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편지]노란봉투캠페인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 토론회 현장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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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편지] 노란봉투캠페인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 토론회 현장 스케치

수천억 손배소, 과도한 인지대로 노동자 재판청구권 침해

- “법에 대한 접근성, 돈으로 막는 인지제도 개선해야”

 

안녕하세요,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입니다. 지난 27일 노란봉투캠페인 법제도개선활동의 일환으로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그동안 손잡고는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영섭 변호사, 좌세준 변호사, 허진민 변호사를 주축으로 한 법제도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손배가압류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겪는 법적 고민들을 듣고, 해법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첫 번째 주제가 바로 ‘인지대’입니다.

손잡고는 매달 손배소 피해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현장간담회를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수십에서 수백억에 달하는 손배청구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노동자들이 수천만원대의 인지대를 감당해야 법원에 ‘항소’ 또는 ‘상고’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회사가 제기한 33억원의 손배소에서 패소했는데, 2,400만원의 인지대를 3주 안에 마련해야 대법원 상고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노동자들은 ‘상고’를 위해 다시 빚을 지게 되었어요.

이는 비단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0년에 벌인 파업만으로 총 7건의 손배소를 당했고, 이것으로 지금까지 1억원의 인지대를 납부해야 했습니다. 또 곧 156억의 손배소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KEC지회 노동자들은 패소할 경우 감당해야 하는 인지대만 7천만 원이 넘습니다.

 

인지대 무엇일까요, 꼭 납부해야 하는 건지. 재판을 위해 우선 내야하는 ‘돈’이 없어서 재판을 포기하는 일이 과연 합당한 일인지. 손잡고는 법전문가들과 함께 이 문제를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참여연대 공익법센터가 공동주최로 힘을 보태주었습니다. 자, 그럼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 토론회에서 어떤 문제들이 제기되고, 또 해결책이 이야기되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PI20151027_토론회자료집_인지(印紙)제도와재판청구권(배포용_최종)

 

인지대란?   인지대에 대해 법원은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라고 설명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인지대의 입법목적이 남소방지(불필요하고 성공가능성이 없는 소송을 방지하고, 남소에 따른 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방지)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남소방지’라는 입법목적에 대해 토론회에 참여한 법률전문가들은 "소가(소송목적 값) 중심적인 현행 인지제도가 법에 대한 접근성을 돈으로 막고 있다"며 인지제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즉, '인지대'로 인해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지요.

 

“남소방지를 위해 재판청구권 침해하는 건 위헌” = 현행 인지법에서 주요하게 지적된 것은 바로 ‘소가 및 심급연동제’입니다. 말이 너무 어렵습니다. 풀어 말하면, 소송목적 값(손배소로 따지면 손배청구액)이 올라갈수록 인지대도 올라가고, 항소나 상고를 할 때 인지액도 오르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 토론회4

 

기조발제를 맡은 김종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남소방지의 공익적 효과보다 행여나 있을 수 있는 억울한 재판청구권 상실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며, "경제적 이유만으로 정당한 권리자의 권리구제가 위협받을 수 있는 경우를 초래한다면 남소방지라는 입법목적은 그 헌법적 한계를 벗어나는, 정당성을 상실한 목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김종철 교수는 ‘인지대와 재판청구권’ 문제를 “국민이 돈이 없어서 재판을 못 받는 일이 민주주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향하는 국가에서 일어나선 안 된다”고 한 마디로 정리합니다.

 

이날 발제자와 토론자 대부분은 이 ‘소가 및 심급연동제’에 대해 ‘위헌성’이 있다는 발제자의 문제제기에 동의를 표했습니다.

 

“재판청구권 침해 대표사례는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 = 이날 인지제도로 인해 재판청구권이 침해받는 대표적인 사례로 '노동사건' 특히, '노동쟁의행위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꼽혔습니다. 노동사례발제를 맡은 민주노총 금속법률원의 송영섭 변호사는 사측이 제기하는 막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가 감당하기에 큰 '인지대 폭탄'으로 다가온다며 "현재 진행중인 전체 손해배상 청구액 1,300억원을 기준으로 하면 항소심 인지대는 6억 8천만원, 상고심 인지대는 9억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덧붙여 송영섭 변호사는 "노조법에서에서 손해배상에 대한 면책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실제 쟁의행위에 대해 손해매상 청구가 일상화되었다"며, 이는 "법이 쟁의행위를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송영섭 변호사는 "자본의 입장에서야 손배소에서 법원에 제출하는 인지대가 큰 부담이 아닐 수 있으나. 열악한 노동법 현실에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법원을 통해 입증받아야 하는 노동자들의 처지에서는 재판을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지급해야만 하는 고액의 인지대 또한 넘어야할 큰 벽"이라고 꼬집었다.

 

토론에는 손배가압류 피해노동자이기도 한 최병승 현대자동차지부 조합원도 참여했습니다. 최병승 조합원은 "인지대에 대한 부담을 넘어 손배청구 자체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노동권의 행사마저 포기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최병승 조합원은 "수백억에 달하는 손배청구가 부담된 조합원들은 회사가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포기하고 신규채용에 응하면 손배청구에서 제외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에 따라 초기 손배청구대상이 600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절반인 300명 정도로 줄었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수백억의 손배소는 남아있는 300명이 부담하게 되면서 부담은 배가 되었습니다.

 

국책사업 현장주민, 권리 찾기 위한 소송에서도 인지대 부담 = 또 다른 재판청구권 피해사례로, 국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경우도 지적되었습니다. 박주민 변호사(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는 "대규모 국책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사전에 갈등을 예방할 수단이 없다 보니 사업지의 주민들은 사업이 추진된 후 각종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을 통해 권리보장을 시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의 인지대를 포함한 모든 소송비용은 주민의 몫이 된다"고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로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사례를 소개했는데요, 박주민 변호사는 "국책사업 현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장기투쟁과 경제적 기반 붕괴로 곤궁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고, "일반적으로 적어보였던 인지대도 '가랑비에 옷 젖듯' 부담이 점차 가중된다"고 설명합니다.

 

발제를 맡은 허진민 변호사는 "행정소송은 국가가 우월적 지위에서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한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구제받기 위한 것으로 대등한 사인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민사소송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며, 민사소송법을 준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행정소송의 목적과 기능, 행정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측면에서 별도의 구체적인 규정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토론에 참여한 박민재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는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에서까지 개인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시키고 소가에 비례해 인지액을 납부하도록 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고 개인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법원, ‘남소방지’ 목적 거듭 강조 = 이날 토론에는 심경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 사법지원총괄심의관이 참여해 '남소방지기능'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수수료'의 의미를 재차 강조하며 법원의 관점과 입장을 전했습니다. 심경 사법지원총괄심의관은 공통적으로 문제제기된 '소가 및 심급 상향제'에 대해 "소가가 클수록 오히려 많은 비용이 들게 된다"며 타당하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대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반대입장도 나왔습니다. 박민재 변호사는 “1만원 소가의 소송에 드는 시간과 인력이 1억원 소송에 드는 시간과 인력에 비해 덜 든다고 볼 수 없고, 1억원 소송이 더 간단할 수도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심경 사법지원총괄심의관은 "실제 소송에서 소송목적의 값 대비 인지액의 규모나 소송비용 중 인지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고, "인지대가 고액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원고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막혀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덧붙여 "민사소송비용의 최종적인 부담자는 피소하는 자이므로 목적적인 소송을 제기한다면 그에 따른 비용은 모두 회수할 수 있"고, "민사소송법상 소송구조제도를 통해 자력이 부족한 자에 대하여는 소송상의 구조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재판청구권 침해라 볼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날 대표적인 재판청구권 침해사례로 언급된 노동소송에 대해서는 달리 입장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소송구조제도'에 대해 김제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지대 자체를 그대로 부과하는 상황에서 소송구조제도가 종국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며 "소송구조를 받았지만 패소한 경우, 인지대를 기준으로 산정된 변호사보수 등 소송비용은 결국 패소자가 부담하게 된다"는 점에서 결국 인지대가 소송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인지제도 토론회 발제자 토론자 

 

대안은? 인지대 문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재판청구권 침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요?

 

인지대 산정, 다양화 및 합리화 필요 = 기조발제에서 김종철 교수는 "중요한 것은 입법목적인 남소방지보다 헌법적 권리인 재판청구권이 침해받지 않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김종철 교수는 "재판청구권을 덜 침해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았는데요, ▲인지제 상한제 ▲미국의 경우와 같은 정액제 ▲노동사건과 행정사건의 경우 부분적 재판무상제 ▲인지제도 감액 및 면제 확대를 제안했습니다. 기존에 제시된 방안으로는 변재일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2014년 제출한 '300만원 인지액 상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인지법 개정안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 법안은 현재 계류 중이라고 합니다.

 

변재일 의원의 인지법 개정안을 두고, 심경 사법지원총괄심의관은 "소가가 7억3,625만원인 경우에야 비로소 인지액이 300만원이 된다"면서 "최근 4년간 제1심 민사본안사건 가운데 소송목적의 값이 5억 원을 초과하는 사건이 2012년 11,682건(1.12%), 2013년 12,014건(1.10%), 2014년 11,257건(0.99%)에 불과하다"며 반대입장을 펼쳤습니다.

 

이에 대해 사회를 맡은 황승흠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는 "1%의 숫자에 함정"을 지적합니다. 황 교수는 "1%가 10,000건이 넘어가는데, 이는 우리나라 경제인구가 3천만이라고 봤을 때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라며, 1%를 특별 사례로 볼 것이 아니라 일반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남소방지, 돈(인지대)이 아닌 정책-제도적 수단 필요 =김제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남상소 방지도 재판제도의 운용상 중요한 정책 중 하나이나 인지대를 통해 실현하려는 것은 적절한 정책 수단이 아니”라며, ‘재판외 분쟁해결제도의 활성화’, 상소이유의 제한 등 남소방지를 위한 다른 적절한 정책수단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재일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사법적 구조제도는 어쩌면 국민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일 것”이라며 “이러한 권리구제를 금전에 의해 제한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하고는 “인지대 개선문제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다시 한 번 공론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토크쇼 배너 

 

맺으며, ‘인지대 토론회’로 ‘2014년 노란봉투캠페인 모금액’을 통한 사업은 마무리됩니다. 국회에서 ‘노란봉투법’과 함께 꼭 ‘인지대 개정’도 꼭 제도적 결실을 맺길 바라며, 함께 지켜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손잡고는 앞으로도 여러분의 후원을 거름삼아 ‘노란봉투법;의 싹을 톡톡 틔우기 위한 활동을 펼쳐나갈 예정입니다. 또 이번 ’인지대 토론회‘와 같이 손배가압류 이면에 숨겨진 노동권을 위협하는 법제도의 모순을 발굴해 개선해나가는 시도도 함께하겠습니다. 향후 손잡고 활동에 대한 의견 있으시면 답장 주세요. 많은 관심으로 지금처럼 손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손잡고 활동가 윤지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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