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05 오마이뉴스] "밤엔 악몽" 피해 기억 여전한데, 손배소라니

"밤엔 악몽" 피해 기억 여전한데, 손배소라니

2016년 상반기, 노동자 손배소 재판 주요 장면

 

 윤지선(yjs16) 김대홍(bugulbugul)
 
 
2016년도 벌써 반년이 흘렀다. 22개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1300억여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중 2016년 상반기에 3건의 선고심이 있었다. 3건 모두 노동자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두 문장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걸면 무조건 걸린다', 둘째, '회사와 합의해도 소용없다'.

선고1. 걸면 무조건 걸리는 손배소, 결과는?

피켓과 소식지 문구도 사측이 '손해'라고 하면 손배소가 진행된다.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모임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손을잡고)'에 2014년부터 접수된 노동자 손배가압류 사례 가운데 피켓 등의 '문구'를 손해배상청구 사유로 삼은 건 생탁막걸리와 고려수요양병원이 제기한 손배소 단 두 건 뿐이다. 이 두 건의 1심 선고가 올 상반기에 연달아 있었다. 

ad지난 2월, 부산의 생탁막걸리 장림공장 소속 사장 25명이 민주노조 소속 조합원 8명에게 청구한 1억2500만 원의 손배청구소송에 대한 1심선고가 먼저 났다. 사측은 민주노조 소속 조합원들의 쟁의행위가 매출감소와 회사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졌다며 손배소를 제기했다. 


특히 조합원들이 피켓과 현수막에 적어 넣은 "노동자 피 빨아먹는"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아 정신적 피해를 주장했다. 그러나 1심에서 사측은 자신들의 주장 중 어느 하나 입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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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탁막걸리 피켓시위 문구
ⓒ 부산합동양조현장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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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이 지난 5월, 생탁 사례와 비슷한 손배소 1심선고가 서울에서도 있었다. 고려수요양병원이 노조 소식지에 쓰인 "치료사들은 5년짜리 소모품과 같다"는 문구가 '허위'라며 민주노조 소속 간부와 조합원 3명을 상대로 9천만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생탁과 마찬가지로 병원 측은 문제 삼은 문구에 대해 허위임을 입증하지 못했다.

두 사례처럼 사측이 문제 삼아 소를 제기하면 손배소는 진행되지만 무조건 승소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손배소는 소가 진행되는 내내 노동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다. 재판결과와 상관없이 피고가 된 노동자들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수천만 원에서 억대에 달하는 손배청구 금액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려야 한다. 

그 뿐 아니라 손배소를 앞세운 회사의 위협과 회유에 무방비하게 내몰리기도 한다. 재판에서 이겨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겪어야 하는 고통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더욱이 위 두 사례의 청구사유는 매우 폭력적이다. 

피켓과 소식지는 노동자가 부당함을 알리는 수단이다. 이를 두고 억대의 손배청구를 하는 것은 결국 부당해도 목소리조차 내지 말라는 협박이다.

닮은 꼴의 두 소송은 모두 사측의 '항소'로 이어졌으나, 고려수요양병원은 결국 항소를 취하했고, 생탁막걸리 측은 항소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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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4일, 생탁 손배소 1심선고. 기각에 대한 축하메시지에 기쁨보다 그간 겪은 마음고생을 전하는 조합원 메시지
ⓒ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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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고생 많이 했어요, 밤에는 악몽도 꾸고."

생탁의 민주노조 조합원들은 회사의 항소로 다시 손배소라는 악몽에 시달리게 됐다. 고공농성 253일을 통해 어렵사리 얻어낸 사측과의 교섭기간임에도 사측이 항소를 한 데 대해 "결국 돈 있고 시간 있는 쪽이 유리한 싸움 아니냐"며 울분을 토했다. 

조합원 연령이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8명의 조합원 가운데 5명이 계약 만료되었고, 회사는 정년이 남은 3명만을 교섭대상으로 보고 있다. 

애초 생탁막걸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계기는 '근로기준법 준수'였다. 45년 전 전태일 열사가 산화하며 외쳤던 바로 그 구호 말이다. 2014년, 휴일, 야근수당, 주휴수당 없이 평균 식대 450원으로 노예처럼 부려지던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만들어 공장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부당노동행위 고발, 2년간의 장기농성 등 조합원들의 노력으로 공장은 결국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지만 정작 열심히 싸운 조합원들은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손배소가 걸려있는 동안은 회사에 정당한 요구조차 마음 편히 할 수 없다. 

 

선고2. 회사는 철회해도 경찰은 끝까지 간다 

회사와 합의를 하고도 여전히 손배소의 고통에 시달리는 노동자들도 있다. 지난해 말 7년만에 쌍용자동차 노사합의 소식이 전해졌을 때, "쌍용차 손배소 끝난 거 맞나"며 확인하는 문의가 많았다. 

쌍용자동차 47억 손배소는 10만 명이 십시일반하는 '노란봉투캠페인'에서 4만 7천원이란 상징적 숫자로 나타날 정도로 많이 알려진 금액이다. 실제 일부 기사는 '47억 손배소 취하'로 제목이 나가기도 했다. 물론 이 기사는 정정되었다. 47억은 회사가 청구한 33억의 손배소에 '원고'인 대한민국이 내건 14억이 더해진 값이기 때문이다. 

노사 합의가 국가의 손배소에도 영향을 주길 기대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국가는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손배소는 노사합의에도 불구하고 계속 되었다.

5월, 2심에서 재판부는 "파업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의 경위에 비춰볼 때 노조 간부들은 폭력 행위를 실행하거나 교사했다", "그로 인해 경찰이 부상당하고 재물이 손상돼 국가는 손해를 입었다"며 11억 6760여만 원을 노동자들에게 갚으라고 판결했다. 그 중 헬기와 크레인 파손 배상액은 11억 1490만원으로 전체 배상액의 95.5%를 차지한다.

2009년 파업에 대한 강제진압, 판결만 두고 보면, 피해는 경찰에 일방적이다. 당시 부서진 장비, 강제진압에 투입된 경찰의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보상금 등을 배상하라는 판결은 쌍차 노동자들을 하늘을 나는 헬기를 고무 새총을 쏘아 부수고, 무장한 경찰특공대에 맞서 폭력을 행사해 부상을 입힐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보았다. 

정작 현장에서 진압당한 노동자들은 여전히 피해에 대한 기억으로 고통받고 있다. 맨몸으로 뒤집어 쓴 최루액이 살을 짓무르게 하고, 낮게 날던 헬기가 목숨을 위협하던 그날의 기억은 분명한데 책임은 모두 노동자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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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일, 대법원 앞 쌍용자동차 손해배상 규탄과 대법원 상고 기자회견 현장
ⓒ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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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국가손배소 건에 대해 쌍차 노동자들은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7년의 장기해고자에게 11억 6760만 원은 갚으려야 갚을 수도 없는 돈이니 상고 외에는 선택지도 없다. 국가가 취하하는 것 말고 쌍차 노동자들이 손배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노란봉투법' 입법운동은 계속 된다

재판결과만 두고 보면 손배소에서 사측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러나 손배소의 또 다른 당사자인 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재판에서 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라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어떤 이는 해고되고, 어떤 이는 사직하고, 어떤 이는 가족을 잃기도 하고, 아예 노조 자체가 없어지기도 한다. 결국 일상이 뒤틀리지만 재판에서 이긴다고 뒤틀린 일상이 되돌아오는 건 아니다. 더구나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소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국민 모두의 문제임이 분명하다. 

결국 '법을 바꾸는 것'외엔 답이 없다. 손잡고는 19대 국회 때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마련해 발의했으나, 안타깝게도 입법되지 못했다.(관련기사 : 당신이 만들어낸 '노란봉투법')

2016년 하반기에도 줄줄이 손배소 선고가 예고되어 있다. 7월 철도노조의 2009년 민영화 반대 파업에 대한 손배소 1심 선고를 시작으로, KEC의 66명의 노동자들이 6년 만에 1심 선고를 앞두고 있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2심선고도 9월에 잡혔다. 손배소로 인한 고통을 멈추기 위해서 재판과 법개정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전태일재단 소식지에 중복게재됩니다.

 

원문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23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