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고 손배소송 기고문④ 박병우 운영위원] '2019년 9월까지 30억' KEC 노조원 억누르는 손배소

여성기숙사로 몰려온 용역깡패, 그 후 벌어진 일

[손잡고 손배소송 기고문④] '2019년 9월까지 30억' KEC 노조원 억누르는 손배소

박병우 운영위원 기고 

 

 배태선 민주노총 조직실장 편지(출처 손잡고)
▲  배태선 민주노총 조직실장 편지(출처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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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놓여 있는 편지 한 통. 봉투 앞면에 나란히 붙어있는 우표 세 장, 그 위로 빈 자리 없이 찍혀 있는 파란 색 소인에 눌러쓴 손글씨 주소. 멀찌감치 곁눈으로만 봐도 어디에서 온 편지인 줄 짐작한다. 거의 틀림없다. 열이면 아홉 발신지는 다름 아닌 구치소나 교도소다. 공안이 위세를 떨치는 세상을 살다보면 저절로 생겨나는 노하우다. 

아, 배태선 동지 편지구나 싶어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멀리서 물끄러미 편지를 바라본다. 하늘색 수의를 입은 모습이 책상 위 편지와 겹쳤다. 배태선 동지는 지난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를 이유로 1심에서 3년, 항소심에서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춘천 교도소로 이감됐다. 그 자신도 손배소 당사자이기도 하다. 민중총궐기 건으로 경찰로부터 3억8천여만 원의 손배소가 청구됐다. 

이 건이 아니어도 배태선 동지에게 손배소는 매우 익숙하고도 아픈 기억이다. 배 동지는 민주노총 조직실로 오기 전 구미지부에서 활동할 당시 손배소의 고통을 직접 목격했다. 2010년 구미지역 반도체공장 KEC가 파업을 한 노동조합과 조합원 개개인을 상대로 301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손배청구소송을 제기했다. 

 

KEC의 손배소는 7년이 지나도록 1심 선고조차 나지 않다가, 2016년 9월 손배소를 앞세운 사측의 퇴사요구와 막대한 법률비용 등 노동자 개인이 감당 못할 압박이 계속된 끝에 '조정'으로 결론냈다. 3년 안에 30억원을 갚으라는 것이 조정 내용이다. 현재 KEC는 손배 대상자 중 퇴사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버텨낸 조합원 중 해고되지 않은 조합원들의 월급을 압류하고 있다. 

배태선 동지의 편지를 받고난 며칠 후 춘천교도소에서 배태선 동지를 면회했다. 이감되기 얼마 전 최순실이 바로 옆방으로 들어와 세상에 자기가 최순실의 최측근이 될 날이 올 줄 몰랐다며 그렇게 신통방통해 하며 즐거워하던 배 동지도 동료 조합원들의 손배 소식에 깊은 분노와 함께 고개를 떨궜다.

별 문제없이 10년 이상을 화목하게 지내던 노사 관계를 깨고 KEC 사측이 노동탄압을 하게 된 배경이 뭘까. 배태선 동지에게 KEC 손배소 이야기를 들었다. 

KEC의 노조파괴 그리고 손배가압류

 이미경 의원이 9월27일 국정감사에서 폭로한 KEC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 문건 일부(출처 손잡고)
▲  이미경 의원이 9월27일 국정감사에서 폭로한 KEC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 문건 일부(출처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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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선 동지에 따르면, KEC 노조 파괴 배경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2010년 공장 폐쇄 전후로 수차례 '대구경북 지역의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바로 사측이 '구미공단 구조 고도화 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다. 구조고도화는 쉽게 말해 구미공단 일부를 위락 단지로 조성한다는 것이다. 당시 그 지역에 공장을 가지고 있던 KEC가 공장 부지에 호텔 등을 세우기로 계획했다. 

당시 노조는 사측이 공장부지 가격을 획기적으로 올려 몫돈을 쥘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KEC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직결된 사안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실상 사측이 구조고도화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장을 없애야 하고, 공장을 없애려면 반대하는 노조를 무력화해야 하고, 곧 노조파괴 수단을 강구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미 당시 발레오만도, 유성기업 등 창조컨설팅을 통한 노조파괴로 다른 노동조합들도 비슷한 노조파괴 과정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2011년 우려는 현실이 됐다. KEC가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위해 금속노조 탈퇴와 기업별 노조 설립을 계획했다는 문건까지 나왔다. 2011년 9월 27일 열린 대구고용노동청 국정감사에서 이미경 당시 민주당 의원이 해당 내용이 담긴 문건을 공개하며 노조파괴 의혹의 일부가 사실로 드러났는데, 작성자가 KEC 기획조정실로, 작성일이 2011년 2월 24일인 이 문건의 제목은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이다. 

문건 내용은 충격적이다. "파업자의 회사 복귀는 원칙적으로 차단, 전원퇴직 원칙, 자발적 퇴직자 기준 미달일 경우 인력 구조조정 단행, 친 기업 성향의 노동조합 설립 회사 경쟁력 강화 협조체제 구축" 심지어 추진 전략으로 "자발적 퇴직 최대한 역점, 파업자 심리적, 경제적 압박 강화, 복수노조 대비 민주노총 탈퇴 및 기업별 독립노조 설립 추진"을 적시하고 있다. 

이 문건에 따른 노조파괴는 이미 실행되고 있었다. 2010년 6월 새벽, 사측은 예고 없이 여성노동자 기숙사에 용역깡패를 들여보냈다. 내몰린 여성노동자들은 곧바로 노동조합에 연락을 취했다. 노조는 당연히 반발했다. 노조의 반발을 핑계삼아 사측은 공격적인 직장 폐쇄를 단행했다. 공격적인 직장 폐쇄는 명백한 불법이며 대응을 위한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분명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지만, 사측은 이후 벌어진 노조의 점거행위를 이유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다. 

강도 높은 압박에 2010년 10월 협상을 미끼로 노조위원장을 체포하려 한 경찰의 폭거에 한 노동자가 분신 항의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회사는 멈추지 않고, 301억 원이라는 손배소를 청구한다. 나아가 손배소를 빌미로 심리적, 경제적 압박에 들어간 사측은 조합원을 상대로 '퇴사'를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2010년 불법용역투입, 구조고도화 반대 파업 현장(출처 손잡고)
▲  2010년 불법용역투입, 구조고도화 반대 파업 현장(출처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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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과정이 문건 내용 그대로 실행된 것이다. 그리고 사측은 얻고자 하는 결과를 얻었다. 301억에서 이후 156억으로 감액되기는 했으나 7년이라는 1심 재판 기간은 결국 노동자들이 퇴사를 선택하도록 했다. 당시 700여명이던 조합원은 140여명으로 대폭 줄었다. 결국 30억의 손배를 2016년 9월부터 2019년 9월까지 갚기로 하여 2017년 1월 현재 63명의 노동자들이 거의 최저생계비 정도를 제외하고 급여와 상여금 등을 압류당하고 있는 상태다. 

압류 결정에도 버티던 손배 대상자들은 퇴사하는 경우 압류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끝내 일부는 회사를 떠났다. 물론 떠난 이들이 감당한 액수만큼 남은 자들의 몫이 되었다.  

'구조고도화'는 허무하게 없던 일이 됐다. 2016년 말 구미지역 공단구조화 사업에 차질이 생겼고 극히 일부 사업만 진행되어 구미공단 지역의 재개발 사업은 유실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한다. 결국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사업 때문에 그토록 수많은 노동자가 노조파괴와 손배가압류로 고통을 받게 된 것이다.  

더욱 안쓰러운 것은 임금압류가 결정되고 난 후 4개월이 지나서야 재판부가 '노조파괴 문건'에 따른 노조파괴행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냈다는 것이다. 2017년 1월 26일 서울고법 행정6부(재판장 이동원)는 KEC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케이이씨 정리해고는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다. 판단근거는 노조파괴 문건이었다. 

재판부는 "이 문건은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검토하고 계획된 자료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노조파괴 전략이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음을 확인했다. 문건이 세상에 공개된 지 7년째가 되어서야 부당노동행위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그사이 조합원들은 손배소로 고통받았음은 물론, 징계, 해고, 민형사상 처벌 등 온갖 압박수단에 지쳐 회사를 떠났다. 노조파괴의 부당함을 주장하다 2010년, 2012년 징계로 해고된 노동자들은 이 판결의 영향도 받지 못한다. 이 판결은 수년에 걸쳐 고통을 받아온 KEC 노동자들에게는 사후약방문인 셈이다. 

헬조선, 그 칼 끝에 선 노동자들의 절규 '이게 나라냐?'

 301억 원 손배청구의 배경이된 점거파업은 2010년 6월 30일 새벽 1시, 사측이 여성조합원 기숙사로 용역을 강제 침투시킨 것이 발단이 되었다. 사진은 당시 현장 상황(출처 손잡고)
▲  301억 원 손배청구의 배경이된 점거파업은 2010년 6월 30일 새벽 1시, 사측이 여성조합원 기숙사로 용역을 강제 침투시킨 것이 발단이 되었다. 사진은 당시 현장 상황(출처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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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이 나라를 가리켜 헬조선이라 부른 지 벌써 오래다.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든 시민과 노동자들이 벌써 천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그만큼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국민들이 헬조선이라는 뜨거운 기름솥 위를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 아니겠나 싶다. 이미 이 땅은 헬조선 천지가 돼버린 것이다.

약육강식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헬조선은 그 칼끝을 누구보다 노동자에게 먼저 겨눴다. 물론 이 나라 어느 계층을 막론하고 헬조선을 피해갈 수 없지만 헬조선은 노동자들을 가장 쉬운 우선 대상으로 택했다. 결국 순식간에 헌법적 권리인 노동권이 송두리째 무력화돼고 오직 가진 자들만을 위한 지옥이 열린 것이다.  

지난 2009년 1월 용산에서 공권력이 제 나라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용산참사를 시작으로 헬조선은 그 대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국가와 회사가 공모해 쌍용차 노동자들을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 소탕하듯 쓸어버리는 장면을 생중계하며 온 국민을 상대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급기야 때를 만났다는 듯 민주노조 적출 작업에 돌입했다. 

이 작업은 지역으로 보면 대구 경북 지역이 특히 심했는데 지역 특성상 자동차 부품공장이 몰려있는데다 사측 입장에서 노조파괴라는 범죄 행위를 공모할 지역 관료들의 수구적 성향 활용이 용이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분석되기도 한다. 특히 KEC의 경우는 부동산 투기를 위해 노조를 파괴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경우로 반드시 사건을 재조사하여 노동자들의 삶을 제 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최근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의 <적폐청산 특별위원회>(위원장 박래군)은 국가나 회사의 부당한 손배가압류 행위를 반드시 폐지돼야 할 적폐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시킬 손잡고의 <노란봉투법> 제정을 <손잡고>와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이제는 사라져야 할 적폐 중의 적폐, 노동자 다 죽이는 손배가압류 같은 야만적이고 전근대적인 만행은 이제 영원히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 시민모임 손잡고(02-725-4777)는 노동3권에 보장된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손배가압류를 할 수 없도록 막기 위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을 마련했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시민들의 모금으로 만든 법안으로, 손잡고는 20대 국회에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입법청원(https://goo.gl/forms/53SceP1Ts8HrgfXt2)을 기다립니다. 

 

원문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83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