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1.19 오마이뉴스] "10원 한장 못 벌었는데 1억2500만원 손해배상?"

"10원 한장 못 벌었는데 1억2500만원 손해배상?"

"생탁 손배소 철회하라" 시민사회 부산지법에 한 목소리

 

기사 관련 사진
▲  생탁막걸리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철회를 촉구하는 시민사회 기자회견
ⓒ 윤지선

관련사진보기

"'체불임금 지급하라', '근로기준법 준수하라'고 했더니 회사는 도리어 명예훼손, 매출손실 운운하며 억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최저임금에 시달리다 노숙농성 570일, 고공농성 218일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10원 한 장 못 벌었는데, 1억2500만 원이라니요. 먹고 죽을래도 없습니다."

19일 오전 11시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회사로부터 억대의 손배소 청구를 받은 부산양조협동조합 생탁막걸리 노동자들과 시민사회가 "손배소 철회"와 "법원의 공정한 판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생탁 사장 25명이 청구한 손배소는 과정과 내용 모두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생탁 조합원들이 공개한 소장의 청구사유를 보면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피고인들은 노동쟁의행위를 함에 있어 법이 허용하는 쟁의행위를 하여야 하나, 위 부산합동양조 일부 시설에 불법적으로 침입을 하거나, 민주노총 부산지역 일반노동조합의 관계자들과 공동으로 과장된 사실로 기자회견을 하여 위 생탁의 이미지를 실추시켜 판매량과 생산량을 감소시켜 원고와 선정자들에게 손해를 입게 하였습니다. 

또한 일반인들이 잘 볼 수 있는 위 부산합동양조장림제조장 건물 외벽에 '근로자의 피를 빨아먹는 25명의 사장들은 각성하라'는 내용의 현수막 걸고, 피고들을 근로자로 사용하고도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고 원고와 선정자들의 이익만 챙기는 악덕한 사업주라는 내용을 확성기가 설치된 차량을 이용하여 일반인을 상대로 방송을 하는 등 원고 및 선정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하였으며 이로 인해 원고 및 선정자들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습니다."

"생탁 손배소, 근로기준법 무시된 사례"

남영란 노동자계급정당 부산추진위 집행위원장은 "노동자의 피 빨아먹은 사장이라는 발언에 명예훼손을 운운하는데, 생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주말-공휴일 근무, 상여금 미지급, 심지어 점심식대 450원으로 노예처럼 일했다. 이게 노동자 피 빨아먹은 게 아닌가"라며 반문했다.

생탁 조합원 김종환씨는 "소비자불매운동으로 인한 매출손실의 책임이 정말 우리 노동자에게 있나, 생탁에 다니면 회사가 소비자를 속이든 말든 그냥 두었어야 했나 묻고 싶다. 생탁 위생문제 등에 대해 노동자들이 소비자에게 고발한 것은 용기있는 결단이었다고 믿어주길 바란다. 소비자를 믿고 계속 활동할 것"이라며 소비자에 호소했다.

김명미 정의당 부산시당 위원장은 생탁 손배소를 두고 "근로기준법이 무시된 사례"라고 일갈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자가 단결해서 노동3권에 따라 노조활동 하면 업주들은 어김없이 손해배상 소송을 낸다. 정신적 손해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손배소를 하는 것"이라며 "추석상여금을 요구하며 사무실을 찾아간 노동자들이 어떻게 불법침입자로 전락하는 것인가, 업주들은 노동법에 따른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청구한 손배소를 철회하라"고 질타했다.

"사측 무분별한 손배청구 다 받아주는 법도 문제"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손해배상소송을 한 사측도 문제지만, 이러한 사측의 소송에 손을 들어주는 법원도 문제라며 '공정한 법 집행'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쏟아졌다.

이수호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 공동대표는 "손배소로 인한 탄압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이제는 노동조합이 파업하면서 건 현수막 문구까지 문제 삼아 명예훼손, 정신적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게 가능해졌다"며 "이러한 사측의 무분별한 손배청구도 다 받아주는 법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수호 대표는 "법이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부당한 손배에 대해 최소한 양심적인 판결을 해주길 바란다"며 공정한 판결을 당부했다. 또한, 손배가압류의 근거가 되는 현행 노조법의 개정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손잡고가 '노란봉투캠페인' 시민모금을 기반으로 마련한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은 지난 4월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이 대표발의했으나, 현재 계류 중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생탁과 같이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도 함께해 법이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편에 서주길 호소했다.

다음 달 17일 유성기업이 청구한 40억 손배소의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금속노조 유성지회 김선혁 법규부장은 "사측은 교섭을 회피하면서 손배소로 노동자를 압박한다, 손배소는 노동자뿐 아니라 가족까지 무너지는 것인데, 법적-제도적으로 만들진 안전장치마저 사라지고 있다"며 "법원이 자본이 만들어내는 문서만 볼 게 아니라 현장에 나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다음 달 24일 회사가 청구한 156억의 손배소 1심 선고를 앞둔 금속노조 KEC지회 김성훈 지회장은 "KEC는 노동자에게 회사를 그만두면 손배소에서 빼주겠다고 한다"며 "손배소의 본질은 노동조합하지 말라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김 지회장은 "KEC의 경우 156억을 청구했는데, 이 금액은 노동자에겐 생존권이 걸린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회사는 이 돈 받는다고 살림이 나아지는 것 아니"라며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겠다는 것인데 물질적 정신적 압박을 하는 건 너무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재판부가 손배의 본질을 알아주길 바란다"다며 공정한 판결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오전 10시 예정된 1심 선고는 12월 17일 심리로 변경되었다. 노조는 정확한 변경 사유에 대해서는 전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기사 관련 사진
▲  218일차 부산시청 광고탑 고공농성 중인 생탁 노동자 송복남, 택시 노동자 심정보
ⓒ 윤지선

관련사진보기

이 가운데 생탁 조합원 송복남씨와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조합원 심정보씨가 "근로기준법 준수, 노동3권 보장, 손배가압류 철회"를 내걸고 부산시청앞 광고탑에 오른 지 218일이 지나고 있다.

송복남씨는 "지난 9월 전기마저 끊겨 농성장 상황이 더욱 열악해졌다. 해결의 실마리는 교섭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지만 사측은 성실히 교섭에 임하지 않고 있어, 고공농성이 장기화될 것 같다"며 농성 상황을 전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