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8.23 미디어오늘] 홀대받는 노동법 핍박받는 노동자, “법 뒤집어야”

홀대받는 노동법 핍박받는 노동자, “법 뒤집어야”

손배가압류 주제로 한 모의법정 처음 열려 “기존 법원 판단에 얽매여서는 안돼”

이하늬 기자 | hanee@mediatoday.co.kr   

 

“대학생들은 미리 공부를 해서 이런 근로기준법도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나는 학교를 못 가서 이제야 이런 것을 알게 됐는데,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으면 이 어렵고 한문투성이인 근로기준법을 보다 쉽게 공부할 수 있을 텐데….” 근로기준법을 보장하라던 전태일은 이런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1970년 11월이었다. 

 

4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노동자에게 ‘법의 정의’는 멀기만 하다. 특히 최근 노동자들을 옥죄는 건 손해배상청구소송이다. 쟁의행위에 대해 사용자들이 손배를 청구하기 때문이다. 가장 상위법인 헌법이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파업의 정당성 요건’이라는 하위법령에 따라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민사상의 손해배상책임과 업무방해죄 등 형사처벌을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노동자에게 청구된 손배 금액은 천문학적이다. 지난 해 기준 민주노총 사업장에 청구된 손배 금액 합계는 모두 1691억원에 이른다. 쌍용차지부 302억원,  KEC 300억원, 한진중공업 158억원, 철도노조 313억 원, 문화방송(MBC) 195억원 등이다. 손배가압류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도 두산중공업 배달호, 한진중공업 김주익 등 이미 여럿이다.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진 ‘대학생 친구’들이 지난 22일 서울대학교 우천법학관에 모였다. 제 1회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경연대회(모의법정)에서다. 국내에서 노동법을 주제로 모의법정을 개최한 사례는 거의 없다. 윤지선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 활동가는 “노동법이 로스쿨 필수과목도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모의법정에는 당사자인 쌍용차, 철도노조 조합원들도 참석했다. 

 

 

   
▲ 모의법정 결선 참가팀들이 노동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손잡고 제공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집행위원장인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이번 쟁의행위를 사유로 한 손배가압류 문제에 대한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경연대회’가 법조계의 변화를 요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한국 사회의 예비법조인들에게 노동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시민들에게 노동법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모의법정에는 총 16개 로스쿨팀이 신청했고 이 중 8개팀이 본선에 올랐다. 이날 모의법정 본선에 진출한 참가팀들은 정리해고 이후의 파업의 정당성과 이에 대한 회사의 손배 청구를 두고 법적 공방을 이어 나갔다. 이날 참가팀들은 무작위 추첨을 통해 원고-피고 지위를 부여받았다. 재판부로는 김선수 변호사, 최은배 변호사, 김진 변호사,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최석환 명지대 법학교 교수 등이 참석해 참가팀들을 평가했다.

 

김선수 변호사는 “이번 참가팀들이 기존의 대법원 판결이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근거로 논리를 전개한 부분이 아쉬웠다”며 “어차피 대법원 판단이 있으니까, 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법원 판단의 작은 틈이라도 파고들어 기존 판단이 변화할 때까지 주장해햐 한다. 법원과 헌재 입장을 변화 시키는 일을 하기를 바란다”라고 이날 모의법정을 평가했다. 

 

손배가압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과 함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과거에 집회와 시위는 범죄행위로 취급됐기 때문에 손배가 가능했던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 집회시위는 권리가 됐다. 이런 식의 손배가압류는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사문화됐다.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 일명 ‘노란봉투법’은 파업은 곧 불법이고, 불법은 곧 손배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합법적 노조활동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자 개인과 가족․ 신원보증인에게까지 손배를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법원 결정에 필요한 손배 기준 제시, 영국의 사례를 참고로 노조 규모에 따른 손해배상 상한액을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 

 

최우수상의 명예를 안은 서강대 학생들은 “기존의 법리를 뛰어넘어 새로운 법리를 만들려고 했던 점을 높게 평가받은 것 같다”며 “현행법은 노동자의 쟁의에 대해 주된목적과 부수적 목적으로 나누는데, 저희는 두 가지 모두 주된 목적이 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평소 손배가압류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방학 내내 준비를 했다”며 “최우수상을 받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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