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죽음의 덫' 노동자 손배·가압류, 입법으로 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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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손배) 소송과 가압류가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죽음의 덫’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사회역학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손배·가압류를 당한 남성 노동자의 30.9%가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봤고, 실제 자살을 시도한 비율은 3%였다고 한다. 일반 남성에 견줘 각각 23.8배, 30배나 높다. 여성 노동자의 경우도 대조군보다 13.4배 높았다.
손배·가압류는 노동자를 실제로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하다. 지난해 6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김주중씨의 자살은 손배·가압류에 따른 경제적 고통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도 같은 이유로 분신했고, 같은 해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은 손배 철회를 요구하며 크레인 농성을 하다 목숨을 끊었다.
이번 조사 대상의 75%는 10억원 넘는 손배 금액을 지고 있다고 한다. 이자의 늪에서도 헤어날 수 없게 족쇄를 채워 노조를 와해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실제로 손배·가압류 이후 회사가 명단에서 빼주겠다며 회유하는 경우가 많고, 조사 대상자의 94.9%는 동료들이 이 때문에 노조를 탈퇴했다고 답했다. 조합원 수가 절반 이상 줄어든 경우도 64%나 됐다고 한다.
손배·가압류의 역사는 1989년 대구의 한 자동차부품 회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듬해 최영철 당시 노동부 장관은 기업들이 이 수단을 적극 활용하도록 지도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1994년 대법원은 처음으로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확정판결을 내렸다. 노동자들에게 구속·해고보다 훨씬 가혹한 손배·가압류의 전성시대가 기업-정부-사법부의 합작으로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노동조합법은 진작부터 기업들의 손배·가압류 남발에 길을 터주는 제도로 지목돼왔다. ‘합법 파업’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정하고 있는 탓에 노동자의 생존권에 직접 영향을 주는 민영화나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 등을 놓고 벌이는 파업도 모두 불법이자 손배 대상이 된다. 파업을 못 하게 막는 법을 놔둔 채 손배·가압류 남용을 막을 수는 없다. 노동자들이 계속 벼랑 끝으로 몰린다면, 정부와 정치권이 강조하는 ‘건전한 노사관계’도 불가능하다. 빨리 법부터 고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