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14 뉴스토마토] (박래군의 인권이야기)파업 한 번에 수십억을 배상하라는 나라

(박래군의 인권이야기)

파업 한 번에 수십억을 배상하라는 나라

박래군 

 

민주공화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런 일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매주 주말을 헌납하고 넉 달째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고 있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민주공화국은 형식적으로나마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이념에 기초한다. 그 기초가 처참하게 깨졌고, 그에 대한 분노가 국민들을 추운 겨울바람 속에도 광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특수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헌법도 제11조 2항에서 분명하게 특수계급을 단호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분명하게 특수계급이 있다. 특검을 통해서 드러나는 최순실, 김기춘 류의 인간들, 그리고 재벌총수들이 상층 특수계급이다. 반면에 사회의 하층을 형성하는 노동자들은 노예의 상태로 빠져 있다.
 
우리나라의 헌법 제33조 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하여 노동3권을 보장한다. 그렇지만 노동3권을 행사했다가는 해고 당하고, 감옥에 가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제도가 있으니 그게 손배가압류다. 쌍용자동차는 노조에 100억 원, 한진중공업은 158억 원, KEC는 306억 원을 청구했고, 법원은 각 노조에 33억 원, 59억 원, 3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현대자동차는 비정규직 지회 간부들에게 90억 원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그대로 9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이디스라는 자그마한 노조에는 회사 경영진의 얼굴에 신발을 던지는 퍼포먼스 한 번 했다고 1억 원을 배상하라고도 판결했다. 경영진의 인격을 모욕했다는 이유에서다.
 
노조에 가해진 손배는 노동자 개인에게 분담이 되어서 노동자들의 부동산을 압류하고, 전세금, 월세 보증금에 임금까지 압류하여 가정은 유지하기조차 불가능하다. 끝내는 자살까지 내몰린다. 기업은 느긋하게 노조에서 탈퇴하면 손배 대상에서 빼준다고 회유한다. 결국 기업은 노조를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손배가압류라는 제도를 악용한다. 헌법 제33조가 보장하는 노동3권은 여기서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지금 22개 노조에 1,600억 원의 손해배상과 175억 원의 가압류가 부과되어 있다.
 
이런 일이 민주공화국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이 나라에는 노동조합에 대한 적대가 유난하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갈수록 불평등이 심해지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불평등을 완화할 방법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조세제도의 개혁, 다른 하나는 노동조합의 교섭력 강화다. 서구의 복지국가를 이룬 힘도 사실 노동조합의 교섭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노조의 교섭력은 제로다. 한 번 파업에 수십억 원의 손배가압류가 가능한 나라에서 어떻게 노동조합을 할 수 있겠는가. 노조를 만들고 노조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노조가 힘을 못 쓰는 나라에서는 불평등은 더욱 심각해진다.
 
손배가압류 문제를 풀기 위해서 활동하는 ‘손잡고’가 준비한 노조법 개정안의 핵심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보장하고, 노동자 개인의 삶을 보장하게 하자는데 있다. 더도 덜도 말고 헌법을 지키라는 요구다. 나아가 손배가압류 문제는 노동조합의 문제 이전에 생명권에 관한 문제다. 국민을 살게 만드는 게 국가이지 죽이는 게 국가여서는 안 된다. 이번 국회가 우선적으로 손배가압류 제도를 폐지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언제까지 민주공화국의 기초를 부인하는 악마의 제도를 용인할 것인가. 국회가 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