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고 손배소송 기고문③ 이남신 운영위원] '가짜사장' 전성시대, '불법'의 온상이 된 대기업들

[17.01.19 오마이뉴스 게재]

'가짜사장' 전성시대, '불법'의 온상이 된 대기업들

[손잡고 손배소송 기고문③] 손배가압류로 돌아온 대법원 현대차 하청노동자 승소 판결

이남신 운영위원 기고

 

'철탑농성' 최병승씨 현대차에 8억 임금소송 승소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96일 동안 '철탑농성'을 벌였던 최병승 씨가 3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장하나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정창근 부장판사)는 이날 최씨가 현대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현대차는 최씨에게 밀린 임금 8억4천58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br />
▲ '철탑농성' 최병승씨 현대차에 8억 임금소송 승소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96일 동안 '철탑농성'을 벌였던 최병승씨가 지난 2013년 10월 3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장하나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정창근 부장판사)는 이날 최씨가 현대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현대차는 최씨에게 밀린 임금 8억4천58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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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건 247여억 원. 90억, 10억, 10억, 20억, 2억, 70억, 10억, 3억, 2억, 1억, 10억, 11억 등.

쟁의행위를 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노조, 그리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에 연대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현대자동차가 청구한 손배청구액이다. 90억에서 수천만원까지 줄지어선 숫자를 보고 있노라면 일확천금을 노린 노름판 판돈 같다. 

무엇보다 손배가 청구되고 늘어난 시점이 맘에 툭 걸린다. 공교롭게도 대법원이 고심 끝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이후인 2011년부터다. 따지고 보면 사내하청은 현대자동차가 직접고용해야 할 정규직이라는 최종심인 대법원 판결대로 이행됐다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자동차 원하청 자본의 불법행위로 밝혀진 만큼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그간의 피해를 보상받고 정규직화되면 그만이었다. 간난신고 끝에 정규직화 꽃길을 눈앞에 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도리어 구속과 해고, 손배가압류라는 형극의 길로 내몰린 건 어처구니없는 반전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승소로 범법자가 된 최병승씨
ad2012년 2월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가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최병승씨는 현대차 정규직'이라고 판정했다. 오랫동안 논란이 거듭된 완성차 사내하청에 대해 처음으로 블법파견을 인정한 역사적인 판결이었다. 최병승씨가 노조 활동으로 부당해고돼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한 2005년 5월부터 중앙노동위원회,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 7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였다. 

2심까지 패소했으므로 대법원에서도 질 거라 예상하고 자포자기하고 있었던 최병승씨와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복음이었다. 완성차 제조업에서 만연해온 불법파견을 바로잡을 결정적인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비정규노조를 만들어 악전고투하며 싸워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였으므로 의미가 자못 컸다.

하지만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을 묵살했다. 대법원 판결대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는 신규채용이란 편법으로 대응했다. 현행범인 사측이 칼자루를 쥐고 정규직 대상자를 선별하는 방식이 돼버린 것이다. 

더구나 불법파견 판결을 있게 한 노조활동이 정규직화 대상 선정에선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현대차는 집요하게 최병승 개인의 정규직화 승소일 뿐 사내하청 고용형태 일반의 불법파견은 아니라고 맞섰다. 이런 노골적인 적반하장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분기했고 즉각 사내하청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정규직화 승소 당사자인 최병승씨도 사내하청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지난 2012년 10월 17일부터 2013년 8월 8일까지 296일 동안 현대차 울산공장 앞 송전탑 고공농성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사측이 최병승씨를 정규직으로 인사발령했지만 최씨는 이를 거부했다. 

단협이 아닌 취업규칙에 따른 신규채용 형태의 정규직화는 대법원 판결을 거스르는 것이었기에 받아들일 수 없었던 최씨는 사측에 사내하청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했다. 오랜 투쟁 끝에 결국 최병승씨는 2016년 12월 15일부로 징계해고됐다. 최초의 대법원 승소자인 최병승씨의 처지가 이제껏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걸어온 가시밭길의 축소판에 다름아니다. 현대차는 집요하고 조직적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권익과 함께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시켰다.

 
손배가압류로 되돌아 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요구
 댑버판결에 따른 정규직 전환과 회사측의 신규채용 중단을 요구하며 현대차 비정규직 최병승씨와 천의봉씨가 지난 2012년 말 현대차 울산공장 앞 송전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최병승씨는 비정규직의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이 연기된 과정에 대해 현대차 정규직노조의 해명을 요구했다.,
▲  댑버판결에 따른 정규직 전환과 회사측의 신규채용 중단을 요구하며 현대차 비정규직 최병승씨와 천의봉씨가 지난 2012년 말 현대차 울산공장 앞 송전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최병승씨는 비정규직의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이 연기된 과정에 대해 현대차 정규직노조의 해명을 요구했다.
ⓒ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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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은 현대자동차 담벼락을 넘지 못했다. 대법원 판결 이행을 요구하는 투쟁과정에서 무시로 손배가압류가 발생했다. 불법을 시정해 정규직화를 이행하라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가 손배가압류로 되돌아왔다. 피해당사자가 다시 피해를 입은 것이다. 해를 거듭해 천문학적 액수로 불어난 사측의 손해배상청구액 앞에서 대다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신규채용 압박에 굴복했다. 최병승씨의 얘기다.

"조합원 입장에선 확실하게 법률적으로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손배를 털기 위해선 내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현실인 거죠. 손배가압류가 걸리면 현실에서 생활상의 어려움이나 고통도 크지만 그보다  내 가치나 모든 것을 해볼 수 없게 만드는 정신적 고통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포기하게 만드는 게 손배가압류의 가장 결정적인 폐해라고 생각해요. 조합원들까지 손배를 걸어버리니까 손배에 대한 두려움이 대단히 큰데 노조가 그걸 해결할 길은 보이지 않으니까 결국 내가 노조활동 안 할 테니 빼달라 그래서 내부 갈등들이 커지기도 하고. 노조 탈퇴도 정규직화 전망이 없어서가 아니고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그 고통 줄이려고 선택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노조가 약해져 회사가 노조와 협의할 일 없고 그럼 장기화되고 또 노조는 고강도투쟁을 할 수밖에 없고 악순환이 되는 거죠. 비정규 투쟁은 왜 그렇게 처절해야 되냐 묻지만 도리가 없거든요. 투쟁하자마자 업체 폐업하거나 손배가압류 때려버리니까. 손배가압류 때문에 한 사람씩 떨어져나가고 남은 사람에겐 더 큰 부담이 지워지는 게 현실이니까요."

더 기막힌 건 회사측이 노조 탄압 수단으로 손배가압류를 악용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개개인은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온 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다.

"실제로는 사측이 손배를 집행하기 위한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거라고 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인지대만 해도 장난이 아니거든요. 대법원까지 가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이라 돈이 없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는 거죠. 차라리 금속노조를 걸면 대응하기도 수월한데 금속노조는 안 걸고 단위노조만 거니까 더 어려운 거죠. "

심지어 2015년 법원은 최병승씨에게 업무방해 방조죄란 해괴망측한 죄목을 덧씌우기도 했다. 업무방해 혐의는 없지만 비정규노조의 상징적 인물로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였다. 현대차가 이렇게 무리하게 업무방해 방조라는 얼토당토않는 혐의를 만들어낸 건 최병승씨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대법원 승소자 최병승씨는 최초의 정규직 전환자가 되기는커녕 사측의 대법원 판결 무력화와 손배가압류의 덫에 갇혀 해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의 발단은 구두선이 되고 만 헌법과 대법원 판결이다. 노동3권을 명시한 헌법 33조가 우선 문제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노동자가 된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이니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응당 노조를 만들어 사용주와 교섭할 수 있다 여겨 그대로 했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사내하청 전원 정규직화하라고 요구하며 파업했다. 그 결과 되돌아온 건 구속과 해고, 손배가압류였다. 헌법과 대법원이 재벌 사업장에서 옴쭉달싹하지 못하고 숨죽인 꼴이다.

 
우리의 요구, 진짜 사장이 책임져라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앞두고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앞두고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 윤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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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현재 한국 사회 노동시장은 '가짜사장' 전성시대다. 삼성·현대·SK·LG를 필두로 한 거대 재벌 대기업군에서부터 지방 공단의 중소영세 공장에까지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이 판치고 있다.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 아래 파견·도급·용역·사내하청·사외하청·소사장·민간위탁 등 다양한 양태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법적 책임을 노골적이고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중간착취를 통해 자기 배를 불리는 가장 나쁜 자본주의의 폐해가 사회적 책무가 가장 큰 대기업들에서부터 확대 재생산돼 왔다. 

그나마 공공부문은 상시지속 업무를 기준으로 무기계약직 수준 이상의 정규직화가 대세로 확산되고 있는 반면, 민간부문은 오히려 역주행으로 치달아 업종과 규모를 막론하고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비롯한 나쁜 일자리가 양산돼 왔다.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경제주체인 재벌대기업의 실상이다. 불법의 온상이 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이 대표적인 사례다.

돌이켜 보면 1997~98년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한국의 노동시장은 양극화와 하향평준화로 치달았다. 민주개혁 정부 10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을 통틀어 기본적으로 친기업적인 노동정책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지체된 채 한국 사회는 가장 나쁜 형태의 격차사회로 전락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내외로 고착된 조건 속에서 비정규직 양산과 차별 심화·확대가 가속화했다. 

특히 1998년 제정돼 2000년부터 시행된 파견법은 근로기준법에서 금지한 중간착취, 즉 사람장사를 허용하는 악법이었다. 비정규직 규모가 1천만명을 넘기는 건 시간 문제였다. 이런 조건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은 대표적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이었고 대법원 판결 승소를 이끌어냈지만, 현대차 재벌 자본의 서슬퍼런 위력 앞에서 도리어 고통받고 있다.

작년 4월 총선을 통한 여소야대 국회 성립은 정세 반전의 계기를 제공했다. 친재벌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으로 인해 유실됐던 비정규직 권익보장을 위한 입법대책이 다시 주요 정치적 의제로 부각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도 예기치 못한 촛불항쟁이 들불처럼 번지며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권력사유화의 백태를 보여 주며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고 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이 재벌이라는 것도 드러났다.

장안에 화제가 된 영화 <내부자들>을 보면 현실과 똑같아 혀를 내두르는 장면이 여럿이다. 그중 미래자동차(현대자동차가 금방 떠오르는 이름) 회장에게 국회의원이 비정규직 관련 입법 걱정하지 마라고 아부하는 모습에서 현기증이 일었다. 뿌리산업 파견 확대를 통해 온갖 불법적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양성화하고 합법화하려 한 정부와 새누리당의 행태와 흡사하기 때문이었다. 지난 몇 년간 진짜 사장이 나와 책임지라는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이제 진짜 사장이 책임지게 해야 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재벌 오너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원청사용주가 온당한 책임을 질 때 부당한 비정규직 노동3권 유린과 무차별 손배가압류도 막을 수 있다.

 
"실질적인 교섭권 보장이 관건이에요"

"결국 교섭권 문제죠. 교섭을 진짜 사장하고 할 수가 없어요. 원청과의 교섭을 어떤 방식으로 할수 있을지 그걸 어떻게 제도로 만들지가 관건이죠. 노조 만들어도 업체를 폐업해버리면 교섭이 막혀버리니까. 쟁의행위 들어가면 원청 대체인력 투입으로 파업 무력화시켜버리고. 실질적인 교섭권 보장이 관건이에요. 원청사용자성 인정 전에라도 직접교섭이 가능해야 그 이후 발생하는 손배가압류와 여러 피해도 막을 수 있어요. "(최병승씨 인터뷰 내용)

지금도 한 차례 연기돼 2월 10일로 미뤄진 현대차와 기아차 사내하청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판결을 앞두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서울 교대역 인근 법원과 검찰청 사이 인도에서 한파를 무릅쓰고 무기한 노숙농성을 진행중이다. 건강이 상한 비정규 해고노동자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풍찬노숙하고 있다. 대표적인 노동 적폐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양산과 손배가압류 문제가 해결돼 일터에서 쫓겨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하루빨리 복귀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시민모임 손잡고(02-725-4777)는 노동3권에 보장된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손배가압류를 할 수 없도록 막기 위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을 마련했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시민들의 모금으로 만든 법안으로, 손잡고는 20대 국회에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입법청원(https://goo.gl/forms/53SceP1Ts8HrgfXt2)을 기다립니다.

 

원문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8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