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1.24 뉴스1]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왜 '김'과 '장'을 판매하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왜 '김'과 '장'을 판매하나?

'장기투쟁사업장' 노조 활동 위해 '명절 선물' 판매
재정사업의 한계 '손배소' 문제 해결돼야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김다혜 기자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지난 23일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알바노조'는 설날을 맞이해 지난 한해 동안 노조 활동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보낼 설 선물을 '강정평화상단 협동조합'에서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강정평화상단은 지난 2007년부터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해오던 강정마을 주민들과 그 이전부터 반대 활동을 벌여온 환경단체들과 함께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지난 2013년 조직한 협동조합이다. 

알바노조는 강정평화상단에서 한라봉세트 7개를 구매해 주변에 선물했다. 이가현 알바노조 기획팀장은 "알바노조에 자문을 해주거나 도움을 주시는 분들에게 선물을 드리려고 했는데 이왕 하는 것 서로 돕는 의미가 있겠다는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강정평화상단의 홈페이지에서는(http://savejeju.net) 한라봉과 흑돼지갈비 같은 농·축산물을 비롯해 수산물과 가공품 등 다양한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강정 마을의 평화상단뿐만 아니라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오랫동안 싸움을 이어온 소위 '장기투쟁사업장'에서도 명절을 통해 활동비를 마련하기 위한 '재정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재정사업 포스터© News1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진우3사'(진우공업·정우기업·진우JIS) 소속 노조원들은 2만원짜리 보조배터리를 판매한다. 지난해 4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23명의 직원이 '무급자 대기 발령'을 받은 이후 이어오고 있는 싸움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작년 한해 동안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300명이 10만원씩 모아 생계비를 지원했지만 이마저도 힘들어 작년 12월부터 배터리를 팔기 시작한 것이다.

장진형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 수석부지회장은 "13년간 투쟁해 오면서 철탑투쟁도, 점거투쟁도 있었지만 비정규직과 관련해서는 나아진 것이 없다" 며 "올해 저희가 여태까지 꿈꿔만 왔던 비정규직 철폐를 이룰 수 있는 원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미 아사히글라스 노조 재정사업 포스터© News1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김'과 '장(된장)'을 판매한다. 회사의 법률대리를 맞고 있는 대형 로펌 김앤장을 풍자하기 위한 목적이 담겼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 2015년 5월 직원 170명중 138명이 노조에 가입하고 쟁의를 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해직했다.

공장이 공사를 한다고 하루 쉬라고 하더니 다음날 휴대폰 문자로 해고통보가 날아 왔다. 그리고 현재까지 500일이 넘는 '복직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남아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는 조합원은 23명이다.

김정태 아사히 비정규직 지회 사무장은 설날을 맞이해 새해 소원이 뭐냐고 묻는 말에 "올해는 꼭 현장에 돌아가고 싶다"는 짧은 답만을 남겼다.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 재정사업 포스터© News1

3년째 회사의 해고조치에 반발해 싸우고 있는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도 재정사업의 일환으로 이번 명절 '김'을 판매한다. 

현재 1만5000원 짜리 김세트가 1000개 정도 팔렸다. 수익금은 전부 조합원 생계지원과 노조 사업 자금으로 활용될 계획이다.

"빨리 투쟁이 끝나는 것"이 올해의 바램이라는 변경선 하이디스지회 복지후생국장은 "2년 넘게 투쟁이 이어져 재정적으로 너무 힘들고 조합원들 생계도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기업에 맞서 수년간 싸움을 계속해오는 조직들이 생계 곤란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이런 '재정사업'에 뛰어들었음에도 '장기투쟁'의 본질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어려움의 가장 큰 배경에는 정부와와 기업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손배소)이 있다. 

해군은 지난해 3월28일 제주해군기지 공사 지연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며 서울중앙지법에 강정마을회를 비롯한 5개 단체 120여명에게 270억원에 구상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내용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질 경우 강정 주민들이 배상해야 하는 금액은 34억원에 다다른다. 

하이디스 노조의 경우 회사가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27원 상당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24일 수원지법에서 이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다.

현재 재정사업을 하고 있는 '장기투쟁사업장' 중 손배소에 걸린 사업장은 하이디스 노조 한 곳 뿐이지만 다른 노조들도 언제든 회사로부터 손배소에 걸릴 위험 속에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민주노총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손을잡고)에 따르면 2016년 8월 기준 민주노총 소속 20개 노조에 청구된 손해배상액 총금액은 1521억원에 달한다. 

이 수치는 전국민주노동조합 소속 노조를 사례로 취합한 것으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소속돼있지 않은 노조와 노동자 개인에게 청구된 금액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적게는 수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씩 손해 배상 청구가 걸린 상황에서 노조 조합원들이 가족들과의 즐거운 명절을 꿈꾸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장기투쟁사업장의 경우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는 곳이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재정사업을 하지만 수십억원대의 손배소를 해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노동조합법에서는 노조의 활동이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법원이 판단하기 전에 기업이 손배소를 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어 노조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손배소의 위험을 안고 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조항들 때문에 노조 간부에 취임을 하는 경우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재산부터 정리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이에 윤 활동가는 노조 활동의 불법·합법 여부를 떠나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 3권의 권리가 크게 위축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강병원 더불어 민주당 의원./ 뉴스1 DB

한편 지난 18일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한 손해를 사용자가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노동조합법 개정안' 을 대표 발의했다.

현재 손잡고 등은 2월 내로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지난 19대 국회 당시 비슷한 법안이 여당의 반대에 막혀 통과되지 못했던 점을 봤을 때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내년 명절쯤 손배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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