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2.27 오마이뉴스게재]
"고공농성 직후 끌려가... 형사, 병원에도 들이닥쳐"
[손잡고 손배소송 기고문②]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 한규협씨를 만나다
2015년 6월 11일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대의원), 한규협(같은 분회 정책부장)씨는 기아차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전광판 위로 올라갔다.
▲ 고공농성 당시 최정명, 한규협씨 | |
ⓒ 최정명 |
가림막도 없는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최정명, 한규협씨는 고공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해고와 소송이었다. 최정명, 한규협씨가 전광판 위에 있던 2015년 8월 회사는 최정명, 한규협씨를 해고했다. 이어 전광판 업체는 최정명·한규협씨, 양경수 전 분회장에게 5억7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최정명·한규협씨는 2016년 6월 8일 고공농성 363일 만에 땅을 밟았다. 땅을 밟은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이들은 그사이 어떻게 지냈을까. 불법파견 문제는 해결된 것일까. 고공농성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12월 20일 오후 7시 최정명, 한규협씨가 근무했던 기아차 화성공장으로 찾아갔다.
기아차 사무실에서 나오는 최정명·한규협씨에게 "일 끝내고 나오시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최정명씨는 "우리 해고자인데요. 대의원대회가 있어서 들렀어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사무실에서 나오는 최정명·한규협씨를 보고 복직된 것으로 착각했다. 그만큼 고공농성 그 이후의 소식은 뜸했다. 결국 근처 찻집으로 이동해서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내려오자마자 수갑 채워지고 병원에서도 경찰 조사
- 2016년 6월 8일 당시의 상황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다. 무사히 내려와서 가족과 동료들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진에서는 수갑을 차고 있더라.
최 : "내려오면 가족들과 인사하고 간단히 발언도 하고 녹색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기로 경찰과 사전 조율이 되었다고, 노조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내려오자마자 바로 수갑을 채우더니 형사 5~6명이 둘러쌌어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던 문 대신 다른 문 쪽으로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어요. 경찰이 죄명을 나열했는데 경황이 없어서 기억은 잘 안 나요. 체포영장을 집행하겠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는 바로 경찰 측 응급차에 실렸죠. 사람들이 항의하니까 그제야 한규협 동지는 변호사와 동석해서 병원 차에 탔어요."
▲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전원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서울 중구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최정명·한규협씨가 농성시작 363일만인 지난 6월 8일 오후 농성을 풀고 지상으로 내려온 가운데 경찰이 농성자 중 한 명인 한규협씨를 구급차에 태우기 위해 강제로 끌고 가고 있다. | |
ⓒ 최윤석 |
- 당시 건강 상태는?
최 : "전광판 위에 있을 때는 둘만 있다 보니 우리의 건강이 어떤지 잘 몰랐어요. 다만 고지혈증 수치가 높아서 고공농성을 하면서도 계속 약을 먹었어요. 한규협 동지도 계속 고혈압 약을 먹었고요. 일단 땅에 발을 딛으니까 아주 딱딱한 느낌이 들었어요. 현기증이 생기고, 계단을 못 내려가겠더라고요. 적응이 잘 안 되었어요. 멍한 상태였어요. 그리고는 곧바로 병원에 두 달 동안 입원해 있었어요."
한 : "입원해서 한 달 동안은 컨디션도 회복되고 몸도 좋아지는 것 같다가 한 달째부터 몸이 오히려 안 좋아졌어요. 퇴원하기 직전 일주일 동안은 해열제와 링거를 맞고 누워 있었어요. 우리 둘 다 그랬어요. 심리적인 변화가 커서 그랬던 것 같아요. 긴장이 풀리면서 몸도 적응해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계속 약을 먹고 있어요. 최정명 동지는 우울증 약도 드시고 있고."
최 : "원래 낙천적인 성격이라 우울증이 없었는데 내려오니까 심리 상태가 정상이 아니더라고요. 너무 억울하고 분한 거예요. 결론을 못 내리고 내려오니까 미안함도 있고. 하늘(고공농성장)에서 있었던 그 긴 시간이 너무 아픈 거예요. 그리고 여전히 현대기아차 재벌들은 아무렇지 않고, 고공농성 이후에 교섭이 진행되었는데 진척은 없고,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화가 났어요. 주체가 안 되더라고요. 밤에 잠을 못 자요. 낮에는 기력도 달리고 계속 약물이 주입되다 보니까 나른한 상태고. 그래서 밤에라도 잘 자야 하는데 밤에는 치미는 울분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새벽 한 시나 되면 밖에 나가서 담배도 한 대 피우게 되더라고요."
▲ 고공농성 해제 후 병원에서 검사를 기다리는 한규협(왼쪽), 최정명(오른쪽)씨 | |
ⓒ 양경수 |
- 병원에서는 어떻게 생활했는지.
최 : "내려온 당일 동부시립병원 응급실에서 급한 진료만 받고 저녁에 녹색병원으로 갔는데 형사들이 들어왔죠. 우리가 6층에 있었는데 거기까지 형사들이 몸싸움을 해서 올라왔죠. 6층은 격리병동이라서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말이에요.
그것 때문에 병원장, 사무장, 병원 관계자들과 형사들이 한바탕했어요. 형사들은 조사한다고 버티고 있고, 연행하겠다고 하고. 병원 측에서 항의하니까 경찰들이 사과는 했다고 하는데, 형사들이 조를 짜서 병원 입구에서 계속 지키고 있었어요. 우리 몸 상태가 도주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는데요. 며칠 동안 계속 그런 상태가 유지되었어요. 그러면서 우리는 병실에 누워있고, 형사들이 탁자를 가지고 와서 병실에서 조사를 했죠."
고공농성에 집시법 위반 등으로 구속영장, 손배 판결로 경매까지 넘어가
한 :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48시간 내에 구속영장을 신청해야 하는데, 우리가 몸이 안 좋아서 격리병동에 입원해 있으니까 구속영장 청구는 뒤로 미룬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면서 병원에서는 일단 신상정보에 관해서만 간단하게 조사를 받은 거예요. 범죄 사실에 관해서는 퇴원한 후에 경찰서 가서 추가 조사받았고요."
- 경찰에서 무슨 죄로 조사를 한 건가.
한 : "건조물 침입, 업무방해, 재물손괴. 그리고 집시법 위반도 이야기했어요. 둘이 올라가서 똑같이 구호를 외쳤다고 집시법 위반이라고 하더라고요. 추가 조사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는 들었는데 아직까지는 소식이 없네요."
최 :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는데 형사가 사진들을 제시하더라고요. 아마도 부근 빌딩 높은 데에서 망원렌즈로 당겨서 우리를 찍은 것 같아요. '같은 장소에 두 사람이 같이 서 있고, 구호를 외쳤고, 연설도 했고 노래도 불렀다. 그러니까 집회다' 이러는 거예요."
검찰은 9월 초 한규협, 최정명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에 지금까지 어떻게 생활했는지.
최 : "병원 퇴원하고 나서 잠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해고자 복직 싸움을 하기 위해 다시 매일 현장에 나왔어요. 그런데 사측에서는 출입부터 통제하더라고요. '해고자가 왜 들어오느냐' 이거죠. 노조에 연락하고 조합 간부들이 데리러 와야 공장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에요. 생계 문제도 많이 물으시는데, 노조의 신분보장기금에서 생계비 지원 부분은 논의는 되었는데 결론이 안 나서 아직까지 생계비는 따로 받는 게 없어요. 지금은 조합원들이 모금하거나 명절 다가오면 물품 판매를 해서 때마다 보충을 해 주는 상황이에요."
한 : "생계비는 아내가 벌어서 해결하고 있어요."
▲ 손해배상의 원인이 된 전광판 고공농성, 이 고공농성으로 당사자인 최정명, 한규협과 당시 분회장 양경수가 전광판주 명보애드넷이 제기한 5억 7천여만 원의 손해배상소송에서 1심 패소한다. | |
ⓒ 윤지선 |
- 고공농성을 하는 동안 전광판업체가 두 분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서 판결까지 나지 않았나. 그건 어떻게 되었는지.
최 : "우리 둘, 그리고 양경수 전 분회장까지 세 명이 이자까지 포함해서 5억7천여만 원 손해배상 하라고 판결이 났고, 이미 집행을 한 상황이에요. 양경수 전 분회장은 매달 받는 급여 중에 150만 원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손해배상금으로 빠져나갔고요.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수많은 손배소송, 가압류를 당하지만 실제 경매까지 가는 경우는 없어요. 노동자들 살림살이, 세간이 얼마나 하겠어요.
저 같은 경우는 집에 있는 가전, 가구마다 압류 딱지 붙이고 나서 추산한 금액이 128만 원 정도 되었고, 배우자 재산 부분 빠지고 나니까 실제로는 70만 원 정도 되었어요. 그게 뭐, 큰돈이 되겠어요. 그런데도 경매까지 이뤄졌어요. 경매 당일 법원에서 사람들이 집에 왔고, 집에서 경매가 진행되었어요. 당사자는 있으면 안 된다고 하고, 차마 아이들한테 그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서 저는 아이들이랑 밖에 나가 있었어요. 아내가 경매에 참여해서 70만 원 내고 다시 세간을 샀고요. 세 집 다 그렇게 했어요. 전례가 없는 경우죠. 개인적으로는 보복이라고 생각해요. 심리적인 압박까지 줘서 고통스럽게 하려고 작심을 한 것 같아요."
한 : "최정명 동지는 본인 명의의 자동차에도 압류가 걸려 있어요. 우리 명의의 금융 계좌에는 모두 압류가 걸려 있어서 금융 거래를 할 수가 없어요."
최 : "그래서 지난번에 손잡고에서 토론회 하면서 토론비를 보내주겠다고 본인 명의의 통장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는데 알려 주지 못했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사람들이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통장으로 돈을 보내줬는데... 다 뺏겼어요. (웃음)"
기아차는 여전히 불법파견 불인정, 사내하청 노동자 일부만 정규직 전환 시도
- 그럼 세 명이 계속 이런 식으로 5억7천만 원을 갚아나가야 하는 건가. 개인적으로 책임지기에는 너무 가혹한 것 같은데, 관련해서 노조에서는 어떤 입장인가.
한 : "원래는 불법파견에 대해 교섭을 하면서 우리의 손배 문제나 복직 문제를 같이 풀어보겠다고 지부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우리의 복직 문제는 불법파견과는 별개로 임금에 대해 단체교섭을 하면서 구두로 합의했다고 통보를 받았어요.
우리는 불법파견 문제를 풀기 위해 고공농성을 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파견 문제와 별개로 복직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의견을 낸 상황이에요. 불법파견에 관해서는 기아차에서 화성공장 600명, 소화리·광주공장 449명 정규직 특별 채용하겠다고 안을 내놓았어요. 소화리지회에서는 안을 받아들였지만, 화성지회에서는 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요. 그러면서 손배 이야기도 쏙 들어간 상황이에요."
최 : "기아차에서는 더 이상 재교섭 없다고 하다가 우리가 현장 복귀할 때 즈음에 재교섭이 시작되었어요. 그러면서 회사가 1049명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안을 내놓았는데, 그 역시 전체 비정규직 중 4분의 1만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청 노동자들을 전환 배치해서 법망을 빠져나가겠다는 취지라서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요.
그래서 현장 순회하면서 '우리가 이러려고 고공농성 한 것 아니다. 싸우자. 싸워야 한다. 회사는 항상 마지막 안이라고 이야기한다.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투쟁을 통해 정당한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지금 사측의 안은 기만적인 안이다'라고 설명하면서 집회하고 있어요. 그리고 내년 6월 내에는 우리 둘을 복직시키겠다는 노사 간 구두 합의가 있었다는데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죠. 그래서 오늘(12월 20일)도 대의원대회에 가서 해고자 복직, 손배가압류 철회를 강조하고 왔어요. 기아차에는 계속 재교섭을 요구하고 있는데 일단 사측은 재교섭은 없다는 방침이에요."
한 :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기아차가 법원 판결과 달리 특별 채용 형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선별해서 채용하려 한다는 것이에요. 법원 판결의 취지는 기아차가 사용자이므로 사용자로서 근로계약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의무가 있는, 책임을 져야 할 기아차가 특별 채용이라는 형식으로 '권한'을 행사하려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근속연수도 마음대로 줄이고요. 선별 채용을 하게 되면 결국 정규직이 못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다른 업체, 다른 공정으로 가서 일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상황도 발생하죠. 고공농성 하기 전보다 사측이 제시한 정규직 전환 인원 수만 조금 늘었다 뿐이지, 바뀐 게 없는 상황이라서 답답한 심정이에요."
▲ 한규협씨 | |
ⓒ 윤지영 |
- 사실 선별해서 채용하게 되면 결국 노조 간부나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채용을 안 할 가능성이 매우 크지 않나. 그러면 근로자 지위확인소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회사에서 항소한 지 2년이 지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 : "내년 1월 13일에 항소심 선고가 예정되어 있어요. 1심처럼 결과가 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고, 기아차도 그렇게 예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판결 선고가 늦게 나기만을 계속 바라는 것 같아요. 시간을 끌면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지치게 하고 그러면서 일부만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문제를 덮으려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한 : "그런데 그것 말고도 걸린 소송이 많아요. 예전에 순회 파업했던 것도 6천만 원 정도 손배 판결이 나서 현재 대법원에 가 있고요. 집시법 위반 건, 고소 고발 건 등 해서 조합원들도 계속 조사받고 있고 양경수 분회장은 14건 정도 걸려 있어요."
- 가족들은 어떤 상태인가.
한 : "저는 아이가 셋인데 두 아이는 성년이라 걱정을 안 했는데 막내가 걱정이었어요.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낯도 가렸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다들 잘 버텨 주었어요. 가족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 다들 감수하겠다는 마음이에요. 저를 원망하지 않아서 고마울 따름이죠. 이해해 주고, 살갑게 대해 주고, 상처 받을까 봐 신경 쓰는 게 보여요.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최 : "일부러 덤덤한 척 해줘요. 이전과 달리 아내가 잔소리를 안 해요. 하하하. 큰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한규협 동지도, 저도 공장 부근에 방을 얻어서 주중에는 여기서 생활하고 주말에만 집에 가는데, 요즘은 박근혜 때문에 주말에도 집회에 가다 보니 많이 섭섭해해요. 하하. 집에 가면 꼭 끌어안고 자요."
▲ 최정명씨 | |
ⓒ 윤지영 |
싸움 끝나지 않았다, 고공농성은 기아차 비정규직만을 위한 것 아니야
-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최 : "내려왔을 때, 다들 한 말이 '무사히 내려와서 다행'이라는 것이었어요. 비록 우리 요구만큼 이루어진 것은 없지만 투쟁의 불씨를 살렸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공감하고 있어요. 현장의 동지들도 반갑게 맞이하고, 왜 싸워야 하는지 이야기하면 귀 기울여 들어주고 그래요. 미안해하면서 빨리 복직되기를 바라죠. 또 한 번 승부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올라갔을 때의 마음이나 지금의 마음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요. 다만 고공농성을 하면서 끝판까지 갔다 왔잖아요. 그랬더니 무서운 게 없어졌어요. 우리가 고통을 당한 만큼 강해졌다고 생각해요. 탄압이 있었지만 그만큼 단단해졌어요."
한 : "담담해요. 잃을 게 없으니까 좀 더 확실해진 것이 있고. 예상했던 것보다 고비가 많았지만 그래도 팔부능선 정도는 넘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가 중요하죠.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지요."
- 끝으로 한 말씀 부탁한다.
한 : "많은 사업장에서 파견법 문제, 비정규직 문제, 손배가압류 문제가 발생하잖아요. 개별 사업장들의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좀 더 구조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와 별도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한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농성할 때도 그렇고 내내 감사했어요. 그런데 아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다 보니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현대기아차의 비정규직 문제를 꼭 승리로 이끌 테니 장기투쟁하시는 분들 기운 내서 투쟁하시길 바랍니다."
최 : "박근혜 게이트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핵심은 재벌 문제라고 생각해요. 결국 재벌은 법도 안 지키고 이익만 취하면서 정경유착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희생당하고 고통을 겪죠. 정치권이든 시민사회든 노동계든 큰 담론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벌에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정치적·법률적·사회적으로 어떻게 책임을 물을지, 그래서 사회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해요. 당장에는 답도 없고 답답하지만 반드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국면은 다시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들 희망을 가지고 투쟁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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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규협(왼쪽), 최정명(오른쪽)씨 | |
ⓒ 윤지영 |
원문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4164&CMPT_CD=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