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내놔라'... 크리스마스 이브의 악몽
100억 손배소 '협박'에 동료를 잃은 지 7달... 현실이 된 손배가압류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뭐라도 했어요. 열사투쟁을 하고, 사장이 있는 대만까지 원정을 가고, 거리농성을 하고, 생존이 걸린 문제니 당연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는데, 그 결과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그리고 손배소 26억 원, 부동산 임대보증금에 통장까지 조합원들 가압류 금액이 30억 원입니다. 대체 뭘 그렇게 잘못한 건가요?"
듣기만 해도 숨이 가빠오는 이야기, 바로 한 회사에서 12년간 벌어진 일이다. 공장 안에서 나, 내 동료, 그리고 가족을 지키려 최선을 다했던 노동자가 겪고 있는 삶의 일부다. 누구나 겪는 일이 아닌,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노동권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 바로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및 가압류이다. 그 손배가압류 때문에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를 악몽으로 보낸 노동자, 금속노조 하이디스 지회의 이상목 지회장을 만났다.
▲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 이상목 지회장(오른쪽) | |
ⓒ 하이디스지회 |
2015년 12월 24일, 이상목 지회장의 부동산과 통장에 대한 가압류 신청이 접수됐다. 3억6천8백여만 원에 달한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2016년 새해에도 계속됐다. 2016년 1월 4일, 또다시 4억 원의 부동산과 통장 가압류 신청이 접수됐다. 손해배상청구한 지 한 달 만에 가압류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회장 외에도 7명이 통장과 부동산을 가압류당했는데, 가압류 최고 청구액이 11억8천8백여만 원이다.
"숫자만 놓고 보니 부자같죠?(웃음) 다른 조합원들은 예상치 못한 경우도 있지만 저는 손해배상이 청구됐을 때 어느 정도 예상을 했어요. 손배가압류로 노동자들 힘들게 한다는 얘기를 들었으니까."
2016년을 살아가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제대로 권리를 행사하려면 가진 것을 모두 내놓아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사측의 손배가압류 횡포, 특히 청구금액이 얼마든, 청구취지나 금액 산정이 타당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청구하는 족족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주는 사법부 때문이다. 더욱이 '공탁금만 걸면 무조건 걸 수 있다'는 가압류의 위력 앞에 가진 것 없는 노동자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저는 가진 것도 많지 않았어요. 게다가 25억 원(손배청구액)은 만져본 적도 없고, 평생 벌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으니 뜬구름 같았죠."
부인 명의의 전세금까지 가압류
그러나 이상목 지회장에게도 작년의 가압류는 큰 충격이었다. 부인 명의의 전셋집 보증금이 가압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잘못했다고 지목된 대상은 전데 부인 앞으로 된 전세금을 두고 가압류 대상이라고 돌려주지 말라고 집주인에 이야기했다는 거예요. 기가 막혔죠. 게다가 전세 보증금까지 가압류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다행히도 집주인이 재계약을 맺어주어 온 식구가 거리로 나앉는 불상사는 면했습니다."
이상목 지회장은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아들 셋을 둔 아버지다. 이상목 지회장은 "아빠가 해고자라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내심 연말 연초에 불안한 상황을 보여준 데 대해 속상하고 미안한 마음이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더 앞선다.
"큰 애는 고등학교 2학년이고 내년에 고3이 돼요. 둘째도 중학교 2학년이고, 한창 부모 지원이 많이 필요하고 교육비나 비용이 많이 드는 시기인데... 많이 미안하죠,"
그에게 청구된 손해배상 건은 총 세 건이다. 업무방해 약 21억 원, 명예훼손 4억 원, 모욕 1억 원. 놀라운 점은 청구사유가 노동자 손배소의 단골 청구사유로 등장하는 점거, 재물손괴 등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궁금하다. 대체 하이디스 공장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엇이 이상목 지회장과 조합원들에게 수십억 돈 폭탄을 안긴 것일까? 이상목 지회장은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배경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공장 이야기를 시작했다.
잦은 해외매각, '기술먹튀'와 버려진 노동자들
▲ 하이디스지회 대만 원정 투쟁 현장 사진 | |
ⓒ 하이디스지회 |
"하이디스의 전신은 현대전자에서 분사한 하이닉스예요. 2003년 처음 중국 BOE에 매각되면서 하이디스라는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죠. TFT-LCD회사인데 보통 핸드폰,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소규모 LCD를 만들어요. 특히 FFS 기술이라고 요즘 TV나 핸드폰, 태블릿에서 각광받는 광시야각기술인데 이 기술만큼은 하이디스가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이나 LG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스티브 잡스가 칭찬할 정도로."
압도적 기술을 보유한 안정적이고 전도유망했던 회사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해외매각을 장려하던 정부 정책에 휘말리면서부터다. 하이디스는 2003년 FFS기술에 눈독들이던 해외시장에 매각된다. 중국BOE에 매각되었는데 소위 '기술먹튀'를 경험한다. 압도적인 기술을 중국에 그대로 빼앗긴 채 빚더미와 함께 공장과 노동자들은 내버려진 것이다.
이후 하이디스는 다시 2008년 대만 이잉크에 매각이 결정된다. 이미 '기술먹튀'를 경험한 노동자들은 크게 반발했다.
"특허기술을 지키기 위해서 81일간 전면파업을 했어요. 대만 PVI측(이잉크 전신)에 기술을 팔지 않겠다는 약속과 인수 과정에서 하이디스가 투자한 1000억 원에 대해 투자지분을 매각했을 때 하이디스 공장 개선에 재투자해줄 것을 약속해달라고 요구했죠."
그러나 이잉크 역시 BOE와 다르지 않았다. 대만 이잉크는 공장가동 대신 하이디스의 기술을 가지고 '저작권 장사'에 주력했다. 공장은 더 이상 돌릴 필요가 없었고, 기술 장사에 노동자는 필요 없었다.
"2013년 7월 갑자기 1년간 생산이 없을 거라고 통보를 하더니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어요. 이 과정에서 인원 절반을 감축했죠. 말과 달리 생산을 최대치로 올렸어요. 구조조정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죠. 다만 구조조정은 노동부에 신고해야 하고 절차가 복잡하니 희망퇴직을 유도한 거죠."
대만 인수 후 1200명이던 노동자는 840명, 377명으로 점차 줄었다. 단 한 명의 노동자도 남기지 않기 위해 회사는 희망퇴직과 정리해고의 칼을 빼 들었다. 급기야 2015년 공장폐쇄를 단행한다. 회사는 버티는 생산직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하고, 공장은 다른 회사에 임대를 주었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건 시설관리부 30여 명뿐이다. 공장을 임대해주려면 시설관리부만큼은 필요했다.
"2015년 2월과 3월, 두 차례 대만으로 원정투쟁을 떠났어요. 2월은 핵심간부만 다녀왔고, 3월은 30명 정도가 다녀왔는데, 성과가 없었어요. 3월 31일 정리해고 감행하면서, 회사가 희망퇴직을 권해요. 377명에 대한 평균 2년치 연봉을 줄 테니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이해할 수 없었죠. 2년 연봉을 주겠다면 공장이 돌지 않아도 2년은 인건비를 줄 수 있는 건데, 나가라는 이유가 뭘까. '특허장사'를 의심할 수밖에 없죠"
100억 손배소 협박, 결국 사람이 죽었다
희망퇴직 강요를 받던 중 2015년 5월 1일, 냉각기 고장 사고가 발생한다. 회사는 사고의 책임을 노동절이라 출근하지 않은 시설관리부에 떠넘겼다. 이때부터 '손배소 협박'이 시작된다.
"회사에서도 특근신청에 대해 따로 언급도 없었고, 사실 담당 팀장도 4월 30일부로 퇴사해서 보고체계도 없었어요. 노동절이니 당연히 휴일로 받아들였는데, 이날 냉동장비가 고장이 나서 임대해준 회사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거예요. 회사는 이날 이후부터 시설관리부에 '손해배상 100억도 될 수 있다'면서 위협을 했어요.
그래서 5월 4일 사장(한국 경영인)하고 저하고, 시설관리부인 배재형 전 지회장의 주선 하에 면담을 했어요. 사장은 빌미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해고자는 무단점거로, 시설관리직은 손해배상으로 다 고소고발하겠다면서 압박을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해고자 79명과 시설관리인 전원에 대해 희망퇴직을 요구해요. 전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죠. 고용보장 방안을 만들어내라고요."
그런데 이틀 뒤, 배재형 전 지회장이 실종됐다. 그리고 닷새 뒤 설악산 인근에서 목을 매단 채 발견된다. 유서에는 "모든 것에 책임을 느낀다"는 내용이 있었다. 앞뒤 행적이, 면담 직후인 데다, 실종 직전 조합원을 찾아가 '손배소'로 위협받고 '희망퇴직'을 강요받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는 증언도 있어, 회사와 사장에게 원망이 쏟아졌다. 지회는 바로 열사투쟁에 돌입했다.
"분노도 원망도 아무 소용이 없죠. 대체 그간 형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형하고 저는 10년간 함께 노동조합 간부 활동을 했어요. 형이 조직실장을 하면 저는 국장을 하는 식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죠. 뭐든 걸 함께 논의해 왔으니까. 2013년 형이 지회장을 끝으로 현장으로 돌아가고 난 뒤에 제가 지회장이 됐어요. 그러고도 늘 조합 방향과 활동을 상의했어요. 간부 아닌 조합원으로 교섭하러 대만 원정을 두 차례나 갈 정도로 형은 현장에 돌아가서도 조합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회사(한국 경영진)가 '손해배상 할 수 있다'며 희망퇴직을 말한 그 날, 말 한 마디 없이 헤어져서 죽어서 돌아왔죠. 유서에 있는 '책임을 느낀다'는 말에 대해 이제는 물어볼 수도 없어요."
그런데, 이 열사투쟁이 손배소의 빌미가 되었다. 손배소 위협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회사는 울분을 토하는 노동자의 말 한마디를 두고 '명예훼손'이라며 손배소 근거로 삼았다.
동료를잃은 울분 토해 '유죄'... 4억 손배
▲ 하이디스지회 배재형 열사투쟁 현장. 이 과정에서 인터뷰 내용으로 하이디스 경영진은 지회장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4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한다. | |
ⓒ 하이디스지회 |
이상목 지회장에게 '배재형 열사'는 10년 조합활동을 함께했던 동료다. 더욱이 사라지기 전 사장 면담자리에 함께 있었고, 손배소 협박을 함께 들었다. 그는 울분을 토했고, 기자들은 기사를 썼다. 그리고 그 기사를 빌미 삼아 사장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며 이상목 지회장에게 형사고발과 함께 4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형사고발 건은 2016년 11월, 유죄판결을 받는다. 재판을 맡은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은 업무방해건에 더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 동료의 죽음에 울분을 토한 죄로 범법자가 되고 4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배재형 열사가 사장과의 마지막 면담에서 들어야 했던 100억 원 손해배상의 근거로 삼았던 냉각기 고장 건에 대해서도 결국 회사는 업무방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해당 손배소는, 냉각기 고장을 포함해 세 가지 혐의가 더해졌다.
"노동절 무단결근으로 냉각기 고장났다는 명목으로 1천만 원, 회사가 노조를 경계한다고 배치한 경비인력의 인건비, 성과급, 전기요금, 간식비까지 청구한 금액이 18억 원, 견적지연으로 인한 작업지연비 3억 6천만 원, 다 해서 21억 원 정도 돼죠."
로비에 모여있었다고 21억, 신발 던졌다고 1억
견적지연으로 인한 작업지연비에 대한 사연도 기가 막히다.
"공장폐쇄 이후, 가스, 화학약품 등 공장 내 위험물질을 제거할 외주업체를 견적 미팅하기로 했다고 들었어요. 우리는 평소랑 똑같이 현장 로비에 모여 있었어요. 평소에도 로비에 모여 휴식하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해요. 이날은 누가 오나 궁금해서 더 모여있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걸 보고 미팅하러 온 사람들이 미처 못 들어오고 그냥 갔다는 거예요. 회사는 이때 작업을 못 해서 이후 작업할 때까지 유지비가 들었으니 그 유지비를 우리에게 손해배상 청구해야겠다는 거죠. 그날 작업하기로 한 것도 아니고 견적을 보러온 것 뿐인데 마치 그날부터 작업을 할 것처럼 계산해서 청구를 했어요."
세 건 중 한 건은 청구이유가 '모욕'이다.
"대만원정투쟁 하는 중에 조합원 2명 중 한 명이 사진에 있는 인물들(한국 경영진, 대만경영진 9명 정도)이 누군지 설명하면서 '나쁜 놈, 존재감 없는 사람' 등의 표현을 썼고, 다른 한 명은 대만 연대동지들의 권유에 의해 돌아가게 된 것에 화가나 신발을 던졌는데 그 행위가 모욕을 줬다고 1억 원을 손배청구하더라고요"
설날 이틀 전 손배소 1심 선고 잡혀
경험상 형사소송 결과는 손배소송에 영향을 미친다.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모욕 모두 형사 1심에서 유죄를 받았다.
"피해자는 우리들이고 피해를 복구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건 당연한데, 피해자인 우리들은 명예훼손이든 업무방해든 모욕이든 다 유죄로 판결이 돼요. 정작 회사는 고발해도 무혐의나 선고유예로 다 빠져나가요. 재판하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느껴요. 손해배상도 청구금액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고, 갚을 수도 없는 금액이고. 조합원들이 어렵게 싸우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부분은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운명의 장난인지 작년 가압류로 어두운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낸 이상목 지회장은 이번에는 설날 이틀 전 손배소 선고기일을 맞이하게 됐다. 손배소 위협에 사람을 잃어야 했던 노동자가 다시 수십억 원 손배소로 위기에 처했다. 하이디스지회의 손배소 1심은 1월 24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