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노동탄압 '손배가압류'…'노란 봉투'로 맞선다
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갈수록 집요해진 정부·자본의 손배가압류, '노란 봉투법' 개정으로 제동 걸어야
손배청구 1600억원, 가압류 175억원.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행사한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기업과 국가가 청구한 손해배상액이다. CBS노컷뉴스는 손배가압류의 탈을 쓴 '新노동탄압'의 피해를 막기 위해 3차례에 걸쳐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편집자 주]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을 앞둔 2003년 1월 9일 새벽,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는 자신의 일터에서 월급날을 하루 앞두고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목숨을 끊었다.
당시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두산중공업은 2001년 파업과 관련해 노동자 89명에게 총 65억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후 노동자들의 급여와 부동산을 가압류하고 아파트 보증금까지 차압하고 있었다.
두산중공업은 일반 노조원에게 손배가압류를 걸은 첫 기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웠고, 배달호 씨는 '손배가압류'라는 괴물에 맞선 첫 열사로 남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노사분규가 일어나면 경찰이나 '구사대'가 농성장에 대거 투입돼 노동자들을 진압하고, 주동자들은 형사처벌 받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여론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이 노동자 탄압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1997년 노동법 날치기와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손배가압류는 노조 탄압이라는 '채찍'이자 노조원 회유라는 '당근'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 '손배가압류'는 다시금 진화했다. 손잡고 윤지선 활동가는 ▲ 물리적 피해에서 정신적 피해로 ▲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 단순 급여 압류에서 전세보증금까지로 등 3가지 경향을 꼽았다.
윤 활동가는 "하이디스 노조 사례처럼 모욕이나 명예훼손으로, 혹은 현수막 문구가 불만스럽다며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고 손배소를 제기하기도 한다'며 "손해를 측정하기 어려우니 청구하는 배상금액도 쉽게 부풀려진다"고 설명했다.
또 "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 등 취약계층을 상대로 한 손배청구도 늘어나고 있다"면서 "아울러 급여나 부동산만 압류하던 수준을 넘어 전셋집 보증금까지 마구잡이로 가압류를 걸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손배소가 노동탄압의 주무기로 자리잡은 가운데 보호망이 되어야 할 정부는 오히려 앞장서서 노동자들에게 거액의 손배소를 제기하고 있다.
6년여에 걸친 투쟁을 마치고 지난해 사측과 합의해 복직을 준비하던 쌍용차 해고자들은 지난 10일 광화문 광장 노숙농성에 돌입한 이유도 정부 때문이다.
경찰은 2009년 대량해고에 반대한 공장 옥쇄파업을 진행하면서 장비가 파손됐다는 등의 이유로 쌍용차 노조와 조합원을 상대로 42억 원의 손해배상과 8억 9천만 원의 가압류를 청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동자들을 향한 대규모 손배소 남발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동떨어진 '적폐'다. 대부분의 OECD 선진국들은 노조 쟁의는 아예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지도 않고. 민사상 손배소도 불가능하거나 사문화된 지 오래다.
금속노조 법률원 송영섭 변호사는 "선진국은 노조의 권리로 쟁의 행위가 사회적 승인이 되고 법적으로도 인정받는다"며 "쟁의 행위를 불법으로 보고 개인이나 신원보증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묻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영국의 경우 노조가 불법 쟁의를 일으켜도 권리 보장 차원에서 조합원수를 기준으로 손배청구 상한선을 둬서 과도한 손배소는 법으로 금지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한국 역시 헌법에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노조의 권리를 보장할 노동법이 오히려 노조의 발목을 잡고 있다.
법원은 노동조합법 제3조, 즉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조항에서 '이 법에 의한'에 주목해 판결을 내린다.
즉 노조 쟁의행위에 불법 요소가 보이면 손배 청구대상이 되고, 불법 쟁의가 의심만 되도 가압류를 인정하는 식이다.
이에 대해 지난 17일 야3당과 양대노총 노동계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해결하기 위한 '노란봉투법'의 입법을 촉구했다.
노란봉투법의 모태인 '노란봉투' 캠페인은 2014년 주부 배춘환씨가 한 시사주간지에 4만 7천원이 든 노란 봉투를 보내며 시작했다.
당시 파업으로 47억여원의 손배 판결을 받았던 쌍용차 해고자들을 돕자는 제안이었고, 가수 이효리 씨가 이 캠페인에 공개적으로 참여하면서 세간에 널리 퍼지기도 했다.
이후 '노란봉투' 캠페인은 쌍용차 노사가 합의한 뒤 '노란봉투법' 입법 추진 운동 등으로 가지를 펼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으로 결실을 맺었다.
노란봉투법 개정안에는 ▲ 평화적인 노동쟁의에 대한 손배소 청구를 막고 ▲ 노동자 개인, 신용보증인에게 손배 책임을 묻지 않으며 ▲ 손배 청구 금액에도 상한선을 두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노란봉투법은 이미 19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새누리당의 거센 반대로 상임위에서 한 차례 논의된 뒤 곧 폐기됐다.
노동계는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 결집된 '세상을 바꾸자'는 시민들의 힘으로 손배가압류의 고리도 끊겠다는 계획이다.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도 '포스트(post) 박근혜' 시대의 주요 과제로 손배가압류 문제를 다룬다.
비상국민행동의 적폐청산특위 박래군 위원장은 "적폐청산특위도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주요 개혁 과제로 검토 중"이라며 "다음 주 안으로 이를 포함한 주요 민생 과제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 시민모임 손잡고(02-725-4777)는 노동3권에 보장된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손배가압류를 할 수 없도록 막기위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을 마련했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시민들의 모금으로 만든 법안으로, 손잡고는 20대 국회에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입법청원(https://goo.gl/forms/53SceP1Ts8HrgfXt2)을 기다립니다.
원문보기:
http://www.nocutnews.co.kr/news/4720289#csidx2f2b13849d44d9c90d85159ce045d2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