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3.24 내일신문] "삶 파괴하는 손배가압류, 함께 막아요"

 

"대부분 장기해고자입니다. 애들 학비는커녕 아파도 병원 못 가고 쌀값마저 빌려야 하는 처지에 몰리다보니 정신적으로도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분들이 많아요."

손배가압류(손해배상청구·가압류)는 기업이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억압하는 가장 잔인한 수법으로 꼽힌다. 파업으로 손실을 입었다며 노조와 노동자 개인에게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을 청구하고, 압박효과를 높이기 위해 개인과 가족 등의 급여, 재산까지 가압류해 생계를 옥죄기 때문이다.

2003년 분신자살한 두산중공업 고 배달호씨 이후 최근 2년여 동안에도 쌍용차·철도노조·한진중공업·현대차비정규직 노조 등에 수십~수백업원의 손배가압류 판결이 내려지면서 세상을 등지는 노동자가 줄을 이었다.

시민모임 '손잡고(공동대표 조은·이수호·고광헌·조국)'의 활동가 윤지선(사진)씨는 손배가압류로 삶이 피폐해진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모임의 이름도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는 슬로건을 줄인 말이다.

시민 500명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손잡고는 지난달 26일 첫돌을 맞았다. 쌍용차 등 총 1700여억원 규모의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18개 사업장 피해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시작된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설립 당시 한 시사주간지 독자주부가 아이 태권도비 4만7000원을 기부하면서 시작된 이 캠페인은 아름다운재단이 모금을, 손잡고는 피해자 생계의료지원, 법률구조, 문화캠페인 등을 맡았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가수 이효리의 동참 등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연간 참여인원 4만7547명, 모금액 14억6874만원을 기록했다.

윤씨는 눈시울을 붉혀가며 밤새 기금신청서 속 피해노동자들의 사연을 일일이 확인했다. 법학·사회복지·노동·언론 전문가들이 만든 기금심의위원회는 대상자를 선정했다. 그 결과 329가구에 11억7000만원이 전달됐다.

윤씨는 시민이 노동 영역의 문제를 자신의 일로 여기고 서로 손을 맞잡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 그는 "시민과 노동이 하나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1차 피해자 조사 당시 500명으로 추산되던 지원신청자가 140명밖에 되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대부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니 나중에 받으려 신청을 미뤘다"고 답했다.

지원을 받은 후 "아빠 노릇하게 해 줘서 고맙다. 처음으로 세상이 따뜻하다고 느꼈다"며 "나도 캠페인에 동참하게 해 달라"는 노동자도 적지 않았단다.

손잡고는 현재 '노란봉투법' 입법청원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의 손배가압류 남용을 허용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노동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손배가압류는 그 자체로도, 소송에 질질 끌려가는 것 만으로도 일상을 망가뜨립니다. 시민과 노동은 하나입니다. 함께 바꿔나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