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C 임금압류 일지 1. 김순희 조합원] 몇 번의 명절을 더 맞아야 이 덫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KEC 임금압류 일지 1. 김순희 조합원]

몇 번의 명절을 더 맞아야 이 덫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손잡고 주 : 본 글은 30억 원의 손해배상을 갚기 위해 매달 회사로부터 임금이 압류되고 있는 전국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 KEC지회 소속 조합원들의 '임금압류 기록'입니다. 조합원 가운데 44명의 당사자들은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9월 20일, 법원 조정 명령에 따라 회사가 청구한 손해배상액 301억 원 중 30억 원을 3년 동안 임금에서 갚아야 합니다. 파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노동3권이 헌법에 보장된 나라에서, 회사의 노조파괴와 부당노동행위에 맞선 노동자가 겪어야 하는 모순된 현실을 기록하고 '노조 할 권리'의 현주소를 알리기 위해 해당 조합원들이 용기 내어 노동자 손배소 당사자의 임금압류 일지를 매달 <오마이뉴스> 지면을 통해서도 공개합니다(기사링크 : http://omn.kr/o8sq "결혼 4개월 만에...회사에 '꿈'을 빼앗겼습니다").
 

 

 '노조를 설립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금속노조 KEC지회 소속 손배압류 당사자들은 회사의 임금압류를 견뎌내고 있다. 7년간 회사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맞서 사수한 KEC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사무실과 명패.

▲  '노조를 설립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금속노조 KEC지회 소속 손배압류 당사자들은 회사의 임금압류를 견뎌내고 있다. 7년간 회사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맞서 사수한 KEC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사무실과 명패.
 

 

저는 KEC 노동자 김순희입니다. 저는 전국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 KEC지회의 조합원이기도 합니다. KEC는 경상북도 구미에 위치한 반도체제조회사입니다. 현재 우리 지회의 손배당사자 조합원 가운데 해고자를 제외한 44명은 1년째 임금이 압류되고 있습니다. 2010년 지회가 파업을 했고, 점거파업에 마지막 날까지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회사가 공장부지 일부를 매각하는 '구조고도화사업'을 계획하면서 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하고, 이후 '정리해고'를 단행하면서 파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새벽에 여성노동자들의 기숙사에 용역을 침투시켜 여성노동자들을 강제로 밖으로 끌어내며 공격적인 직장폐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회사의 결정에 맞서 노조가 공장을 점거하는 등 쟁의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301억 원의 손해를 봤다며 공장안에 남아있던 88명의 조합원들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했습니다. 

       7년의 길고 긴 법정 다툼 동안 회사의 회유와 협박으로 조합원 일부가 이탈하고, 일부는 해고되었습니다. 이후 쟁의행위의 원인이었던 회사의 '정리해고'가 '인력구조조정로드맵', 일명 회사의 노조파괴시나리오에 의한 전략적 부당노동행위임이 2017년 1월 소송 결과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압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2016년 9월, 손해배상 당사자들은 법원의 조정에 의해 '3년 동안 30억 원을 갚으라'는 결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임금압류도 이번 달로 1년째가 되었습니다. 

 

신혼의 단꿈마저 빼앗아간 그날

남편도 KEC 노동자였습니다. 우리는 사내 커플이었고, 2010년 2월에 결혼했습니다. 올해로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7년째입니다. 하지만 올해 결혼기념일도 우리 부부는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조촐한 저녁 식사나 케이크에 촛불 하나 켜보는 소소한 일상도 꿈꿔보지 못하고 서로 떨어져 지내야 하는 현실입니다. 

       결혼 생활 7년이면 남들처럼 토끼 같은 아이와 함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을 시간인데, 우리 부부에게는 그마저도 '꿈'이 되었습니다. 보통의 부부처럼 '누구 아빠', '누구 엄마', '오늘은 아이와 함께 어디 갈까?' '뭐 할까?' 이런 일상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저 평범하게, 별일 없이 소박하게 사는 것. 결혼 7년 된 우리 부부의 대화에 '누구 아빠', '누구 엄마'는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나 만나서 순희(오빠)가 고생이다, 나 만나지 않았으면 우리 순희(오빠)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하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2010년 새벽, 회사가 고용한 용역이 여성기숙사를 침탈했다. 공장밖으로 내쳐진 여성노동자들의 모습.

▲  2010년 새벽, 회사가 고용한 용역이 여성기숙사를 침탈했다. 공장밖으로 내쳐진 여성노동자들의 모습.

 

       우리 부부의 일상에서 '평범함'을 앗아간 사건은 결혼 4개월 차에 벌어졌습니다. 2010년 6월 30일 새벽 1시, 공장 여성기숙사에 용역이 들이닥쳤습니다. 동료의 SOS 문자를 받고 달려간 공장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회사 서문으로 끊임없이 승용차가 줄지어 들어갔고, 여성기숙사에서 자고 있던 노동자들이 강제로 끌려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던 동생은 슬리퍼에 핸드폰 하나만 손에 쥔 채, 기숙사에서 쫓겨 나왔습니다. 

       우리는 112에 신고를 했지만 "네 접수했어요"라는 말뿐, 경찰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정문 앞은 600명의 용역들이 막아섰고, 소화기가 뿌려졌고, 온갖 욕설과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눈앞의 상황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그때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달콤한 신혼 생활을 보내야 할 시기에 회사 앞 아스팔트 위 천막 농성장에서 농성하게 됐습니다. '가족'이라던 회사는 여름휴가비와 추석을 앞두고, 조합원들을 돈으로 회유하거나 협박했습니다.

       회사는 지회의 파업을 불법 파업으로 몰아갔고, 언론조차도 불법파업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실이 가려지고 왜곡되는 것을 보면서 이 나라에서, 이 세상에서 버려진 것만 같아 힘들었습니다. 회사는 노조와 교섭하기 위한 노력도, 대화조차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할 수 있는 것은 쟁의뿐이었고, 노조는 공장을 점거했습니다. 우리 부부를 포함해 당시 공장 안에 있던 조합원들은 하루하루 힘겨웠고, 하루빨리 회사가 대화에 응하기를 바랐습니다. 장기간의 파업으로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힘든 시간을 버티고 나서야 우리는 사회적 합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7년째 계속돼온 회사의 '괴롭히기'
 

 KEC는 '노조파괴시나리오'에 따라 파업 종료 후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징계하고 등급을 매겨 '반인권 교육'을 실시했다.

▲  KEC는 '노조파괴시나리오'에 따라 파업 종료 후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징계하고 등급을 매겨 '반인권 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잠시간의 기대와 달리, 공장점거를 풀고 난 후 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회사의 '괴롭힘'이 시작됐습니다.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노조 간부뿐 아니라 점거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조합원에게까지 회사의 고소·고발이 이어졌습니다. 2011년 파업 철회 후, 출근한 저를 기다리고 있던 건 내가 일하던 일터가 아니라,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빨간 글씨의 현수막이 붙어있는 교육장이었습니다. 회사는 공장점거하고 기소된 조합원들에게는 주황색 티, 기소유예된 조합원들에게는 파란색 티, 공장점거를 하지 않은 조합원들에게는 노란색 티를 입혀 각 실천반, 개혁반, 창조반으로 나눠 '교육'을 시켰습니다. 

       말이 '교육'이지 명백한 '인권유린'이었습니다. 더워서 부채질한 횟수, 화장실 간 횟수 등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식사시간이든 휴게시간이든 용역들이 우리의 뒤를 따라 다니며 체증했습니다. 심지어 용역은 여성 조합원들이 화장실을 갈 때도 따라붙었습니다. 공장점거 당시 현장 사진을 보며 반성문을 쓰게 하고, 동의보감 한자 문제 등 현장 복무와 관계없는 시험문제를 내고, 시험지의 답이 "다 나가라!", "나가라 다"로 조합되도록 문제순서를 배치했습니다.

 

 

 회사가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감시할 목적으로 용역을 투입해, 조합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한 용역메모 사진이다. 용역들은 여성조합원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화장실 간 횟수까지 기록했다.

▲  회사가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감시할 목적으로 용역을 투입해, 조합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한 용역메모 사진이다. 용역들은 여성조합원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화장실 간 횟수까지 기록했다.
 
 

       회사는 "퇴근 후 지도부를 만나지 말라",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며 협박을 서슴없이 했습니다. 교육기간 동안 회사의 간부가 '301억의 손해배상을 갚을 수 있겠냐, 책임을 면해 줄 테니 이 돈(희망퇴직금)이나 줄 때 나가라! 그리고 나가면 다시는 현장에 돌아가지 못할 거다'라며 퇴사를 종용했습니다. 이 간부가 하는 말들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이야기였고, 그래서 뭐라 답해야 할지도 몰랐고, 겁이 많이 나서 떨렸습니다.

       그 이후로도 회사는 수시로 손배 대상자에서 빼주겠다며 퇴사를 강요했고, 저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인사고과마다 고과 'C'와 정리해고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다시 불어 닥친 정리해고에 맞서다 남편이 징계해고 됐습니다. 제 임금마저도 줄었습니다. '어용노조'와 회사의 합의로 상여금이 300% 이상 삭감됐기 때문입니다. 원래도 여성노동자의 기본급이 낮아 상여금이 없는 달이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았기 때문에 상여금은 생계비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터라 생계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3교대를 돌면서 새벽에는 남편과 같이 우유배달을 해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야만 했습니다. 

       그마저도 손배 조정이 결정된 이후에는 상여금마저도 모두 압류되는 상황입니다. 더구나 지금 제 옆에는 힘이 들 때마다 늘 함께 해오던 남편이 없습니다. 생계를 버텨내기 위해 남편과 떨어져야만 했습니다. 회사에서 기술직으로 근무하던 남편은 지금은 조선소, 일용직 가리지 않고 궂은일들을 찾아다닙니다. 함께 일하던 회사에 혼자 남은 저는 현장에서 일하다가 가끔 남편이 사용하던 테이블을 보면 억울하고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몇 번의 명절을 보내야 이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올해 설 명절은 참 마음도 발걸음도 무거웠습니다. 다가오는 추석도 마찬가지겠지요. 앞으로 몇 번의 명절을 보내야 이 손배라는 덫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올해는 친정어머니의 환갑입니다. 부모님께 여행 한번 제대로 시켜드리지 못한 것이 정말 죄송스럽고 속상하기만 합니다. 결혼하고 나면 둘이 돈 모아서 토끼 같은 아이도 낳고, 자그만 해도 오손도손 살 집도 마련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잘 살아야지 맘먹었던 것들 중 어느 하나 이룬 것이 없습니다.

      손배소 조정 결정이 나기 전, 쌍용차 노동자들이 손배가압류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희생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제발 우리 조합원들에게 이런 일들이 닥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지옥 같은 삶이 이제는 저를 비롯한 조합원들의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경험한 일들, 파업했다고 해고되고, 301억 원의 손배소 청구를 받고, 급기야 임금이 압류되는 이런 일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숨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습니다. 

      우리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돈과 권력으로 아무렇지 않게 비정상적인 일들과 불법을 자행합니다. 그러나 우리같이 힘없는 노동자들은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목소리 한번 내기 위해 단식하고, 하늘위로 올라가고, 그러다 목숨마저 끊어야 하는 현실 속에 있습니다. 지금 저도, 조합원들도 한 사람 한 사람 보이지 않는 굴뚝 위에 올라 있는 현실입니다.

       희망을 갖고 살아가기엔 지금 우리의 일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처한 현실은 숨 막힐 듯 괴롭지만 더 이상 손배로 노동자들의 가정과 삶이 파탄 나는 일들을 부디 다른 노동자들은 겪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