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16 한겨레] 모금으로 124억 갚았는데 다시 201억 폭탄

 

[토요판] 손잡고 손배 가압류의 현장 (8) 철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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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노란봉투와 같은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11일 전국철도노동조합의 김영준 미조직비정규국장은 올 초부터 시작된 ‘노란봉투’ 캠페인을 보며 남다른 소회를 느꼈다고 했다. 철도노조는 이미 두 차례 모금 캠페인을 통해 회사가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을 변제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정리해고에 맞선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배상금을 회사에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노란봉투 캠페인의 단초가 되었듯이, 2003년과 2006년 각각 3일간 진행된 두 차례의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금액이 확정되자 철도노조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하기 시작했다. 단순 모금이 아닌, 채권을 발행해 2년 뒤 되돌려주는 방식이었다.

 

“나중에 돌려줄 돈이긴 하지만, 손배와 대량 징계를 대비해 조합비를 인상한 상태에서 발행한 채권이었어요. 그것도 처음엔 무이자로 발행한 20만원짜리 채권을 많은 조합원들이 사주었죠. 2009년 36억원을 모금했고, 2010년에 다시 60억원을 모았습니다.”

 

 

2003년과 2006년 파업 손배소로 
채권 발행하는 모금 캠페인 하자 
많은 노조원들 불만 드러냈지만 
노조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두 번에 걸쳐 36억과 60억 모금

 

다시 2009년 2013년의 파업으로 
손배액 201억원, 가압류 116억원 
정부의 철도민영화 등 결정이 
근로조건에 해당되지 않아 
불법파업이라는 법해석 때문

 

 

철도민영화가 근로조건과 무관한가

 

▲지난해 12월31일 파업을 철회하고 업무 복귀를 선언한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수색역에서 내려 수색차량사업소를 향해 선로를 건너가고 있다. ‘수서발 고속열차 자회사 설립’을 둘러싼 이견으로 23일간 진행된 이 파업에 대해 철도공사 쪽은 16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철도노조는 노조원들의 모금으로 총 124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금을 변제했다. 2003년 6월과 2006년 3월 두 차례의 파업에서 노조가 받은 손해배상 금액은 각각 24억원과 69억원이었다. 이 중 69억원은 항소와 상고를 거치며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변제금액은 100억원에 달했다. 노조가 손해배상을 떠안은 이유는 이들이 벌인 파업이 불법이 됐기 때문이다. 합법적으로 진행한 파업은 손해배상 책임이 면제되지만, 철도노조의 파업은 그렇지 못했다. 2003년 파업은 목적이 ‘근로조건’이 아닌 ‘철도공사법 입법’에 대한 반대였기 때문에 불법이 됐고, 2006년엔 정부의 직권중재에 따르지 않고 파업을 진행했다는 점이 불법의 이유였다. 백성곤 철도노조 교육선전실장은 “2003년 당시 철도청을 철도공사(코레일)로 만드는 입법안은 철도 민영화의 흐름을 타고 진행된 것이었다. 철도 민영화는 임금, 고용안정,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 전반에 직결되는 사안일 뿐 아니라, 국민들의 이동권, 교통비 부담, 안전 등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이를 반대하는 것을 불법으로 모는 것은 부당하다. 또 직권중재 기간에 쟁의를 할 수 없다는 법규가 위헌, 노동권 침해 논란으로 폐지된 것을 감안하면, 이를 이유로 한 손배 청구 역시 과도하다”고 밝혔다.

 

법적인 결론이 난 손해배상금이지만, 노조원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백 실장은 “채권을 발행하는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많은 노조원들이 그걸 우리가 왜 갚냐는 불만이 많았다. 그렇지만 갚지 않으면 노조가 무너지고, 이어서 노조가 지원하는 해고자들의 생계가 어려워지며 순차적으로 일반 노조원들마저 가압류의 고통에 시달릴 것이라고 봤다. 노조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금 캠페인의 한계를 뚜렷이 알았다. 김 국장은 “손해배상금을 갚아주거나, 생계비를 지원한다고 손배 가압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합법 파업을 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현실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가 있다. 손해배상 청구액을 다 변제해도 철도노조가 처한 상황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도노조는 2009년과 지난해, 각각 8일간과 23일간 진행한 파업으로 손해배상 청구금액 총 201억원과 가압류 116억원이 걸려 있다. 2009년 파업은 목적부터 노사간 입장이 엇갈린다. 노조는 회사의 일방적 단체협약 해지가 파업의 이유였다고 주장하고, 회사 쪽은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계획 반대 등 노조가 ‘근로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불법적인 목적을 내세워 파업을 진행했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회사 쪽의 손을 들어줬다. 2012년 11월 대전지방법원은 노조 쪽의 업무방해를 판단한 재판에서 “철도노조가 공기업 선진화 반대, 해고자 복직, 손해배상 소송 철회 등 경영에 대한 사항으로서 쟁의행위의 목적을 삼을 수 없는 주장을 해 ‘목적의 정당성’ 요건을 결여했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연말 진행된 파업은 ‘수서발 고속열차(KTX) 자회사 설립’을 둘러싼 이견 때문이었다. 철도공사는 파업이 채 끝나기도 전인 지난해 12월19일 철도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철도공사는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노동)조합은 수서발 케이티엑스 설립을 철도 민영화로 규정짓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쟁의행위 돌입에 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철도 민영화 저지는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 내지 철도산업 경영주체의 고도의 결단 내지 경영 판단에 기초하는 경영자의 고유한 권리 영역에 속하는 사항으로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어서 애초에 쟁의행위의 목적이 될 수 없음”이라고 적었다.

 

결국 철도노조의 파업이 불법이 된 근본적인 이유는 ‘철도 민영화’를 비롯해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와 경영진들의 결정이 ‘근로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법 해석’ 때문이다.

 

 

전체 노조원 8000명이 징계 대상

 

철도노조는 ‘민영화’만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없다고 반박한다. 백 실장은 “수서발 케이티엑스 자회사를 운영하려면 공사의 직원을 보내야 한다. 국토부에서는 자회사 설립으로 인력 감축과 급여 인하 효과 등을 분석했다. 이는 근로조건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주장한 ‘자회사 설립을 통한 경쟁 효과’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정부는 ‘경쟁시스템 도입’으로 부실한 철도공사를 개혁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철도노조는 “수서발 케이티엑스는 흑자가 예상되는 알짜 노선으로 기존 노선과 경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입장이다.

 

손해배상 금액은 더 늘어날 조짐도 보인다. 철도노조 쪽은 회사가 손해배상 증액을 수시로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 실장은 “회사는 지난해 파업으로 청구한 162억원 이외에도 130억원을 추가로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직 법원에 증액을 신청하진 않았지만, 임금교섭이 진행되는 자리에서 수시로 얘기하며 압박한다”고 밝혔다.

 

철도노조가 겪는 어려움은 손배 가압류만이 아니다. 파업 이후 해고와 정직 등 대량 징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말 파업으로 이미 149명이 해고됐고, 452명이 정직 등의 중징계를 받았다. 징계 대상은 전체 노조원 2만여명 중 8000여명이 해당됐다. 대량 징계는 2009년 파업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 국장은 “2009년 파업으로 해고 169명을 포함해 총 9400여명이 징계를 받았다”고 밝혔다. 수서발 케이티엑스 자회사 설립에 반대하는 철도노조의 파업과 이에 대한 코레일의 대량 징계는 지난해 연말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지만 8개월가량이 지난 현재 철도노조에 남은 것은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청구액과 가압류 금액이다. 과연 이들은 지금 안녕할까.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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