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2.06 한겨레] 쌍차 죽음에서 잠시 시선을 거두자

해고 뒤 세상을 떠난 쌍용차 노동자 26명이 신던 신발이다.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한 퍼포먼스. 살아 있는 누구의 신발이 27번째에 놓일지 모른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굴뚝에 올라간 해고자 대변인
죽음은 쌍용차에만 있지 않다
“현실 바꾸는 시민 연대” 역설

이창근의 해고일기
이창근 지음/오월의봄·1만6000원

 

광복 이후 가장 중요하고 뼈저린 사건으로 6·25전쟁과 나란히 꼽히는 세월호조차 1년이 못 돼 지겹다는 소리를 들었다. 7년째인 쌍용차 복직 투쟁에 부어졌을 피로와 무관심을 짐작할 만하다. 사소하지 않았다. 2646명이 한꺼번에 먹고살 길이 끊겼으며 26명이 자살하고, 급사하고, 병사했다. 해고 노동자의 가족 수천수만의 불행까지. 세상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어 어느새 사람이 죽어나가도 다수 언론에선 뉴스가 되지 못했다. 덮친 격으로, 무효 판결이 난 해고는 대법원에서 유효로 뒤엎였다. 2014년 11월13일, 원심 파기환송. 돌아가라는데, 돌아갈 곳이 없던 그들을 대표해 70m 굴뚝에 올라가 있는 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대변인으로 쌍용차 사태의 전말을 알려온 이창근씨의 칼럼 6년치가 묶였다.

 

어버이날에 받은 해고 통보, 공장 점거 농성 당시 사쪽의 수면가스 살포 계획, 자신이 새누리당원이라고 큰소리치던 진압 경찰 등의 사정들이 실핏줄처럼 쌍용차 사태의 큰 맥을 두르고 있다. 실직을 면한 이조차 초조함에 돌연사했고, 절반이 잘리다 보니 노동 강도가 두배가 된 현장은 해고의 공포로 굴러갔다. “힘들어? 그럼 그만둬! 대기하는 사람 많아.” 이런 형편도 있다.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대법원으로 가져가면서 쌍용차는 “선고를 앞당기라고 종용했고, 변호인단을 19명으로 구성했다. 매머드급이다. 그 가운데는 대법관 출신 2명과 고등법원장 출신 1명도 껴 있었다. 항소심 재판까지는 없던 인물들이다.” 이렇게 돈과 권력이 만든 사법 반전은 “재앙의 전조에 관한 문제”라고 지은이는 비관한다.

 

대법원의 선언은 방부 처리된다. 최후의 판단자인 법이 자기부정과 번복 끝에 최종심에서 해고 노동자들을 원점으로 돌려보냈다. 법은 질서 유지를 위한 악보다. 악보는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지휘자, 연주자마다 다른 음색을 낼 수 있다. 악보가 모든 사항을 시시콜콜 지시하고 있다면 단일한 연주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뼈대인 악보에 해석자가 피와 살을 입힌다. 같은 악보라도 구현의 수준은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법도 이와 같아서, 그 판단이 판마다 달라지는 것도 이해는 된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본 법의 모습은 뼈만 앙상했다. 힘없는 이들의 힘이 돼야 할 정의마저 야위어서, 더 절망했는지 모른다. 2013년에만 정리해고를 당한 이가 38만명이 넘는 나라. 누구나 제2의 쌍용차라는 재앙을 맞닥뜨릴 수 있다.

 

지은이는 쌍용차 사태를 한 사업장의 문제로 제한하지 말고 “비정규직 확산과 정리해고의 일상화라는 현실을 바꾸려는 힘과 연대”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기 위해 쌍용차 문제를 이슈화한 동료들의 잇단 죽음에 꽂힌 시선을 잠시 서늘하게 거둘 것도. “쌍용차 문제가 진정 해결되길 바란다면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을 빼고 생각해야 한다. 정리해고로 죽어나가는 사람은 쌍용차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만연한 정리해고를 해결하기 위해 나와 당신이 어떤 노력을 하고, 법과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로 접근”하자는 게 핵심이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이 빈말”이 되기 일쑤고, 향 냄새가 몸에 배도록 동료들 장례를 치른 그다. 모질어서가 아니다. ‘죽음에 이르는 해고’를 막으려면 애도로 끝나선 안 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해고자들이 회사와 국가에 47억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법의 흠”을 10만명이 4만7000원씩 내자는 움직임(‘노란 봉투’)으로 시민사회가 메운 경험. 법에 온기와 살집을 더한 건 시민들이었다. 박명일 땐 도시에도 지평선 비슷한 게 생긴다. 땅과 하늘이 만나 살끼리 접힌 자국 같은 따뜻한 그 선을, 지은이는 지상 70m에서 자주 찍어 에스엔에스에 올리곤 한다. 어쩌면 “법에만 맡겨둬선 어떤 해결책도 없”을지 모른다. 대한문 분향소에서, 노란 봉투로. 시민끼리 살을 맞댄 연대가 법보다 앞서 힘을 발휘한다는 교훈을 쌍용차 사태를 통해 얻어 왔다.

 

이 책의 인세 전액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짓는 ‘분홍 도서관’ 건립 비용으로 쓰인다. 그곳은 떠나간 동료 26명과 그 가족들, 모든 아이와 어른을 위한 도서관이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771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