 과잉 진압을 인정하며 손배·가압류 취하를 권고했지만, 현재까지도 해결이 요원하다. 대법원에 계류 중인 소송이 그렇게 10년째를 맞았다. 경찰이 최초로 청구한 금액은 24억원, 이후 2심 판결에서 11억6000만원으로 금액이 줄었지만 경찰이 상고하면서 청구 대상자는 오히려 확대됐다. 2015년 노사 합의로 일부 복직된 희망퇴직자까지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복직하자마자 퇴직금 가압류 통지서부터 받아야 했다.
손배·가압류는 복직보다 더 절박한 문제
사람들은 쌍용자동차 사례를 ‘아름다운 노사 합의’라고 상찬했다. 복직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 더 절박한 문제는 손배·가압류다. 김득중 쌍용자동차 지부장은 이를 ‘벗을 수 없는 멍에’라고 표현했다. “이번에 손배·가압류 문제로 실태조사를 한다고 하니까 9년 만에 조합 사무실에 찾아온 사람이 있어요. 기업노조에 가든, 제3노조에 가든 어디를 가도 국가가 건 손배·가압류는 계속 따라다니는 꼬리표거든요. 절박한 마음이 민망함도 무릅쓰게 한 거잖아요.”
정부와 국회가 팔짱 끼고 있는 동안 국제사회는 여러 차례 한국 정부에 손배·가압류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고해왔다. 2017년 6월 국제노동기구(ILO)는 “파업은 본질적으로 업무에 지장을 주고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라고 정의하며 노동자의 파업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했다. 같은 해 10월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는 노조 할 권리 전면 보장 및 ILO 결사의 자유협약 비준을 주요 권고사항으로 꼽았다. 특히 파업 시 적용되는 업무방해죄와 손배·가압류를 “노동자에 대한 보복 조치”라 명시하고 “당사국의 자제와 독립조사 실시”를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손배·가압류의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대통령이 되기 전 공식 자리에서 여러 차례 의견을 밝혀왔다. 2015년 10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시절에는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 ‘손잡고’가 국회에서 연 행사 때 “손배·가압류 남용은 노동 3권을 무력화시키는 부당한 처사”라는 내용의 인사말을 보내왔다. 그에 앞서 2014년 2월에는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하며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들에게 손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수십억 단위의 손배소, 가압류가 여전히 노동자의 목을 조이고 있습니다. 사측뿐 아니라 정부와 경찰까지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남용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을 무력화하는 부당한 처사입니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다가오는 4월 한국 정부는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가 권고한 내용의 이행사항을 보고해야 한다. 정부를 대신해 1월24일 김승섭 연구팀이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침해와 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최초로 내놓았다. 이를 근거로 정책과 법제도 개선을 이끄는 것은 이제 정부와 국회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