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가압류’에 궁금한 세 가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해고 폭탄, 구속 폭탄에 이어 손해배상·가압류 폭탄이라는 삼중고와 마주한다. 영국·프랑스·독일·일본의 노동자들도 그럴까? 파업으로 인해 ‘불법 인간’이 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다.
전혜원 기자 | woni@sisain.co.kr
“나는 왜 노조 활동을 했나?” 쌍용자동차 해고자 김종현씨(가명·43)는 2009년 옥쇄파업에 참여한 뒤 이 질문이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파업 뒤 곧바로 구속돼 7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신경안정제를 먹으며 버텼다. 가족 이름으로 빚이 2억원 남았다. 쫓겨나면서 받은 퇴직금은 5800만원이다. 그 가운데 2900만원은 회사 측이 건 손해배상 가압류에 묶였다. 나머지는 퇴직금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으로 빠져나갔다. 16년을 일하고 그가 손에 쥔 퇴직금은 고작 3만7650원이다.
결혼 8년 만에 3000만원 대출을 안고 장만한 아파트는 경찰에 가압류돼 처분할 수도 없다. 법원은 이를 기각했지만 경찰이 바로 항소했다. 김씨는 보험설계사, 대리운전, 공사장 일을 전전했다. 시중은행 대출 한도가 꽉 차서 사금융에 손을 벌렸다. 빚 5000만원이 더 늘었다. 지방법원 후원으로 중학교 교복 값과 상장을 받은 초등학생 아들은 단상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받기 싫습니다. 법이 있다면 해고자도 없어야 하는데… 우리 집 형편이 어려워서 받습니다.”(<시사IN> 제331호 커버스토리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참조).
김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해고 폭탄, 구속 폭탄에 이어 손해배상·가압류 폭탄이라는 삼중고와 마주한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2014년 2월 기준으로 노동계에 제기된 손해배상·가압류 총액은 1691억여 원에 이른다. <시사IN> 독자 배춘환씨가 씨앗을 뿌린 ‘노란봉투 프로젝트-우리가 만드는 기적 4만7000원’을 계기로 <시사IN>은 다른 나라에도 우리처럼 ‘손배 폭탄’이 떨어지는지 추적한 바 있다(<시사IN> 제336호 ‘영·프·독·일 노동자에겐 손배 폭탄이 없다’ 참조). 이 기사와 같은 주제로 한국노동법학회와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쟁의행위와 책임’이라는 국제 학술대회가 지난 9월26일 열렸다. 노동법이라는 딱딱한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문답으로 풀어 5개국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펴보았다.
독일에서는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나 노조 간부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판례가 존재하지 않는다. 2014년 9월22일 독일 아마존 직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영국·프랑스·독일·일본·한국 가운데, 정리해고에 문제 제기를 하는 파업 자체가 불법인 나라는?
정답은 한국. 파업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하면서도 한국 법원은 파업의 정당성을 좁게 해석하고 있다. 법원은 정리해고를 ‘경영권’ 또는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 단체협약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나아가 정리해고 반대 쟁의행위를 하면 업무방해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프랑스에서도 우리와 똑같이 파업권은 헌법상 권리다. 그런데 한국과 달리 프랑스 법원은 개인의 권리를 넓게 인정해준다. 파업권은 본질적으로 사용자의 경제적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기에 사용자의 경제적 자유권보다 우위에 둔다. 프랑스법에서 쟁의행위 대상은 ‘직업적 요구’로 정의된다. 직업적 요구에는 사회보장, 의료, 실업, 연금 등이 포함된다. 정리해고는 말할 것도 없고 2006년 라미루티(Lamy Lutty) 사 노동자들이 벌인 대정부 연금 투쟁도 합법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사탕을 생산하는 회사의 고용주가 아니라, 정부와 의회가 결정한 퇴직연금 삭감에 반대하는 쟁의를 벌였다. 법원은 합법 파업이라고 인정했다. 프랑스에서는 민영화 반대 파업 역시 합법으로 인정받았다. 2005년 마르세유 시 전철과 버스를 담당하는 공기업 RTM 노동자들은 마르세유 시가 새로운 전차 노선을 민영화하려 하자 반대 파업을 벌였다. 사용자인 RTM 사는 시의 결정이라 회사는 어쩔 수 없다며 노동자들의 쟁의행위가 불법이라고 주장했지만, 프랑스의 대법원인 파기원(Cour de Cassation)은 “근로자들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용자 능력은 파업의 정당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고 판시했다.
영국에서도 정리해고 반대는 정당한 파업 범주에 속한다. 지난해 12월 영국 공영방송 BBC 기자들이 정리해고에 반발하며 24시간 한시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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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정리해고 반대 파업은 합법이다. 공장을 폐쇄하고 근로자를 해고하려는 사용자의 계획에 반대하는 파업은 합법으로 인정받는다. 나카쿠보 히로야 교수(히토쓰바시 대학)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12년 596건의 노동쟁의 가운데 해고 반대가 148건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에서는 경영권으로 인정받아 불법 파업으로 여겨지는 사업 축소나 회사 이전 반대 노동쟁의도 12건이었다. 나카쿠보 교수는 “만약 노동조합이 사용자에게 공장 폐쇄 계획이나 신기계 도입 계획의 철회를 요구하는 파업을 벌인다면, 법원은 해고 반대와 같이 조합원들이 받는 영향에 대한 묵시적 요구들을 발견할 것이고 해당 파업은 정당성의 범위 내에 있다고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노동법원을 따로 두고 있는 독일에서는 사업의 이전이나 폐쇄와 같은 ‘경영적 판단’이 단체협약의 대상이 되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만약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파업이라면 그것은 불법이다. 해고가 정당한지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이다(독일에서는 근로자 대표위원회 등을 통해 노동자가 경영상의 결정에 참여한다). 그러나 기업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구가 있어도, 단체협약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 파업의 정당성은 문제없이 유지된다고 독일 노동법원은 판단했다. 이 때문에 독일 노조는 경영 조치의 철회를 요구하는 대신 단체협약을 통해 실리를 추구한다. 예를 들면 독일 금속노조는 독일 기업이 해외 이전을 추진하자, 반대 파업을 벌이지 않고 단체협약으로 실리를 챙겼다. 최소 3개월, 근속연수 1년마다 1개월을 추가하는 식으로 해고 예고기간의 연장을 요구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3년간 임금을 지급했고 노동자가 새로운 직업을 찾는 데 드는 비용도 부담했다.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민사책임(손해배상)이 이뤄지고 있는 나라는?
이 문제 역시 정답은 ‘한국’뿐이다. 현재 시점만 놓고 보면 ‘손배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곳은 한국뿐이다. 한국 대법원은 손해배상 청구가 면책되는 정당한 쟁의행위 기준으로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여야 하고, 단체교섭과 관련한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해야 하며, 시기와 절차도 법령에 따라 정당하고, 폭력이나 파괴 행위를 수반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즉, 손해배상을 면할 수 있는 쟁의행위가 되려면 주체·목적·절차·수단 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어긋나면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는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라는 형사처벌 대상이고, 민사적으로는 손해배상 책임이 뒤따른다.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근거이다.
프랑스에서도 손해배상은 있었다. 1979~ 1980년 공기업인 르노 사가 공장에서 태업을 했다는 이유로 프랑스의 주요 노동조합인 CGT(우리로 치면 민주노총)를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했다. 법원은 2900만 프랑(약 20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르노 사가 소를 취하해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이 사건은 민사 책임의 존재가 노동조합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1981년 프랑스 사회당이 선거에서 승리했고, 이듬해 10월 초 의회는 쟁의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노동자 개인, 노동조합의 간부와 조합원, 노동조합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금지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헌법원은 1982년 10월22일 해당 법안이 피해자의 권리, 법적 평등, 공적 책임의 평등이라는 면에서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2주 뒤인 11월9일, 우리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파기원이 직장 점거와 파괴, 훼손이 발생했던 뒤비종 노르망디 사건에 대해 판결하면서 중요한 원칙들을 세웠다. 노동조합은 오로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것과, 과실이 있는 사람은 오로지 그의 과실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또한 손해배상의 입증 책임을 회사에 지우면서 손배 실효성이 떨어졌다. 예를 들면 1994년 불법적인 공장 점거가 이뤄졌고, 사용자는 파업 불참자들에게 지급한 임금만큼 노동조합이 배상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파기원은 불법 점거와 파업 불참자가 노동을 하지 못한 것 사이에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공장 차단은 입증됐으나, 법원은 파업자들이 공장을 차단하지 않았더라도 파업 불참자들이 할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피케팅과 임금 상실 간 인과관계도 입증되지 않았다. 그래서 파기원은 노동조합의 과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1프랑’으로 평가한 것은 옳다고 판결했다.
2007년 EDF(국영 전기공급사) 사건에서는 노동조합이 전기와 가스의 차단을 직접 지시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입증된 노조의 지시는 시간적으로 보면 아침의 손해에 관한 것인데, 사용자는 저녁의 손해를 배상받으려고 했다며 법원은 손해에 대한 노동조합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노동쟁의와 손해배상을 연구한 사례 자체가 없다.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공법과 유럽 노동법을 가르치는 키스 유잉 교수는 “사용자가 계약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고 보고된 마지막 사례는 1959년이고, 그 전 사례는 1927년이다”라고 말했다. 유잉 교수는 그 이유를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무기로 이용하는 문화가 영국에 없다는 것과 미래의 노사관계를 위해서라도 굳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들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1906년 노동분쟁법은 노동조합이 불법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하지 않도록 했다. ‘노동조합을 법 위에 둔다’는 우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면책은 1971년 폐지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이후 다시 입법되었다가 대처 정부 집권 뒤인 1982년 사라졌다. 의회는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부활시키면서 대신 노동조합 규모에 따라 손해배상액에 한도를 두었다. 예를 들면 조합원 10만명 이상인 노동조합이 청구당할 수 있는 손해배상액은 최대 25만 파운드(4억2512만원)라고 상한선을 둔 것이다. 30년이 지났지만 이 상한선은 개정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례가 없어 사문화되었기 때문이다.
독일도 이론적으로는 불법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볼프강 도이블러 교수(브레멘 대학)는 “노동조합이 손해배상을 청구받는 일은 매우 드물고 법원이 사용자를 지지하는 판결을 내리는 경우는 더 드물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부분의 사례가 1950년대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거액 소송이 사회문제가 된 것은 1970년대이다. 일본 국유철도(국철)가 1975년 11월부터 12월에 걸쳐 8일간 ‘파업권 쟁취 파업’을 벌인 노동조합 두 곳에 202억 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당시 공공사업체의 노동자들에게는 파업권이 없었다). 민영화 반대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는 소송이었다.
최근 일본에서는 파업 자체가 줄어들면서 노동조합이 사용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는 이례적인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2012년 8월 미에 현에 있는 병원에서 노동조합이 파업을 벌이자, 회사는 법원에 파업중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그런데 법원은 합법 파업임에도 가처분 신청을 받아주고 파업 금지 처분을 내렸다. 이후 노동조합은 병원장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이 파업권 침해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가처분 신청을 받아줬던 같은 법원의 다른 판사는 ‘사용자가 노동조합에 배상금 165만 엔(약 16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나카쿠보 교수는 “무파업 상태에 익숙해지게 되면 사람들(판사)은 파업이 노동자의 합법적인 무기라는 걸 잊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파업을 한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를 둔 나라는?
정답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만 형법에 업무방해죄가 남아 있다.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대한 형법상 제약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집행이 이뤄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나카쿠보 교수는 “정당하지 않은 파업에 대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런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파업을 이유로 한 형사처벌’이 1875년에 이미 폐지됐다. 평화적인 노무 제공 거부만으로 감옥에 갈 일은 없다.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고 평화적인 피케팅을 벌이면 체포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우리로 치면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단결공모죄는 1864년 폐지되었다. 프랑스는 앞서 언급한 대로 1946년 파업권을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인정했다. 프랑스에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쟁의행위의 합법성을 인정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2008년 동료가 산재 보상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선원 시위대는 지역 해양기관의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파업에 해당하지 않는 불법 쟁의였다. 3시간 동안 진행된 시위로 사무실 직원들은 근무를 할 수가 없었다. 항소법원은 노동의 자유에 대한 방해죄로 처벌했다. 그런데 파기원은 “노동의 자유에 대한 실질적 방해가 아니라 단순한 곤란”이라며 항소법원 결정을 파기했다. 파업에 해당하지 않았지만 폭력 행위는 없었고 3시간 동안만 진행되었다는 점을 인정해 노동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독일에서도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어떤 파업도 형사처벌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 노동자나 노동조합 간부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판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폐업이 잦았던 1950~ 1960년대에도 사용자는 노동자를 고소하거나 고발해 교도소로 보내지 않았다. 도이블러 교수는 “왜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노조 대표가 폭력배 두목처럼 1~2개월 교도소에 보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노동자들 사이에 연대감이 생기고 회사나 법원에 대한 비난이 신문과 텔레비전에 등장할 것이다. 이는 독일 노사관계의 전형인 사회적 동반자 관계를 교란시키게 된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