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2.15 오마이뉴스]
"경찰버스 라면이 사라졌다"... 악마의 소송은 계속된다
[손잡고 손배소송 기고문①] 국가손배 총액 67억 4400만 원, 이대로 괜찮은가
▲ "민주노조 탄압 분쇄, 158억 소내가압류 철회, 정리해고와 강제 무기한 휴업이 부른 사회적 살인,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이 지난 2013년 2월 24일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앞에서 열린 뒤 부산역광장에서 노제가 열렸다. 사진은 운구행렬 모습. | |
ⓒ 윤성효 |
최, 강, 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된다. 오늘(21일) 아마도 부산 한진중공업에서는 그를 추모행사를 가질 것이다. 지금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악질자본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2012년 12월 19일,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가 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틀 뒤 한진중공업 노조 조직차장이었던 최강서는 위와 같은 유서를 써놓고 목을 맸다. 다음날에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자 이운남, 이어서 한국외국어대 노조위원장 이호일, 이렇게 차례로 죽어갔다.
유서에서 보듯이 최강서는 회사의 가혹한 손해배상청구 등 가혹한 노조탄압이, 이운남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이호일은 노조파괴 전문업체 창조컨설팅으로부터 노조를 지키려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근혜의 당선 이후 더욱 힘든 상황이 올 것이라는 절망에서 죽음의 길을 택했다.
박근혜 치하 5년을 더 견뎌야 한다는 게 그들에게는 너무도 큰 무게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죽음으로 예고했듯이 박근혜 치하 4년 동안 이 나라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는 박근혜와 그 일당들의 나라가 되었으며, 그 권력의 횡포에 저항하는 이들에게는 여지없이 잔인한 탄압이 이어졌다.
4년 전 죽어간 최강서는 보고 있을까?
최강서의 죽음의 배경에는 2011년 김진숙의 '309일 85호 크레인 고공농성'이 있다. 2003년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김주익이 129일을 버티면서 구조조정을 반대하다가 목매 죽었던 그 크레인에 김진숙이 다시 올라 구조조정에 반대해서 309일 동안 버텨냈다. 자칫하다가는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났을지도 몰라서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몰고 가서 그를 구출했다.
그는 살아서 내려왔고, 사회적 합의에 따라서 구조조정은 철회되었다. 회사에 복직했지만 언제 끝날 모르는 장기휴직 상태에 있었고, 무엇보다 회사의 58억 원의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박근혜의 당선을 보게 된 그는 깊은 절망감 끝에 스스로 목을 맸다. 노동자가 한평생 상상도 못 하고, 손에 쥐어볼 수도 없는 큰 돈.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에 이은 최강서의 죽음. 한진중공업 노조는 그렇게 4명의 열사를 갖게 되었다. 노동조합과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집요한 탄압이 그의 희망을 끊었을 것이다.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지난 2013년 2월 24일 오후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조 탄압 분쇄, 158억 소내가압류 철회, 정리해고와 강제 무기한 휴업이 부른 사회적 살인,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 노제에서 추모사를 하면서 울고 있다. | |
ⓒ 윤성효 |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그가 죽음으로 예고했듯이 박근혜 정권에서 여전히 손해배상청구는 줄을 이었고, 노동자들의 죽음도 줄을 이었다. 누구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산업현장에서 매년 2천 명 이상 죽어갔고, 생활고를 비관해서 1만5천 명 이상이 자살을 택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국민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손을 놓고 국민을 구하지 못한 정권. 안보와 민생을 앞세웠지만 실은 비선실세를 동원하여 권력을 사유화하고 사익만 추구했던 정권. '왕실장'을 앉혀놓고 공안·공작정치에 몰두했고,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거나 사찰했던 정권. 불공정을 정상이라고 우겼던 정권.
그래서 나라는 망했고, 정의는 땅에 떨어졌다. 여기에 분노한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었고, 국회는 시민들의 힘에 견인되어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이제 박근혜는 임기를 끝내지 못하고 국민에 의해서 끌려내려오기 직전이다. 이런 상황을 최강서는 보고 있을까?
하지만 최강서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라는 '악마의 제도'는 계속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는 이 악마의 제도를 고발하려고 한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파업을 하게 되면 곧장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제도. 노동조합비와 노조원들의 전세금과 월세 보증금, 임금까지 가압류하는 그 악마의 제도. 법원은 노동자들의 호소에는 귀를 막으면서 회사의 청구에는 순순히 응해주고는 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짓을 국가가 한다면? 국가는 파업하는 노동자에게만이 아니라 집회와 시위에 나서는 국민들에게도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앞으로 이 연재를 통해서 손배가압류에 의한 잔인하고도 '끔찍한 악행'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다. 회사에 의한 손배가압류를 알아보기 전에 국가가 국민에게 행하는 어처구니없는 손해배상청구 상황을 알아보자.
노조 탄압을 넘어 집회시위의 자유 탄압 수단으로
쌍용자동차 노조는 '대한민국 및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내년 초에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을 것이다. 정부와 경찰은 쌍용자동차 노조에 16억여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유는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파업농성을 진압하면서 동원한 헬기와 기중기가 노조원들에 의해서 파손되었다는 것이다. 헬기 피해 5억2천만 원, 기중기 피해 5억9천만 원 등이 손해배상청구액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거기에 경찰 부상 치료비와 진압에 동원되었던 경찰들의 정신적인 위자료와 무전기와 진압장비 피해액 등을 배상하라고 한다.
우리는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을 기억하고 있다. 1만 명의 노동자 중 하루아침에 3천 명을 구조 조정하는 것에 맞서 싸워야 했던 노조는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 옥쇄파업을 벌였다. 수도와 전기도 끊긴 상황, 음식물과 의료품의 반입도 끊긴 상황에서 경찰은 매일 헬기로 최루액을 쏟아부었다. 피부에 닿기만 하면 곧바로 피부가 벌겋게 벗겨지고 수포가 생겨서 그 독성 때문에 논란이 되었던 그 최루액에 파업 노동자들은 지금도 헬기 비슷한 소리에도 놀라고는 한다.
▲ 지난 2009년 6월 27일 저녁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쇠파이프로 무장한 용역들이 그물을 설치하고 노조원들과 대치하는 가운데 경찰 헬기가 공장 상공을 선회하고 있다. | |
ⓒ 권우성 |
비도 내리지 않던 그 상황에서 최루액은 곧 최루 분말이 되어서 눈도 못 뜰 정도로 고통을 주었다. 헬기에 의한 최루액 살포는 거의 일방적이었다. 파업 노동자들이 거기에 저항할 방법은 없었다. 저공비행으로 위협하던 그 헬기는 아직도 노동자들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거기에 경찰특공대를 용산 철거민 농성 때처럼 기중기로 컨테이너 박스를 들어 올려서 운송했다. 경찰특공대는 옥상에 올라오자마자 노동자들을 '복날 개 패듯이' 두들겨 팼다.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김득중 쌍용자동차 노조 지부장은 "당시 경찰은 요청하지도 않은 헬기와 기중기를 무리하게 투입했고, 저공비행·특공대 투입 등으로 파업 참가자들이 생명에 위협을 느낄만한 상황이 연출됐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그에 대해 장비들이 파손되었다고 손해배상을 하라고 한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당시 파업 뒤에 94명이 구속되었고, 300여 명이 벌금을 받았고, 30명 가까운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런 고통으로 인해서 지금까지도 해고자의 80%가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런 국가폭력에 대해서 오히려 국가가 사과하고 폭력진압을 가한 경찰 책임자와 이를 지시한 정부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적반하장격으로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연대 책임을 지라는 식이다.
이런 사례가 쌍용만이 있는 게 아니다. 민주노총의 통계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해당 노조와 민주노총이 손해배상을 당한 게 2억4천만 원이었다. 지금 민주노총이 해당 노조 등과 함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인 사건의 경우는 총 22억 원에 이른다(이 경우 민주노총이 주도했던 대규모 집회와 시위 건도 포함). 따라서 정부가 국가손해배상을 신종 노동운동 탄압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의심할 만하다.
국가의 손해배상은 노동조합에만 있지 않다. 집회·시위에 대해서도 경찰이 불법으로 규정하면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 지난 2008년 6월 7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 촛불시위 당시 모습(자료사진). | |
ⓒ 남소연 |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해서 시민들은 광장에 나와서 촛불을 들었다. 근 100일 동안 이어진 촛불집회 등의 항의집회와 시위를 주도하였던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등의 관련단체들과 시민들에게 경찰은 최종적으로 5억여 원을 손해배상하라고 청구했다. 다행히 1심, 2심 재판부가 이를 모두 기각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였고, 아직 대법원은 이에 대한 확정판결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주목해 봐야 할 대목은 경찰이 피해 배상하라며 제기한 근거들이다. 시위 진압에 동원된 경찰 본인의 실수로 다치거나("방패를 챙겨 나가려다 너무 세게 방패를 잡아당겨 자신의 방패에 맞아 찢어짐"), 대치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경우("내리막길에서 시위대와 몸싸움 중 균형을 잃고 넘어진 대원들에게 깔리면서 방패에 대퇴부가 눌림"), 시위진압 경찰대원의 실수로 일어난 부상("시위대가 도로 점거하고 이동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사직공원 방면으로 구보로 이동 중에 호흡곤란으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짐")에 대해서도 모두 손해 배상하라고 청구했다(관련 기사 : "정부비판 집회에 손해배상 악용, 국민 '죽으라' 하는 것").
하기야 2015년 세월호 1주기 추모대회와 관련한 1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제기 이유 중에는 경찰버스의 라면이 사라졌다는 것도 포함되었을 정도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은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서 가해진 손배 문제로 화가 나 있다. 정부는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방해해서 손해를 입혔다며 5개 단체와 주민, 활동가 116명에게 34억 원을 배상하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제주 해군기지 공사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것은 당연히 강정마을 주민이다. 하지만 정부는 절차도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해서 주민들의 민원을 낳았으면서 오히려 주민 등을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시공사의 잘못으로 해군이 피해를 입었는데도 해군은 오히려 시공사에 손실금을 배상한 것을 구상권의 형식으로 손배 청구했다. 삼성물산이 시공사였기 때문일까? 해군은 삼성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바를 그대로 인정해서 물어주고 그것을 주민과 활동가들에게 갚으라고 한다.
촛불집회에도 소송 거는 정부, 헌법부정행위 중단해야
지난 12월 15일, <손잡고>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청구소송 무엇이 문제인가?'란 주제로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정부와 경찰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서 '전략적 봉쇄소송'의 의도가 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인정했다.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불법화하고, 집회·시위를 불온시하는 이런 소송이 '먹힌다'고 판단해서였을까? 경찰은 아예 '민사소송 TF'까지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 정부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도 집회·시위의 자유도 모두 부정하려는 것 같다. 국민을 적으로 보고, 진압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발상부터가 문제다. 이런 제도를 악용해서 헌법을 버젓이 유린하고 있고, 법원은 그런 행태를 수용함으로써 악용을 조장하고 있다.
▲ 헌법재판소 앞으로 간 촛불시민 지난 17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공범처벌, 적폐청산의 날 - 8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부근 안국역까지 행진한 뒤 ‘박근혜 탄핵’ 요구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
ⓒ 권우성 |
이제 물어야 한다. 과연 정부의 '민사소송 전략'을 두고 보아야 할까? 지금 광화문광장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촛불집회와 시위에 대해서도 경찰이 채증을 통해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제 이런 헌법파괴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국회의 입법이 시급하다. 그래야 국민들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만큼이라도 보호될 수 있다. 그래야 민주공화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