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09 시사포커스]“사진에 신발 던졌다고 1억?” 손배가압류 피해자들의 충격적 증언들

“사진에 신발 던졌다고 1억?” 손배가압류 피해자들의 충격적 증언들
 
노조활동 했다고 수십억, 수백억…“노란봉투법 통과시켜야”
 
고승은 기자
 
   
▲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이 평생 꿈도 꿀 수 없는 수십~수백억씩의 손배가압류가 사측으로부터 떨어지는 집요한 탄압이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손배소의 실태와 법개정의 시급성을 언급하는 토론회가 8일 국회서 열렸다. 사진/고승은 기자

[시사포커스/고승은 기자] 우리나라 헌법에는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명시돼 있지만, 그게 과연 현실에선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활동하는, 이른바 노동자의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들이 평생 꿈도 꿀 수 없는 수십~수백억씩의 손배가압류가 사측으로부터 떨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노동 3권을 행사한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기업과 국가가 청구한 금액은 손배청구 1천600억원, 가압류 175억원에 달한다. 오죽하면 노조활동하면 ‘패가망신’ 당한다는 얘기까지 나올까.
 
과거에는 ‘노사분규’가 일어났을 땐, 사측이 경찰이나 구사대(용역)을 동원해 파업에 나선 노동자를 공격하고 노조를 파괴하곤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손배가압류’라는 집요한 형태로 진화했다. 과거처럼 폭력보다 돈줄을 끊는 것이 노동자들을 억죄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MB정부 이후 손배가압류액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또 법원의 판단이 나올때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노동자들은 그 기간에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보낸다.
 
이같은 현실을 감안해,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노조법 일부 개정안(이른바 노란봉투법)을 국회에 대표발의했다.
 
노란봉투법이란 노동자를 상대로 사측이 손해배상-가압류 등을 남발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다. 주요 내용은 ▲합법적 노조활동 범위 확대 ▲노동자 개인 및 신용보증인에게 손배 책임 제제 ▲손배 청구 금액에 상한액 규정 등을 골자로 한다.
 
지난 2014년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지자 두 아이 엄마인 배춘환씨가 태권도비 4만7천원을 노란봉투에 담아 주간지 <시사인>에 보내면서 시작됐다. 그러면서 캠페인이 시작됐고 4만7천여명이 참여했다. 여기에 연예인 이효리 씨 등도 참여하면서 노동자들을 향한 과도한 손배소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제시되기도 했다.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자, 지난 19대 국회에서 은수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란봉투법’을 대표발의했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측의 반대로 폐기된 바 있는데, 20대 국회서 다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8일 국회에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환노위 소속 의원 7명과 박근혜퇴진행동 산하 적폐청산특별위원회, 손잡고가 8일 국회에서 개최한 <벼랑 끝에 선 손배소 노동자 법개정으로 살리자> 토론회에서 현재 사측으로부터 막대한 금액의 손배소송을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피해상황을 증언한 내용이다.
 
◆ “저에겐 1억짜리 신발 한 짝이 있습니다”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 김혜인 조합원은 이날 증언에서 “저에겐 1억짜리 신발 한 짝이 있다. 금으로 만든 운동화인가? 아니다. 평범한 운동화”라며 말문을 열었다.
 
김 씨는 지난 2011년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 제조업체인 하이디스에 입사한 노동자다. 그는 “2015년 1월 갑자기 회사가 공장폐쇄와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2014년 천억원의 흑자를 낸 회사가 갑자기 정리해고를 통보한 것인데, 이는 대주주인 대만 E-ink사가 1년에 천억원씩 들어오는 특허권을 가져오기 위함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함께 싸우던 동료(전 하이디스지회장)를 잃었다. 그래서 그 죽음의 책임을 묻기 위해 대만원정을 떠났지만, 대만정부에 의해 무차별하게 연행되고 강제추방 당했다. 이후에도 불법연행 강제추방에 항의하기 위해 2015년 7월 4차 원정단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 김혜인 조합원은 사측 경영진의 사진을 걸어 놓은데다 신발을 던졌다는 이유로 1억원의 손배소송을 당했다고 언급했다. 사진은 하이디스지회의 국회 기자회견 모습 ⓒ뉴시스

그는 이어 “당시 대만에서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당시 문화제 마무리 게임으로 신발던지기 게임을 했다. 사측 경영진의 사진을 걸어 놓은데다 제가 신발을 던졌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온 후 저에게 ‘모욕죄’로 경찰조사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측이 1억원의 손배청구 소송을 했음을 전했다.
 
김 씨는 “부당한 정리해고에 항의하기 위해 대만으로 원정투쟁 떠났고, 사진에 신발 한짝 던졌을 뿐인데 1억원의 정신적인 피해가 났다면,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고 함께 싸우던 동료를 잃고 2년 동안 길바닥에서 싸우는 우리의 피해보상은 얼마나 요구해야 하나”라며 “노동자에 손해보상 청구하는 악덕 자본가와 한국의 악법 때문에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두 번 죽는다”며 노란봉투법 통과를 호소했다.
 
◆ “지옥같은 삶이 일상화됐다”
 
KEC지회 김순희 조합원은 남편 이야기를 하며 울먹이면서 말문을 열었다. KEC는 경북 구미에 위치한 반도체 제조 사업장이다. 김씨와 남편은 사내커플이었으며 7년차 부부다.
 
이들은 신혼생활을 하던 무렵인 지난 2010년 6월30일 새벽, 사측은 여성기숙사에 용역을 투입했다. 이에 노동자들이 경찰에 아무리 전화를 해도 경찰은 ‘접수했어요’라고만 할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김 씨는 전했다. 김씨 부부는 이후에 회사에서 천막을 치고 생활했다.
 
지회 측은 파업에 돌입했으나, 사측이 조합원들을 돈으로 회유하거나 협박하는 등 불법파업으로 몰고 갔다고 김씨는 전했다. 그는 “회사는 노조와 교섭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교섭을 이끌어내기 위해 공장 점거를 선택했다. 사측과 사회적 합의를 한 이후 공장점거를 풀고 나왔지만 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6월, 파업철회하고 공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일터가 아닌 ‘내가 왜 여기 있는가’라는 빨간글씨가 붙어있는 교육장이었다. 조합원들에게 각각 주황색, 파랑색, 노란색 티를 입혀 실천반, 개혁반, 창조반으로 나눠 구분했다. 또 부채질하는 횟수, 화장실 가는 횟수 등을 기록하고, 여조합원에게 용역을 붙여 따라나니게 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공장점거 당시 현장사진을 보여주면서 반성문을 쓰게 했고,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시험문제를 냈다. 결국 시험문제의 답은 ‘나가라’가 전부였다”라며 7주간의 반인권적 교육이 있었음을 밝혔다.

   
▲ KEC지회 김순희 조합원은 오랜 기간 동안의 사측 탄압을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진은 KEC지회가 회사 정문 앞에서 사측의 정리해고를 규탄하는 모습 ⓒ뉴시스

김씨는 지난 2012년 남편이 정리해고 됐음을 밝힌 뒤, 건설 공사장-조선소 등을 떠돌고 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현장서 일하다가 남편이 사용하던 테이블을 보면 억울함과 서러움에 북받쳐 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고 울먹였다.
 
사측이 낸 301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으로 그는 150만 원을 뺀 나머지 월급을 압류당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선고를 앞두고 재판장의 권유로 30억원에 화의를 노사가 받아들이게 됐다.
 
김 씨는 “지옥같은 삶이 저를 비롯한 조합원들의 일상이 돼 버렸다. 가진 자들은 돈과 권력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비정상적인 일을 아무렇게나 자행하지만, 우리같이 힘없는 노동자들은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단식하고, 하늘위로 올라가고, 목숨마저 끊어야하는 현실 속에 있다. 희망을 갖고 살아가기에는 우리 삶은 그러지 못하다.”고 토로하며 “저는 이 노란봉투법이 작은 숨구멍 하나 내는 거라 생각한다”고 법안 통과를 호소했다.
 
◆ “모든 게 가압류, 막막하다”
 
동양시멘트지부의 박상근 조합원도 말문을 열었다. 동양시멘트 지부는 2014년 5월 강원 삼척의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인 동일(주) 소속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차별철폐를 외치면서 설립한 노조다.
 
그는 “2015년 해고된 이후 조합원들에게 무차별적인 손배가압류가 들어왔다. 부동산, 채권, 은행예금, 임차금까지 가압류가 들어왔다”면서 “지금 남은 조합원은 23명인데, 가압류 5억9천 손배소 50억2천, 총 56억 정도를 23명이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0억이라는 돈은 체감할 수 없는 돈이고, 가압류가 오다보니 경제생활도 전혀 할 수가 없다. 은행에서 돈 조금이라도 찾을라 해도 할 수 없고 보험도 해지해야하는 상황이다. 자동차도 압류되고, 전셋집마저 가압류되다보니 막막하더라. 집을 팔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싸움에, 잠 잘 때도 공포를 느낀다. 적폐중의 적폐인 손배가압류를 청산하는 노란봉투법이 조속히 발의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 “맞은 건 우린데, 고소고발까지 당한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에선 박현제 조합원이 말문을 열었다. 최근 해당 노조는 법원으로부터 사측에 9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는 “최근 최순실 사태로 재벌총수들 청문회할 당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국회 들어올 때 폭력사태 일어난 것을 보셨을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당시 청문회에 참석하는 정 회장을 상대로 현대·기아차 노조원들이 손팻말을 펼치거나 구호를 외치려는 순간 현대차 직원들에게 폭행당했다는 것이다. 당시 청문회 위원들은 정 회장에 ‘폭행이 있었다’고 지적했고, 정 회장이 “그런 일이 있어선 안된다”라며 사과한 바 있다.

   
▲ 현대차비정규직지회에선 박현제 조합원은 “현대차에서 집회하면 현대차 경비대에게 맞고 고소당하고, 손배 소송까지 당한다.”며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사진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상대로 규탄 피케팅을 하는 조합원 ⓒ뉴시스

그는 “이를 왜 얘기하나면, 국회가 아니고, 현대차 앞이었으면 어떠했을까 한다. 현대차에서 집회하면 현대차 경비대에게 맞고 고소당하고, 손배 소송까지 당한다. 더 재밌는 것은 경찰들이 주변에 많은데, 현행범인데도 잡아가지 않는다. 이게 현대차 공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며, 10년전부터 계속 벌어져왔던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노조를 만들고 활동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저희가 맞고 고소고발도 저희가 당한다. (우리가) 고소고발해서 현대차 측은 처벌받은 적이 없다. 경찰은 직접 봐놓고도 증거를 가져오라는 말만 한다”고 거듭 토로했다.
 
박 씨는 “또 비정규직 조합원뿐만 아니라, 같이 연대하고 싸워줬던 동료들에게까지 손배소송이 들어오고 있다”면서 “이 제도(노란봉투법)이 노동 3권을 더 이상 옥죄는 일이 없도록 법제화됐으면 좋겠다. 재벌들이 법도 무시하는 이런 상황을 바꿔나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가진 자에게 덤비면 죽는다" 인식 확산에 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조가 파업을 하면 업무방해죄로 고소되고, 가압류를 당하며 목숨까지 잃는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우리 헌법에)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명시돼 있지만, 정당한 투쟁들도 손해배상 가압류로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란봉투’ 캠페인을 첫 시작했던 배춘환 손잡고 상임대표는 “노란봉투법이 봄을 전하는 제비처럼 좋은 소식을 물고 왔으면 좋겠다. 봄이 오기 전에 노란봉투법이 통과돼서 노동인권에도 봄이 왔으면 좋겠다.”라며 “아이들에게 ‘사람이 돈보다 귀하다. 우리나라에 정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싶다.”고 말했다.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용자가) 노동자에 대해 손배소-가압류를 하는 것은 권리남용 사례다. 당연히 무효화돼야 한다. 이런 권리남용을 근원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선 입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사용자의)권리행사를 경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월 국회에서 반드시 이 문제(노란봉투법)를 법안심사에 올려서 다시 한 번 처리를 시도하려고 한다.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안 된다면 신속안건 처리제도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고승은 기자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손배가압류 문제가)하루이틀 문제도 아니고, 한 두 사람 문제도 아니”라며 “2월 국회에서 반드시 이 문제를 법안심사에 올려서 다시 한 번 처리를 시도하려고 한다.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안 된다면 신속안건 처리제도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빈부격차 해소다. 우선 노조의 힘이 강해져야 한다. 그 출발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이라도 제대로 보장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말했다.
 
박래군 손잡고 운영위원은 “약자인 노동자들은 단결하면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사측은) 노조를 파괴하는 방법으로 손배가압류를 동원한다. 노조활동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거 보여주면서, 노동자 전체를 위축시키고 또 전체사회를 위축시키는 것이다. ‘가진 자에게 덤비면 너는 죽는다’는 것을 암암리에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손배가압류를 없애는 부분은 11조 2항(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을 살리는 것이기도 하다”라며 “국가인권위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80%가 비정규직 차별이 심각하다고 했다. 국회가 반드시 손배가압류 제도를 폐기시키는데 앞장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