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편지] "연대는 자기 자리에서도 가능합니다"
스타케미칼굴뚝농성 1년, 연극인과 함께한 대학로 문화제 뒷 이야기를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잡고 회원 여러분! 활동가 윤지선입니다.
지난 5월 26일 손잡고는 참여연대와 함께 '스타케미칼 굴뚝농성 1년 대학로 문화제'를 후원했습니다. 이날 문화제는 대학로 연극인들의 주최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밤 10시부터 다음 날 자정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연극인들은 "연대는 자기자리에서도 가능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멀리 경북 구미 칠곡군에 있는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서 고공농성 1년을 맞은 해고노동자 차광호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응원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펄쳤습니다.
이날 문화제를 주최하고 사회를 맡은 연극 <노란봉투>작가 이양구 씨는 "'연대는 자기자리에서도 가능합니다'라는 슬로건은 연극 <노란봉투>팀이 쌍용차 굴뚝농성을 지지방문했을 때 당시 굴뚝농성 중이던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이 인사로 보내온 메시지"라며 "멀리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연극 동네인 대학로에서 연극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퍼포먼스로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 차광호를 응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라고 이날 행사의 취지를 밝혔습니다.
'연대'에 의미를 둔 문화제인만큼 연극인들의 퍼포먼스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사사회, 노래공연, 역사학자 한홍구의 미니강연, 그리고 현장에 모인 시민들과 함께하는 퍼포먼스까지 이채롭게 꾸며졌습니다. 미처 참여하지 못한 회원 여러분들을 위해 문화제 일정을 따라가며 남겨 둔 사진자료와 함께 대학로문화제의 후끈했던 현장을 나눕니다.
시작은 '미디어뻐꾹' 감독의 다큐멘터리 [여기 사람있어요_스타케미칼 편_감독판]을 함께 관람했습니다. '미디어뻐꾹'은 올 4월부터 손잡고와 함께 손배사업장을 돌아다니며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영상기록을 하고 있는데요, 손잡고 SNS와 페이스북을 통해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들의 사연을 알리는 소개영상 3부작을 배포한 바 있습니다. 이날 문화제에서는 미리 배포한 영상과 별도로 '고공농성1년'을 주제로 해서 차광호 씨가 농성하고 있는 굴뚝의 환경, 그리고 차광호 씨의 가족과 해복투 동료들이 농성에 대한 심경을 담아 재편집한 15분짜리 '감독판'을 상영했습니다(아래 첨부한 영상을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다큐 여기 사람있어요_스타케미칼 편_감독판]
영상 상영이 끝나고 먹먹한 마음을 위로해 준 건 연극 <노란봉투> 팀의 '노란봉투 낭독공연'이었습니다. 이날은 1막 중에서 언제 올 지 모를 언론취재를 대비해 SM기계노조의 투쟁상황과 손배가압류 현황에 대해 가상인터뷰를 해보는 '병로'와 '지호'의 이야기를 낭독했는데요, 중간에 마이크소리가 잘 닿지 않아 연출이 무대에 깜짝 난입하는 등 야외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헤프닝도 더해져 지켜보는 시민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손잡고에서도 가만있을 수 없겠죠? 운영위원 가운데 역사학자로 활약하고 있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나서 '고공농성의 역사'에 대해 미니강연을 했습니다. 사실 20분 예상한 강연이었는데, 밤 늦은 시간에도 현장에 모여든 70명의 시민들이 보여준 열띤 호응에 힘입어 40분 강연으로 확대되었다는 후문입니다.
강연을 통해 한홍구 교수는 "차광호 씨가 굴뚝에 오른 5월 27일 새벽은 1980년 광주에서 시민들이 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했던 날"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비록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자 강주룡 씨가 고공농성 8시간으로 요구조건을 성사시킨 것에 비해, 이제는 노동자가 1년을 버텨도 그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역사 속 민주주의가 꽃 피운 것은 옳은 것을 위해 끝까지 버티는 민중의 힘이 있었다"는 한홍구 교수의 해석은 우리 안에 남아있는 '희망'을 역사를 통해 되짚어보게 했습니다.
강연 중간, 고공농성 1년을 맞은 차광호 씨와 전화연결을 하기도 했습니다. 차광호 씨는 "곳곳에서 연대하는 시민들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며 서울에서 문화제를 준비한 연극인들과 현장에 함께 한 시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차광호 씨는 "내 자식, 다음 세대가 우리와 같은 고통을 이어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며, 1년 쉽게 버틴 게 아닌만큼 끝까지 건강하게 투쟁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습니다. 자리에 함께한 시민들은 '힘내라'며 큰 함성과 박수소리로 응원을 보냈습니다.
문화제 후반에는 악단 '희망새'가 함께해 열띤 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희망새는 레미제라블 OST 번안곡을 비롯해 3곡을 불렀는데요, 마이크를 뚫고나가는 청아한 목소리에 남녀노소할 것 없이 빠져드는 모습 보이시나요?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생탁막걸리 불매 퍼포먼스 입니다. 또다른 고공농성 사업장이자 손배소 사업장인 부산 막걸리 생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당없는 휴일근무와 초과근무에 시달리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2014년 파업에 돌입했는데요, 결과는 약400일에 가까운 장기농성과 25명의 사장들이 노동자 10명에게 물린 1억2천5백만원이라는 거금의 손해배상청구입니다. 서울에는 팔지 않아 '장수막걸리'를 잘 모르는 분들도 많은데요,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충성도가 높아 이 지역에서만 팔리는데됴 전국매출 2위라고 합니다. 회사는 부당노동행위로 벌금까지 받았음에도 노동탄압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좋은 친구 생탁"이라는 회사의 슬로건에 맞선 생탁 노동자들의 "나쁜 친구 생탁" 불매운동을 지지하는 퍼포먼스를 시민들과 함께 했습니다.
한편, 스타케미칼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11명도 손해배상 2억을 청구당했는데요, 멈추어진 공장에 농성장을 차렸다는 게 손해 근거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11명의 해고노동자에게는 하루 550만원씩의 가처분도 떨어지고 있는데요, 연대하러 온 시민들이 붙여 준 응원 현수막을 걸고, 공장 벽에 응원 벽화를 그리고. 구호를 외쳤다는 게 이유라고 합니다. 해고 노동자들은 그동안 장기투쟁사업장 기금을 통해 투쟁을 이어왔다고 하는데요, 이마저도 올 2월로 바닥이 났다고 합니다. 이에 해복투는 6월 12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서울 남영역 1번출구에 있는 슘에서 투쟁기금 및 생계비 마련을 위한 후원주점을 합니다. 회원 여러분의 연대와 참여를 기다립니다.
이날 문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발걸음을 멈춘 시민들은 활동가에게 스타케미칼 고공농성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했습니다. '정말 1년 째 사람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건가요?', '왜 1년이나 사람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데 뉴스에서는 본 적이 없지?', '저 사람은 왜 굴뚝에 올라갔대요?', '스타케미칼은 뭐 하는 회사인가요?' 등. 다양한 질문 세례 속에서 활동가는 '알려내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무관심 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려내지 못해서 무관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나니, 더욱 더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해 소수자의 목소리를 알려내는 일을 제대로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더불어, 별다른 소개조차 하지 않은 채 테이블 한 켠에 살짝 얹어놓은 작은 모금함에 들어 있는 8만 1천원, 함께 참여했던 연극인들이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스타케미칼을 직접 소개하고 유인물을 나누어주는 모습,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공원에서 연극인들이 직접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누고 뒷정리까지 말끔하게 도와준 시민들, 그리고 멀리 밀양에서 방문해 연극인들의 연대에 의미를 더해준 밀양송전탑주민대책위 여러분. 문화제를 준비한 연극인들부터 참여해 자리에 함께 해 준 모두가 "연대는 자기 자리에서도 가능합니다"라는 이날의 슬로건을 빛내 준 주인공들이자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가 강연을 통해 이야기 한 '대한민국을 좌초시키지 않는 민중의 힘'의 주역이라고 힘주어 말해봅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2015년 6월 첫 주 활동가 윤지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