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0.09 시사인 421호] “단식 말고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단식 말고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일곱 번째 추석도 길거리에서 보냈다. 손해배상 재판 2심에서 패소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소송을 하지 않으면 가압류가 압류로 바뀌고, 이자가 붙은 손해배상이 집행된다. 교섭은 제자리걸음이다.

신한슬·이상원 기자  |  webmaster@sisain.co.kr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 투쟁을 시작한 이래 일곱 번째 추석이 지나갔다. 굴뚝 위에 올라갔던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은 회사 측과 대화하기 위해 땅으로 내려왔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회사 측과의 교섭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김득중 지부장은 단식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청구한 손해배상 재판 2심에서도 패소했다. 인지대 2400만원이 없어서 상고를 망설였다. 하지만 상고하지 않으면 가압류가 압류로 바뀌고, 이자가 붙은 손해배상이 집행된다. 시민들의 힘으로 만든 ‘노란봉투법’이 국회로 갔지만 통과 전망은 어둡다.

“이제 단식밖에 할 게 없어서”

왜 단식하는지 묻자 김득중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이제 단식밖에 할 게 없어서”라고 답했다. 김 지부장은 8월31일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평택 쌍용차 공장 정문 앞에서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그가 앉아 있는 단상 옆에는 영정 모양의 대형 철판이 놓였다. 9월 내내 단식은 계속됐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이 쌍용차 정문 앞에서 8월31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시사IN 조남진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이 쌍용차 정문 앞에서 8월31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1월29일 처음 시작된 쌍용자동차 노사 실무교섭은 8개월 동안 30차례 넘게 이뤄졌다. 주된 쟁점은 해고 노동자 187명의 복직 시기 명기였다. 김정운 쌍용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은 “회사 측은 일관되게 복직 시기 명기를 거부해왔다. 대신 ‘차량 판매 일정 대수 돌파, 신차 출시 등 특정 시점이 지날 때마다 단계적 복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첫 관문인 복직 시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다른 사안도 큰 진전이 없다”라고 말했다.

실무교섭이 8월까지도 지지부진하자 단식 이야기가 나왔다. 노조원들이 집단 단식을 자청했으나 김득중 지부장은 “혼자 하겠다”라며 나섰다. 김정운 부지부장은 “지금도 함께 단식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만큼 해법이 보이지 않아서다”라고 말했다.

올해 3월까지 100일 동안 평택 쌍용차 공장 굴뚝에 올라가 농성했던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은 지난 두 달간 매일 서울 강남역 앞으로 ‘출근’했다. 쌍용차 직영 영업소 근처다. 이 실장과 노조원 네 사람은 돌아가며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한다. 9월21일 만난 그는 “압박만으로 타결을 끌어내고 싶지 않았기에 굴뚝에서 내려왔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고자 했다. 그런데 굴뚝에서 내려온 이후 상황이 더 나빠진 것 같다. 회사 측의 협상 태도에서 다급함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이창근 실장은 “오늘 협상이 중요하다. 추석 전 마지막 교섭이고, 김 지부장의 단식이 20일을 넘겼다. 인도 원정 투쟁도 계획하고 있다. 교섭이 잘 풀리면 단식도 끝내고, 인도도 안 갈 수 있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9월21일 교섭도 성과는 없었다.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은 결국 이틀 뒤 노조원 네 사람과 함께 인도행 비행기를 탔다. 쌍용자동차 최대주주인 마힌드라 그룹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마힌드라 그룹은 2010년 쌍용차 주식 70%를 인수해 대주주가 되었다. 쌍용차 노조는 국내의 회사 측이 아니라, 인도의 마힌드라 회장이 키를 쥐고 있다고 여긴다. 65개월 동안 열린 적 없던 노사 교섭이 올해 초 마힌드라 회장의 방한을 계기로 처음 성사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인도 원정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김정욱 사무국장은 출국 전 마힌드라 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면담 요청 메일에 대한 답장이었다. ‘인도에 올 필요 없이 국내에서 교섭하고 추석 잘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원정팀은 인도를 찾은 지 일주일 만인 9월30일 마힌드라 회장 대신 파완 고엔카 쌍용차 이사장을 만났다. 고동민 쌍용차노조 대외협력실장은 “고엔카는 한국에서 진행되는 노사교섭을 지지하고 함께 힘을 모으겠다는 입장만 이야기했다.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라고 자신의 트위터에 남겼다.

쌍용자동차 한국 본사 관계자는 9월29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9월21일 교섭의 세부 사항은 잘 알지 못하며, 노조원들의 인도 원정 투쟁에 대해서도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말했다. 김득중 지부장과 평택에 있는 노조원들은 추석 연휴에도 집에 가지 않았다. 대신 공장 입구의 정리해고 희생자 분향소 천막 앞에서 차례를 지냈다. 10월1일 현재 김득중 지부장은 여전히 단식 중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2014년 11월13일 대법원은 쌍용차 해고자들이 낸 해고 무효 소송에서 회사 손을 들어줬다.  
ⓒ시사IN 신선영

2014년 11월13일 대법원은 쌍용차 해고자들이 낸 해고 무효 소송에서 회사 손을 들어줬다.
 

인지대 때문에 소송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인지대가 없어요.” 쌍용차 노조의 법률 대리를 맡은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가 말했다. 쌍용차 노조와 해고 노동자가 9월16일 손해배상 2심에서 패소한 뒤 당장 나온 말이다. 인지대가 상고의 발목을 잡는다는 뜻이다. 인지대는 소송을 제기할 때 내야 하는 일종의 수수료다. 소송가액이 많을수록 인지대도 늘어난다. 항소를 할 때는 1.5배, 상고를 할 때는 2배로 적용된다. 무분별한 소송을 방지하자는 취지이지만, 회사 측으로부터 수십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해고 노동자에게는 족쇄다.

9월16일 서울고등법원 민사2부(재판장 김대웅)는 양쪽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노조 간부, 파업 참여 조합원 등은 사측에 33억1140만원을 배상하라.” 1심 판결 그대로였다. 2013년 원심에서 해고자들에게 ‘손배 폭탄’ 47억원(9월16일 2심에서 확정된 사측에 대한 33억1140만원 손해배상액과 아직 2심이 진행 중인 경찰에 대한 13억7000만원의 손해배상액이 합쳐진 금액이다)이 인정된 바 있다(<시사IN> 제326호 ‘직장 잃은 게 5년인데 4,681,400,000원…’ 기사 참조). 심지어 지연손해금도 붙었다. 다 합치면 50억원에 이른다.

해당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는 노조는 상고를 해야 하지만 고민이 깊다. 상고를 하려면 인지대 2400만원이 필요하다. 이미 지금까지 4500만원 가까운 인지대가 들었다. 여기에 별도 소송 중인 사측의 금속노조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2심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면, 또 인지대 2400만원이 나온다. 이런 식으로 손해배상 재판에만 인지대 1억원을 내는 셈이다. “피고가 대부분 해고자들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돈이 있을 수가 없죠. 그러니 인지대도 못 내고 상고가 부담되죠.” 장 변호사가 말했다. 쌍용차 노조는 현재 돈과도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은 “고민은 크게 두 가지다. 현실적으로 인지대 5000만원을 어떻게 모으느냐와, 상고했을 경우에 이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법원에서 회사의 주장이 거의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 현실은 비관적이다”라고 말했다. 상고를 할 경우 지연손해금이 20%씩 계속 불어난다는 점도 부담이다. 상고를 해서 질 경우 물어내야 할 금액은 더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상고를 포기할 수도 없다. 지연손해금까지 손해배상액 50억원이 확정된다. 회사가 집행을 시도할 수 있다. 가압류된 임금, 퇴직금, 부동산을 회사가 가져간다. 진퇴양난이다. 기한을 5일 남겨둔 9월30일, 노조는 상고를 결정했다. 한 가지 희망은 노사 교섭이다. 노사 교섭의 4대 의제(해고자 복직, 희생자 28명 대책, 손해배상·가압류 철회, 회사 정상화) 중 하나다. 하지만 9월21일 교섭은 아무 진전 없이 끝났고 다음 교섭 날짜도 정하지 못한 상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우원식 의원실 제공</font></div>2014년 3월5일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의원들과 보좌진이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했다. 노란봉투법이 만들어졌지만 법안 통과는 불투명하다.  
ⓒ우원식 의원실 제공

2014년 3월5일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의원들과 보좌진이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했다. 노란봉투법이 만들어졌지만 법안 통과는 불투명하다.
 

국회로 간 법안은 6개월째 감감 무소식

해고가 파업을 부르고, 파업이 손해배상·가압류 ‘폭탄’을 부른다. 쌍용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민단체 ‘손잡고’는 2014년 2월 현재 노동계에 손해배상액 약 1700억원이 청구되어 있고, 노동조합 간부나 개별 노동자를 상대로 가압류된 재산이 18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악순환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법을 통한 제도 개선이 핵심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은 지난 4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일명 ‘노란봉투법’이다. 정리해고 반대 파업이 손해배상·가압류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법안이다.

법안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합법적 파업의 범위를 넓혔다. 정리해고를 사용자 측과 노동조합의 교섭 대상에 포함했다. 또 쟁의행위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둘째,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대상을 좁혔다. 조합원 개개인이나 가족, 신원보증인에게까지 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했다. 단, 폭력과 파괴행위 등 노조 활동의 목적을 현저히 벗어난 경우는 예외다. 셋째, 법원이 손해배상액을 결정할 때 인용할 수 있는 적정 기준을 마련했다. 넷째, 영국 사례를 참조해 조합원 규모에 따라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액의 상한선을 만들었다. 합리적 수준의 손해배상 금액을 산정해 손해배상이 노동조합 파괴 수단으로 쓰이지 않도록 했다(<시사IN> 제387호 ‘당신이 만들어낸 노란봉투법’ 기사 참조).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개정안은 손해배상·가압류 피해자를 돕기 위한 노란봉투 캠페인의 결실이다. 시민 4만7547명이 모아준 14억6874만1745원 중 일부가 법률 개정 활동에 쓰였다. 법안이 만들어지는 데만 8개월이 걸렸다. 17대부터 19대까지 국회에 발의된 관련법을 검토하고, 해외 사례를 연구해 법안에 반영했다. 시민단체 ‘손잡고’가 두 달간 시민 1만2500명에게 입법청원 서명을 받아, 개정안이 발의되기 직전 정치권에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안은 6개월째 계류 중이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6월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되어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발의된 이후 현재까지 여야가 ‘노란봉투법’을 논의한 것은 단 한 차례다. 네 가지 개정 사안 중 합법 파업의 범위를 넓히는 첫 번째 조항에 대해서만 논의했다. 합의는 이루지 못했다. 은수미 의원은 “새누리당이 워낙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현 상황이면 19대 국회 통과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노동개혁 문제를 언급하며 “현행 제도에 경영상의 긴박한 이유가 없어도 해고할 수 있는 ‘일반해고’가 합쳐지면 최악이다. 노동3권을 규정한 헌법 33조가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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