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23 한겨레] 의사 수술이 범죄인가, 쟁의행위도 범죄 아니다

 

▲ 대법원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으로 분류돼 독수리 5형제라고 불렸던 김지형 전 대법관은 법원 내에서도 손꼽히던 노동법 전문가였다. 퇴임 뒤 노동법연구소 해밀을 설립한 그를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해밀 사무실에서 만났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토요판] 손잡고 / 한겨레-손잡고 공동 기획 
(9) 김지형 전 대법관 인터뷰

 

▶ 손잡고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 손해배상과 가압류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시민모임(누리집 www.sonjabgo.org)입니다. 한겨레는 손잡고와의 공동기획으로 매주 손배 가압류의 현장을 찾습니다. 손배 가압류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와 현장 제보 handinhand@hani.co.kr, 후원계좌 신한은행 100-029-977980(예금주 손잡고).

 

 

“왜 불법 파업을 옹호합니까?”

 

<한겨레>가 ‘손잡고’와 공동기획으로 지난 두달여간 11곳의 손해배상 가압류 현장을 조명하자, 몇몇 독자들이 질문을 해왔다. 질문은 손배 가압류로 신음하는 노동자들이 ‘합법’이 아닌 ‘불법’ 파업을 해 기업에 피해를 줬고, 이에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이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가 있다. 그동안 사법부는 파업을 포함한 쟁의행위가 형법상 업무방해죄,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 해당되지 않으려면 여러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판결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손배 가압류는 단지 노동자들이 법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일까.

 

노동자들이 겪는 손배 가압류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전직 대법관인 김지형(56) 해밀 노동법연구소장을 만났다. 2005년 대법관으로 임명된 김 소장은 6년의 임기를 마치고 1년 뒤인 2012년 노동법연구소 ‘해밀’을 발족했다. 사법적 최종 판단 기관인 대법관이었던 그가 그동안 불법 판정을 받아온 손배 가압류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인터뷰는 8월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해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법률가로서 손배 가압류 문제를 어떻게 보나?

 

“우리 사회의 난제 중 난제라고 본다. 노동법이 적용되는 거의 모든 쟁점들이 손배 가압류 문제와 얽힌다. 또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전체 법체계를 건드려야 한다. 그동안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는 본질적으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라는 형사처벌의 대상이고, 민사적으론 손해배상의 책임이 뒤따르는데 특별한 요건들을 갖추면 ‘정당행위’로 면책해주는 것이 우리 판례의 뼈대였다. 즉 ‘원래 범죄행위지만, 예외적인 경우 정당하다’는 구조다. 과연 이런 논리 구조가, 법 해석이 적절한 것일까 하는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쟁의행위는 본래 범죄행위지만 
예외적인 경우 정당하다는 게 
그동안 판례의 논리구조 
이런 법해석이 적절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경영권 보장하면 노동자 이익’ 
‘정리해고는 해고가 아니다’ 등 
문제적 판결은 학계서도 논란 
손배가압류는 난제 중 난제지만 
우리 사회가 꼭 풀어야 할 숙제

 

 

유엔도 폐지 권고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

 

- 그럼 어떻게 봐야 하나?

 

“법 해석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쟁의행위 자체가 정당한 권리행사이고, 권리의 남용 등 예외적인 경우에 처벌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이런 비교를 해볼 수 있다. 의사가 하는 수술이 환자의 몸에 상처를 내고 신체기능을 훼손하는 형법상 상해죄에 해당되지만, 치료를 위한 불가피한 행위일 경우 위법성이 조각되는 ‘정당행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법률가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수술은 그 자체로 법적으로 문제삼는 행위가 아니다. 쟁의행위도 마찬가지다. 우리 헌법은 제33조에서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적고 있다. 이는 소유권처럼 그 한계를 법률로 정한다는 식의 ‘법률유보’ 조항조차 없는 기본권이다. 단체행동권은 그 자체로 회사의 업무 지장을 초래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도 법률유보 조항이 없다. 그만큼 우리 헌법이 단체행동권을 비중있게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 그 관점이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현실적인 법적용에 있어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물론 구체적 사건에 있어 결론이 똑같을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분명히 다른 결론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2011년 3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대법관 13명이 참여하는 재판) 판결이 하나의 사례다. 당시 ‘파업이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 운영에 심대한 혼란이나 막대한 손해를 초래한 경우에만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해 기존의 ‘정당행위로 인정받지 못한 쟁의행위는 무조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해당된다’는 판례를 뒤집었다. 나는 그 판결에도 반대해 5명의 대법관과 함께 소수의견을 냈고, 해당 의견의 대표집필을 맡았다. 그때 쟁의행위가 계약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채무불이행으로 형사적 처벌 대상이 아니고, 특히 단체행동권의 행사로 폭넓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권이 인정받으면서 사라졌고, 한국과 일본만 관련 법제도가 남았으나 실질적으로 우리만이 적용하고 있다는 점도 기술했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나 유엔에서도 누차 폐지 권고를 했던 법규다.”

 

- 현장을 다니면서 노동자들에게 ‘파업 자체가 손해를 초래하는 것인데, 그 손해를 다 청구하면 어떻게 파업을 하냐’는 자조 섞인 말을 꽤 들었다. 불현듯 이 발언에 헌법적 원리가 담겼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말에 적절한 논리를 덧붙여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법률가나 입법에 관련된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헌법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현실 행위와의 관련성을 세밀하게 논증하고, 두 개의 기본권이 충돌할 때 무엇이 우선해야 하는지, 침해되는 권리는 어느 정도까지 용인이 가능한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입법도 힘을 받을 수 있다.”

 

- 결국 손배 가압류는 법 개정을 통해 풀어야 하는 문제인가?

 

“입법만이 아니라 법 해석에 대한 문제제기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즉 입법론과 해석론,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 입법만으로 풀려고 하면 앞서 제기했듯이, 왜 불법을 옹호하느냐, 왜 불법을 용인하는 범위를 더 넓혀줘야 하느냐는 비판에 직면한다. 이런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기존의 법 해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날카로운 성찰과 연구가 이뤄져야 하고, 그걸 토대로 새로운 입법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해석론과 입법론 쌍끌이 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 대법원의 법 해석은 실로 큰 영향을 미친다. 정리해고·민영화 등이 경영권에 속하고, 근로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도 대법원이 2002년에 내린 판결이다. 이런 법 해석은 어떻게 보나?

 

“헌법은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근로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근로자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이라는 목적을 실현하는 데에 관련이 있으면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간접고용과 정리해고에 반한 쟁의행위가 안 된다는 법 해석은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동안 우리 판례는 근로조건의 범위를 아주 좁게 해석하고, 특히 경영자의 전적인 권한 사항에 대해서는 노동쟁의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판단이 헌법적인 근거가 있는지, 노조법의 명문에 비춰볼 때 정당한 해석인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무엇이 쟁의행위의 범주에 들어가는지도 추려볼 필요가 있다.”

 

 

법리 왜곡한 접근, 법률가로서 영혼 파는 행위

 

- 대법원은 한해 뒤인 2003년 ‘경영상의 조치가 원칙적으로 노동쟁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선고하며 판결문에 “이렇게 해석할 경우 우선은 그 기업에 소속된 근로자들의 노동3권이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과도기적인 현상에 불과하고, 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투자가 일어나면 더 많은 고용이 창출되고 근로자의 지위가 향상될 수 있으므로 거시적으로 보면 이러한 해석이 오히려 전체 근로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 길이 된다”고 적었다. 한마디로 파이가 커지면 모든 경제주체가 혜택을 받는다는 경제학의 고전적인 논리인데, 역사적으로 이에 대한 반증 사례와 시장의 실패 사례는 무수히 많다. 대법원이 좀 무리한 논리를 내세운 것이 아닌가?

 

“해당 판결문은 정리해고뿐 아니라, 다른 기본적인 근로조건도 모두 허용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는 논리다. 사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논란이 많은 판례 중 하나다. 그 판결문의 논리가 경제학적인 시각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 노조법은 노동쟁의를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분쟁 상태’라고 정의했고, 사법부는 ‘정리해고는 경영권에 속하므로 노동쟁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명문의 규정과 사법부의 법 해석을 조합해 연역적인 추론을 하면 ‘정리해고는 해고가 아니다’는 결론에 이른다. 누가 봐도 이상한 결론이 된다.

 

“노조법에 근로조건 중의 하나로 해고를 명시했고, 그 어디에도 정리해고를 제외한다는 규정이 없다. 그런데도 그것을 근로자 쪽이 불리하게 근로조건의 범위를 축소해 해석하는 것이 노동법의 취지에 비춰볼 때 과연 적절한가라는 논란이 분명히 있다.”

 

- 과거 국회에 제출되고 폐기됐던 입법안 중에는 ‘파괴·폭력행위를 제외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런 법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좀 지나치고, 국민적 동의를 받기 어렵다고 본다. 이 문제를 손해배상 청구권의 제한으로 풀려고 하면, 형평이나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 정당한 권리행사로서 쟁의행위의 범위 자체를 재정의해야 한다. 쟁의행위가 권리행사로 인정받게 되면 손해배상을 따질 때 행위자의 고의나 과실의 입증 등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다. 지금은 쟁의행위가 자연스레 범법행위가 되기 때문에 이런 과정이 생략돼 있다. 또 모든 요건을 갖춰가며 파업을 했는데, 실행하는 과정에서 일부 폭력행위가 수반된 경우 전체 쟁의행위 자체가 불법이 되고 손해배상 책임이 뒤따른다. 이런 경우엔 폭력행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손해에만 책임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현행 법리만으로도 한번 따져볼 만한 해석론적인 문제다.”

 

- 상당수 노동자들은 법이 부당노동행위에 관대하고 쟁의행위에는 엄격하다는 법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 법 감정이 있을 수 있다. 검찰이 부당노동행위 사건을 기소하는 경우가 드물고, 재판에 가더라도 법원이 기업 쪽에 부당노동행위의 주관적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를 엄격하게 따진다. 주관적 의사는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위법 판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사실 부당노동행위는 연구가 필요한 분야다. 부당노동행위 자체가 대표적인 미국의 노동법 제도다. 따라서 법 적용 사례도 미국에 많은데, 국내 법학자와 법조인들이 대부분 대륙법에 정통하다. 상대적으로 연구가 덜 된 분야다.”

 

- 상당수의 손배 가압류 사업장이 창조컨설팅이란 업체가 개입한 곳이다. 이 업체에서 복수노조 제도와 공격적 직장폐쇄, 손배 가압류를 악용해 노조를 무너뜨리려 했다는 문건이 나오기도 했다. 이 업체에 대해 어떻게 보나?

 

“특정 업체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만 지난해부터 노동법연구소에서 아카데미 과정을 운용하면서 그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우리 과정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내변호사도 오고, 노조 쪽의 변호사들도 참석한다. 사내변호사는 기업의 시각으로 노동법을 바라보고, 노조 쪽 변호사는 노동자의 시각으로 본다. 두 시각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결국 노동법이란 권리가 어디까지 미치고 어디에서 그치는지 그 접점을 찾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기존 법리를 악용하거나 묘하게 왜곡해 노동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것은 법률가로서 영혼을 파는 행위다.”

 

- 그저 본인의 철학이겠지만, 누군가는 뜨끔할 수 있겠다. 전직 대법관으로서 대법원이 내린 여러 판결과 다른 법 해석을 얘기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가?

 

“손배 가압류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인 의제이자, 숙제다. 그 숙제를 풀기 위해 세부적인 쟁점이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논의돼야 하는지, 드러내어 얘기해보자는 취지로 여러 말을 했다. 개인적인 견해를 드러낸 부분도 내 주장이 옳다기보단 이런 부분에서 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논점 정리 차원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손잡고와 함께 학술대회 준비 중

 

- 대법관 시절 기억에 남는 노동 관련 판결이 무엇인가?

 

“출퇴근 시의 사고가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느냐는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는데, 근소한 차이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기존 판례가 유지됐다. 그때 공들여 반대의견을 썼다. 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불법파견의 경우에도 2년이 지나면 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판결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기존 판례가 바뀌어 이후에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에 해당되고, 해당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로 이어졌다.”

 

- 퇴임하고서 노동법연구소 해밀을 차렸다.

 

“퇴임하고 보니 노동연구소는 많은데, 노동법연구소를 표방한 곳은 없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노동법을 연구하고, 현실의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해밀은 1년에 두차례 아카데미 과정을 운영하고 노동법 포럼을 여는 등 싱크탱크 역할을 지향한다. 앞으로 연구 성과를 모아 출판하고, 현안에 대해 이슈페이퍼도 낼 계획이다. 손잡고와 함께 손배 가압류에 대한 학술대회를 열 준비도 하고 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6523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