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1.26 시사인376호] 무대 위에 펼쳐진 ‘노란봉투’

 

손배·가압류 문제가 무대로 간다.

11월25일부터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 <노란봉투>가 상연된다.

파업을 끝낸 노동조합 사무실이 연극의 배경이다.

 

팔짱을 낀 채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연출가 전인철씨가 핑퐁처럼 오가던 배우들의 대사를 끊었다. “표현하려는 게 정확히 뭐야?”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요?(웃음)” 배우의 넉살 좋은 대답에 팽팽하던 무대 위의 긴장감이 일순 무너졌다.

손배·가압류 문제가 무대로 간다. 11월25일부터 12월14일까지 3주간 서울 대학로 ‘연극 실험실-혜화동 1번지’에서 연극 <노란봉투>가 상연된다. 60일간의 파업이 끝난 후 손배·가압류와 징계 해고를 받은 한 기업의 노동조합에서 벌어지는 일이 연극의 큰 줄거리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연극 <노란봉투>에 참여한 배우들은 연극의리얼리티를 위해 몇 달간 공부하며 준비했다.  
ⓒ시사IN 신선영

연극 <노란봉투>에 참여한 배우들은 연극의리얼리티를 위해 몇 달간 공부하며 준비했다.


‘혜화동 1번지’는 관객과 배우의 거리가 불과 한 발자국 남짓한 50석 규모의 소극장이다. 첫 공연을 코앞에 둔 11월19일 저녁, 극장을 찾았을 때는 연습이 한창이었다. 무대는 노동조합 사무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그래서 뉴스에 우리 나온대?” “굴뚝에 올라가거나 거리에서 5년 정도는 살아야 뉴스에 나오지 않겠냐.” 조합원 조끼를 무대의상으로 갖춰 입은 배우들이 말한다. 두툼한 대본 속 활자는 무대 위에서 배우의 옷을 입고 뛰어다녔다. “과거로 들어가는 느낌으로 걸어줘” 따위 연출가의 막연한 부탁을 배우들은 천연덕스레 해내곤 했다.

티켓 가격이 전 좌석 1만원인 이유


자신이 아닌 타인을 연기하는 일이 직업이지만, 손배·가압류는 연극인들에게 낯선 주제 아니었을까. 연출을 맡은 전인철씨는 “대본이 늦게 나온 덕분에 공부 많이 했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연극이 기획된 시점은 ‘노란봉투 캠페인’이 한창이던 늦봄이었다. 극본을 맡은 극작가 이양구씨(극단 해인 대표)가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에 먼저 공연을 제안했다. 노동자들이 왜 파업을 하는지 연극이 질문하고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배우들은 연극의 리얼리티를 위해 대본이 준비되는 동안 하종강·한홍구·조국 교수 등을 초청해 손배·가압류 문제에 대한 세미나를 주도적으로 열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만나는 등 현장 방문도 여러 차례 했다. 

연극 <노란봉투>는 초대권을 없애는 대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티켓 가격을 낮췄다. 전 좌석 1만원이다. 연극인들이 재능으로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한 셈이다.

“그냥 ‘네 잘못이 아니야’ 이것만 나한테 자꾸 말해주면 돼.” “살아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딨겠어.” 나지막이 읊조리는 배우들의 대사가 관객석으로 날아와 꽂혔다. 마지막으로 기댔던 ‘법의 언덕’이 사라진 자리에 ‘억’ 소리 나는 줄소송만 남은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해야 할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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