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3.16 뉴스토마토] (탐사보도)"경영손실 이유 손배소…합법적 파업 유명무실화"

(탐사보도)"경영손실 이유 손배소…합법적 파업 유명무실화"

 

18개 사업장에 청구된 손해배상과 가압류 금액은 1554억3300만원이다. 100만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15만원씩 힘을 모아야 갚을 수 있는 액수다. 지난해 기준으로 민주노총 가입자가 63만여명인 점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노동계가 사측의 노동조합 탄압 중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가장 문제삼는 것 역시 이런 의미에서다. 배상액수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라 월급쟁이로서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지난 2012년 한진중공업 노조원이던 최강서씨가 불과 35세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 역시 사측이 노조에 청구한 158억원의 손해배상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손잡고'(손해배상·가압류에 대응하기 위한 시민모임) 운영의 실무를 맡고 있는 윤지선 활동가는 노조를 상대로 한 기업의 천문학적 소송에 대해 "정신적 명예훼손 등 물리적으로 특정할 수 없는 부분도 수치화해서 배상을 청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잡고는 지난 2012년 302억원의 손해배상과 28억9000만원의 가압류에 몰린 쌍용차 노조원들을 돕자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면서 2014년 2월 조직됐다.
 
기업의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과 가압류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커지고 있지만, 사측의 소송 시도는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윤지선씨는 "외국은 사측이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노조 활동에 따른 기업의 피해를 입증하는 책임이 사측에 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노조에 소송을 청구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단 소송을 청구하면 법원에서 거의 다 받아준다"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손잡고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노조의 파업 기간이 10일이라고 가정할 경우, 이 기간 일어난 생산손실과 매출손실을 모두 손해배상에 반영한다. 특히 매출손실은 어디까지나 사측의 예상치에 지나지 않지만 임의로 계산을 해서 그만큼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윤씨는 쌍용차와 KEC 사태를 사례로 들며 "외국은 기업이 매출손실을 입증하려면 회계장부를 다 보여줘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계산하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파업 자체가 노동자에게 합법적으로 보장된 기본권인데 그걸 못하게 하려고 영업방해, 매출손실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영호씨는 유성기업 아산지회 지회장이다. 금속노조에 속한 유성기업 노조는 2011년 벌인 파업으로 사측에 57억5000만원의 손배소를 제기당해 현재 재판을 진행 중이다. 그는 "몇십억 소송을 당하면 워낙 액수가 크다 보니 실감이 안 나고, 어차피 못 갚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중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나게 된다"며 "손해배상과 징계, 고발, 고소가 하나의 세트처럼 노조 간부들을 압박하기 위해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수요양병원 노조 사무장인 김지윤씨는 지난해 병원 측으로부터 노조 간부 2명과 함께 9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 받았다. 노조가 병원의 영업을 방해해서가 아니다. 시위에 사용한 피켓의 문구가 문제였다. 그는 "피켓 문구는 대부분 사실에 근거한 내용이고, 환자들이 병원에 불만을 제기하는 부분도 있었다"며 "그런데 병원은 피켓 내용이 사실무근이라며 일일이 반박하더니 피켓을 든 사진을 찍어서 배상을 청구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직접적 재물 피해가 없더라도 명예훼손 요인만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면 노조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 땅에 있는 노동자들은 입도 뻥끗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기업은 이런 방식을 또 다른 사업장에도 이용해 손해배상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뉴스토마토
 
노동계는 이와 함께 노조에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청구되면 노조 내부에서도 극심한 갈등이 생긴다고 전했다.
 
수억원대의 배상금액 앞에서 노조 활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떠나려는 사람들과 남아있는 사람들의 분쟁이 폭발하는 것이다. 떠나는 사람들은 남은 동지들에게 마음의 짐을 평생 안고 살고, 남은 사람들은 갚아야 할 돈 앞에서 삶이 무너진다. 이혼을 하거나 홧병에 걸리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심지어고 최강서씨처럼 생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윤지선씨는 "종종 손해배상이 노조를 탄압하는 데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운을 뗀 뒤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형사처벌까지 받아서 이제 다 끝났나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손해배상소송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되면 노동자로서는 그야말로 악몽"이라며 "정서적 불안과 우울증, 자살 충동까지 이어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최병호·윤선훈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