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_여기사람있어요_스타케미칼 편]매일 550만 원 물어내란다... 그래도 포기 못해

매일 550만 원 물어내란다... 그래도 포기 못해

[여기 사람 있어요!] 최장기 고공농성 스타케미칼의 아픈 기록

 윤지선 기자(yjs16)

스타케미칼을 아시나요?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은 지금 멈춰 있습니다. 그 멈춘 공장의 주차장에 11명의 해고자들이 노숙 농성장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굴뚝. 멈춘 공장의 굴뚝에 사람이 있습니다. 

스타케미칼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 '차광호'. 4월 1일, 농성 310일째를 맞은 그는 '최장기 고공농성자'라는 수식어를 얻었습니다(그 전까지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309일 고공농성이 최장기였습니다). 차광호 자신은 물론 그 누구도 원치 않은 수식어였다고 합니다. 그는 왜 멈춘 공장에, 그것도 45m나 되는 굴뚝에 올라갔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방적인 파산, 그리고 철거 앞에서 노동자에겐 밥줄이자 생명줄과 같은 공장을 지키기 위해서 땅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굴뚝 말고는 다른 길은 없었다."

청춘을 함께 한 한국합섬의 파산, 회사 정상화를 위한 노동자들의 고군분투가 10년째입니다. 잠시나마 새로운 사주를 만나 회사 정상화와 고용승계를 약속받고 부푼 꿈에 휩싸였지만, 그 꿈은 곧 희망고문이 됩니다. 시무식 날 회사는 '적자로 공장을 가동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2010년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은 산업은행으로부터 700~800억 원이 넘는 공장을 399억 원에 최종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104명의 노동자에게 고용승계와 공장정상화를 약속합니다. 그러나 회사는 약속과 달리 공장 재가동 19개월 만에 돌연 가동을 중단하고 폐업청산을 발표합니다. 적자가 이유였습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건 폐업청산이라던 공장은 아직 폐업신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청산된 것은 노동자들의 '고용'뿐이었습니다. 금속노조 한국합섬HK지회 조합원 104명을 포함해 총 250여 명의 직원 전원은 법적으로 고용관계가 완전히 청산됐습니다. 

2013년 분할매각 저지, 고용승계를 외치며 다시 3년간의 긴 투쟁을 시작한 스타케미칼 해고자들. 복수노조 설립, 회사의 파산, 희망퇴직 등으로 이제는 다 떠나고 11명의 해고자들만 남았습니다. 

하늘로 올라간 노동자, 땅에서 사라진 인권

계란으로 바위치기, 힘든 싸움이 될 거라는 주변의 우려 속에도 차광호씨는 굴뚝에서, 그리고 그의 동료, 홍기탁, 박준호, 박성호, 정병옥, 김옥배, 손남호, 조정기, 김덕원, 김진원, 고민각 등 10명의 해고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노동탄압 현실을 알려내기 위해 열심히 발로 뛰고 있습니다. 역시나 시작부터 장애가 많았습니다. 회사는 공장에 물도 전기도 끊어버렸습니다. 주차장에 농성장을 차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굴뚝에 올라간 차광호씨는 초반 약 100일까지는 거의 방치상태나 다름 없었다고 합니다. 

"초창기에는 밥이 뭐뭐 들어가는지 (사측에) 다 얘기해줘야 되고 그냥 들어가려고 하면 포장돼있는 밥을 다 눌러요. 못 먹게. 그래서 그거 갖고 많이 싸웠어요. 밥도 그냥 안 올라갈 때도 있고."


'굴뚝인' 차광호의 식사시간, 사측이 허락한 조합원 한 명을 제외한 어떠한 지인도 접근할 수 없게 막혀 있습니다. 하루 2번 밥 올리는 일도 그나마 희망버스가 오고 세상의 관심이 닿은 뒤에나 수월해졌습니다. 차광호씨의 굴뚝은 식사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그야말로 인권사각지대나 다름없었고, 그가 심리치유센터를 만나 상태를 검진할 수 있었던 것도 150일 이후에나 가능했습니다. 

지금 차광호씨의 심리치유를 담당하고 있는 성정미 심리치유센터 숲 대표는 '명백한 방치, 인권탄압'이라고 말합니다. 특히나 그가 농성을 하기 시작한 굴뚝은 공단 내에 위치한 데다 구미라는 지역 특성상 세간의 관심을 얻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땅 위의 해고자들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장기해고로 투쟁기금은 물론 생계비조차 여의치 않았습니다. 추석과 설에 특판 상품으로 김도 팔고, 피톤치드도 팔아가며 생계활동을 위한 재정사업을 벌였지만, 상급단체에서 나오는 장기투쟁지원금이 곧 바닥이 나기에 이후에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돈'과 관련된 시련은 가혹합니다. 멈춘 공장 주차장에 농성장을 차린 대가로 차광호씨를 비롯한 11명의 해고노동자는 1인당 50만 원씩, 총 550만 원을 매일 물어야 합니다. 사측은 또 해고노동자들에게 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한 상황입니다. '돈' 없는 노동자에게는 자신을 변론할 기회를 얻는 것도, 가족과 동료를 보호할 수단을 얻는 것도 모두 막막한 현실입니다.

단 3번뿐이었던 교섭, 자본은 꿈쩍도 안 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긴 투쟁기간 속에서도 변함없는 자본의 '냉대'입니다. 작년 5월 27일 이후 계절이 4번 바뀌었지만 교섭은 단 3번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내려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내려올 수 없는 것이죠. 그럼에도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는 싸움을 멈출 수 없습니다. 

지난 3월 22일, 내려오라는 동료들의 걱정어린 요청에 차광호씨는 이렇게 답합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 올라왔습니다. 300일이 넘는 동안 회사는 단 3번의 교섭을 했고, 어떠한 답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자본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이대로 얻은 것 없이 내려갈 수 없습니다." 

차광호씨는 농성 300일 되는 날 굴뚝에 오른 뒤 처음으로 머리카락과 수염을 밀었습니다. 더 이상의 날짜를 세는 건 무의미하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하루하루 새로운 마음으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갈 것이라고 합니다. 차광호씨는 다시 말합니다. 

"자본의 농탕질에 이대로 주저앉으면 스타케미칼 해고자들과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것입니다. 내 자식, 다음 세대가 같은 고통을 이어 받겠죠. 그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인권과 노동권이 무너져가고 있는 상황, 310일을 버텨내고도 자본의 냉대 속에 차광호 대표는 여전히 굴뚝 위에서 '노동자의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노동자들이 매일 매일 주문처럼 외치는 "민주노조사수", 노동자에게 민주노조가 어떤 의미일까요? 

앞서 밝혔듯, 스타케미칼 굴뚝에 희망버스가 도착하고서야 차광호씨는 매일 2회 식사를 안정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의미를 다들 아실 테지요. 노동자의 인권이 온전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연대와 관심이 닿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노동과 시민의 하나되기'가 왜 중요한지 '여기 사람 있어요, 스타케미칼 편'를 통해 들어보세요.

* 시민모임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 대표 조은, 고광헌, 이수호, 조국)는 미디어뻐꾹과 함께 기나긴 투쟁기록을 3부작 영상으로 엮었습니다. 


[여기 사람 있어요 #스타케미칼 제1부] - 청춘을 다 바쳤다



[여기 사람 있어요 #스타케미칼 제2부] - 하늘로 올라간 노동자. 땅에서 사라진 그의 인권



[여기 사람 있어요 #스타케미칼 제3부] - 310 최장기농성, 단 3번뿐이었던 교섭. 자본은 꿈쩍도 안했다

본 기사의 영상은 미디어뻐꾹(www.facebook.com/xxnnn21) 과 공동기획했습니다(촬영 기간 2월 10일~4월 1일). 미디어뻐꾹 페이스북과 손잡고 홈페이지(www.sonjabgo.org), 페이스북, 유투브에 중복게재합니다.

오마이뉴스에도 중복게재했습니다. 아래 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95390&PAGE_CD=ET000&BLCK_NO=1&CMPT_CD=T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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